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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Nov 21. 2022

[브런치북]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자기계발서, 새빨간 거짓말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사람에게 물어보자. 당신 인생에 앞으로 일어날 사건 중 가장 최악의 사건이 어떤 것일지.

열이면 아홉은 이혼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막 결혼한 사람에게 이혼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미 이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살면서 겪은 인생 최고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놀랍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이혼을 떠올린다. 이혼이 없었다면, 인생이 뒤바뀌는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혼을 통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사례를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듣는다.


그렇다면, 결혼 전이나 직후에는 최악으로 예측되는 이혼이 어떻게 이혼 후에는 인생 최고의 사건 중 하나로 등극할 수 있을까?


결혼식장에 들어선 순간엔 그 누구도 앞으로 인생에서 이혼이 인생 최고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이혼을 예상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지만, 이혼 후에 이혼을 회상할 때는 덜 고통스럽고 심지어 누군가에겐 축복스런 이벤트가 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걸까? 심리학이 발견한 답은 우리 뇌가 미래를 상상할 때는 머릿 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빠뜨리고(leaving-out), 과거를 회상할 때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채워 넣기(filling-in) 때문이다. 우리 뇌가 상상할 때 머릿 속에 쉽게 떠올리지 못한 것을 삭제하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한다.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가 있다. 누구에게 양육권을 줄 것인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이번엔 다른 질문에 답해 보자.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가 있다. 누구에게 양육권을 줘서는 안될까?



이 실험을 두 집단으로 나눠, 양육권을 줘야 하는 부모 중 한 명과 양육권을 줘서는 안 될 부모 중 한 명을 선택하게 하면, 둘 다 A라는 답이 높게 나온다. 사람들은 양육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부모 중 한 명이 지닌 양육 상의 장점을 떠올리긴 쉽지만, 단점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양육권을 주지 말아야 하는 부모를 선택할 때는 양육 상의 단점은 쉽게 떠올리고, 장점은 쉽게 무시된다.


그래서, 남한(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비슷한 나라이기도 하고, 가장 차이가 큰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에게 "노르웨이와 캐나다", "남한과 북한" 이 두 쌍 중에 어떤 나라가 비슷한지 물으면 남한과 북한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두 쌍의 국가 중에 어떤 나라들이 서로 더 다르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도 역시 남한과 북한이다. 유사성을 물어보면, 비슷한 점은 쉽게 찾지만 차이점은 무시하고, 다른 점을 물어보면 차이점에 주목하고 유사점을 빠뜨리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무언가를 상상할 때는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실을 쉽게 빠뜨린다. 한마디로 우리 뇌는 미래를 상상할 때 중요한 요인을 빠뜨리기 쉽다(leaving-out).


반면에 우리 뇌가 과거를 회상할 때없던 것을 채워 넣는 달인이 된다. 기억력 테스트를 통해 확인해보자. 다음에 제시되는 단어 목록을 한 번 읽은 후, 바로 가리길 바란다.



위의 내용을 가렸으면, 다음에 제시된 문제를 풀어보자.


다음 단어 중, 방금 읽었던 목록에 없는 단어는 무엇인가?


1. 침대

2. 졸음

3. 잠자기

4. 창문


정답은 창문이다. 그런데, 정답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잠자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자기가 있었다고 착각한다. 우리 뇌가 각각의 단어를 일일이 기억하기 보다는 비슷한 단어들을 묶어서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범주화 과정에서 실제 목록에는 없었지만, 모든 단어들이 잠자기와 관련 있기 때문에 없던 것을 채워 넣는(filling-in)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뇌는 이처럼 과거를 회상할 때는 없던 것도 채워 넣어 기억을 왜곡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어떤 사건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이 그 사건을 경험한 후 회상할 때도 동일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 후에 우리의 관점은 너무나도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무의식 중에 일어나에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상상한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예측은 빗나가기 일쑤다.  


당신이 A, B 두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데, A사는 심사위원 한 명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합격 여부를 통보하는 조건이고, B사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 전원이 불합격을 통보해야 탈락하는 조건이다. 만일 다섯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찬성한다면 당신은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두 회사의 면접이 모두 시행된 후, 연구자가 당신에게 만약 불합격할 경우에 심정이 어떨지 묻는다. 이 질문에 있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A사에 떨어지든, B사에 떨어지든 둘 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난 후에 연구자가 참가자들에게 불합격을 통보하고 바로 현재 심정을 물었다. B사에 떨어진 사람들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A사에서 불합격을 통보 받은 사람들은 아주 크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정서를 예측할 때는 한 명의 결정이나 다섯 명의 결정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탈락해 보니 한 명의 심사위원에게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 훨씬 덜 아팠다. 그 이유는 한 명의 경우, 상황의 모호함이 남아 있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석할 여지가 많지만, 다섯 명이 동시에 거절했다는 사실엔 다른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 명의 부정적 견해엔 남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집단이 만장일치로 동시에 내게 부정적 의견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남 탓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한 명에게 거절 당하는 경우, 남 탓을 통해 쉽게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탈락 결과를 예측할 때, 탈락의 아픔만 떠올릴 뿐, 심사위원을 비난함으로써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사건일수록 사람들의 고통은 더 길고 더 아프다. 세월호가 그렇고, 이태원 참사가 그렇다.


이혼의 경우엔 부부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비난의 대상은 각자에게 비교적 명확하다. 그래서 개인적 고통에서 빠져나오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다음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난을 들으며 자신도 그 사람에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과거의 아픔딛고 성장해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타인에게 공개하는 편이 낫다. 이점이 바로 '신발 벗고 돌싱포맨'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옮긴 후에 이전 직장을 비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실제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우리 뇌는 이러한 과거 미화 작업에 매우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당신의 뇌는 과거의 경험들을 의미있게 해석하고 채워 넣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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