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사이에 지식 은닉(knowledge hiding)은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실의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노하우를 기꺼이 공유하는 기버(giver)들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당신은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업무 노하우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하면 기꺼이 응하는 편인가?
만약, 응하지 않았다면 크게 세 가지 중 하나의 스킬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식 은닉의 세 가지 스킬에 관해서는 2012년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McMaster Universtity)드그루트 비즈니스 스쿨(DeGroote School of Business)의 캐서린 코넬리(Catherine Connelly) 교수 등의 연구진이 지식 은닉의 세 가지 유형을 조직 행동 저널(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에 소개한 바 있다.
첫번째 유형은 회피형 은닉(evasive hiding)이다. 회피형 은닉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말한다. 누군가 지식 공유를 요청해 오면, 알고는 있지만 알려 줄 의무도 없고, 알려주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혹은 원래 요청자가 의도한 지식과 다른 지식을 공유하며 생색을 내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두번째 유형은 바보처럼 보이는 것(playing dumb)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관련 내용을 뻔히 알고 있지만,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이 사람들은 심지어 요청하는 질문조차도 못 알아듣는 것처럼 반응한다.
세번째 유형은 합리적인 은닉(rationalized hiding)이다. 지식을 공유할 수 없는 특별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거절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외비에 해당돼서 안된다고 말하거나, 관련 지식을 공유하려면 윗사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지식 은닉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개인과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지만, 아마 요청한 당사자와의 관계적 악화가 바로 느껴질 것이다.
출처: Connelly, C. E., Zweig, D., Webster, J., & Trougakos, J. P. (2012). Knowledge hiding in organization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33(1), 64-88.
코넬리 교수 등의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지식 은닉의 즉각적 결과로 관계적 악화(hurt relationship)와 지식은닉의 보복(future withholding)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만일 당신이 당신의 지식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떤 전략을 쓰는 것이 가장 나을까?
관계가 염려될 때 쓸 수 있는 스킬과 보복이 염려될 때 쓰는 스킬이 다를 것이다. 관계적 악화가 염려된다면 세 가지 중 어떤 스킬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지식을 공유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바보처럼 구는 것(playing dumb)이 가장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몰랐던 것처럼 연기한다면 적어도 관계의 악화는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중에 보복이 염려된다면 어떤 스킬이 나을까? 합리적 설명으로 공유하지 않는 것(rationalized hiding)이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납득할만한 설명을 들으면, 당장의 기분은 좀 나쁠 수 있지만 향후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지식공유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연구를 해보니 지식 공유(knowledge sharing)를 하는 입장에서는 회피적 은닉(evasive hiding)은 관계와 보복 모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지만, 바보처럼 구는 것(playing dumb)은 관계적 상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합리적 근거로 공유하지 않는 것(rationalized hiding)은 보복을 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예측했다.
출처: Connelly, C. E., & Zweig, D. (2015). How perpetrators and targets construe knowledge hiding in organizations. European Journal of Work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24(3), 479-489.
그렇다면, 과연 지식 공유를 요청한 사람도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예측한 반응을 그대로 보였을까?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우선, 지식 공유를 요청한 사람이 거절당했을 때, 회피적 은닉이 최악이라는 것은 맞았다. 노골적으로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에겐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보복하려는 의도도 강했다. 그런데, 관계적 상처를 염려해서 바보처럼 구는 것(playing dumb)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다. 왜냐면 바보처럼 구는 것에 감정적 상처를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동료 관계에서 어설픈 연기는 관계적 악화를 만들기 쉽다. 만약 당신이 관계적 악화를 염려해 뭘 몰랐던 것처럼 굴었다면, 당신의 의도와는 달리 어느샌가 점점 멀어지는 관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합리적 설명에 의한 거절(rationalized hiding)이었다. 지식을 공유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합리적 설명이 기분은 좀 나쁘겠지만, 이로 인한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실제 지식을 요청했던 사람들은 합리적 설명을 듣고 난 후, 보복 의도도 없었고 기분도 크게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거절의 이유를 찾아 설명해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 당신에게 불편한 요청을 한다면, 바보처럼 구는 것은 노골적인 거절만큼이나 최악이 될 수 있다. 모른 척하는 것은 최악의 처세술이다.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물론 그 설명은 진실과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근거 자체가 진정성이 없다면, 합리적 은닉이 아니라 회피적 은닉이다.
누군가의 요청이 불편할 때가 있다. 특히 신뢰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요청이 그렇다. 이 때, 알면서 모르는 척하거나 노골적으로 거절하는 것은 향후 관계나 당신이 요청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이때는 상대가 납득할만한 근거를 들어 거절하는 것이 옳다. 거절의 기술은 별다른 게 없다. 합리적 근거에 기반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곧 심리학이 말하는 거절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