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중이다. 실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hustle) 문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조용한 사직은 2020년 7월 틱톡에 올라온 17초의 짧은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며 삽시간에 유행이 됐다.
2023년 현재 이른바 '대퇴사의 시대(Great Resignation)'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은 MZ세대 직장인을 대변하는 키워드에서 출발해 직장 내 전 세대를 아우르는 현상이 됐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엔 대퇴사의 시대에 비해 조용한 사직이 더 심각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처럼 퇴사율은 높지 않지만 업무에 마음이 떠나 주도성과 의욕이 없는 태도는 직장 내 곳곳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진행된 대대적인 해고가 그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해고된 인원의 많은 일을 남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더많이 해도 급여나 직장 내 위치는 변함이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일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고 업무엔 보다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개인의 삶을 보다 중시하게됐다는 것이다.
시작이 어떻든 현실의 조직이 겪는 문제는 팬데믹 초기의 해고 사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조용한 사직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개발된 '조용한 사직 척도'는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지표라고 생각한다.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스 대학교(National and Kapodistrian University of Athens) 간호학과 올가 시스코우(Olga Siskou)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조용한 사직에는 3가지 하위 구성 항목이 있다. 업무로부터 분리(detachment), 주도성 결핍(lack of initiative), 동기 결핍(lack of motivation)이다. 진단 문항은 총 9개다(출처: Galanis, P., Katsiroumpa, A., Vraka, I., Siskou, O., Konstantakopoulou, O., Moisoglou, I., ... & Kaitelidou, D. (2023). The quiet quitting scale: Development and initial validation. AIMS Public Health, 10(4), 828-848.).
<다음 진술에 동의하는 정도를 5점 만점으로 표시하시오>
1. 전혀 그렇지 않다 2. 약간 그렇지 않다 3. 보통이다 4. 약간 그렇다 5. 매우 그렇다
업무로부터 분리(detachment)
1. 나는 기본적이거나 최소한의 일만 한다.
2. 만일 동료가 내 일을 하고 있다면, 그대로 두는 편이다.
3. 나는 업무 중에 가능한 많은 휴식 시간을 취하려고 한다.
4. 나는 다른 일을 맡지 않기 위해 바쁜 척 한다.
주도성 결핍(lack of initiative)
5. 나는 혹시 내가 그 일을 맡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6. 나는 내 업무 환경의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7. 나는 일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없다.
동기 결핍(lack of motivation)
8. 나는 일을 하는 의미를 발견했다(r).
9. 나는 일을 할 때 의욕이 넘친다(r).
* (r)은 역문항으로 6점에서 응답한 점수를 뺀 점수를 기준으로 한다.
'업무로부터 분리'의 경우 평균 3.8 이상이면 업무로부터 분리 정도가 큰 편이고, 1.8~3.7 사이면 보통, 1.7 이하면 낮은 수준이다. '주도성 결핍'의 경우엔 3.3 이상이면 주도성 결핍 정도가 큰 편이고, 1.4~3.2 사이는 보통, 1.3 이하면 낮은 편이다. '동기 결핍'은 3.3 이상이면 동기 결핍이 높은 수준, 1.4~3.2 사이는 보통, 1.3 이하면 낮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이 셋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조용한 사직'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성원들의 현상 점검 이외에도 조직의 제도나 문화에 대해서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조용한 사직이 구성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싱가폴에서 시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조용한 사직의 주요 요인으로 리더십의 부족과 보상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과도학 업무와 직무 스트레스가 꼽혔다.
또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였는데, 다른 동료와의 비교나 조직 문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 등이 새롭게 언급되기도 했다.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서 조용한 사직을 경험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잡크래프팅(job crafting)과 같은 직무에 대한 관점과 내용을 변화시키는 노력, 협업과 소통을 활성화하는 업무 환경, 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지원하는 HR제도, 핵심 업무를 재정의하고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방식 등은 비교적 효과적 방법이다. 무엇보다 조용한 사직이 일종의 밈(meme)처럼 유행하지 않도록 조직문화를 재점검하고 직원들의 업무 몰입 및 조직 몰입을 높이는 리더십과 조직 문화 차원의 개입도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