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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an 14. 2021

당신은 몇 점짜리 동료입니까?

심리학으로 알아보는 일하는 마음의 작동법


얼마전 조선닷컴에서 “0점짜리 남편, 100점짜리 남편, 최고의 남편은 어떤 유형?”이라는 제목으로 남편 체크리스트를 소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남편인지를 15개 문항을 각 5점으로 측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직업상 측정과 평가에 매우 익숙하지만 이 기사가 사실 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숫자로 측정하는 것에 대한 심리학자로서의 불편함 때문임을 미리 밝혀 두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이런 질문을 접합니다. 몇점짜리 남편, 아내, 아빠, 엄마, 친구 등등 말이죠.


어떤 대상을 점수화하는 가장 큰 이점은 쉽게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남편과 아주 좋은 남편의 차이를 인식하거나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60점짜리 남편과 90점짜리 남편은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점수로 바꾸는 과정에서 점수가 만드는 마음의 작동 오류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몇점짜리”의 함정입니다.


이번 시간엔 점수가 만드는 마음의 오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점수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게 만든다.





점수는 세상 모든 것에는 높고 낮음이 분명히 있고 숫자가 높은 것은 낮은 것보다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류를 만듭니다. 이에 관해 시카고 대학 심리학과의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 교수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시 교수는 먼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실험 대상자로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적게 일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는 쪽과 많이 일하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쪽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설마 더 많이 일하고 보상은 더 싫은 선택지를 고르지는 않으시겠죠? 다행히도 참가자들 중에 아주 특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없었던 덕에 모든 참가자들은 적게 일하고 보상은 더 좋은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아주 이상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진짜 실험은 다음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쉬운 일을 하고 60점을 받는 것과 어려운 일을 하고 100점을 받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때 획득한 점수는 아이스크림과 교환할 수 있었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얻으려면 60점,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얻으려면 100점이 필요하다고 안내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어려운 일을 하고 100점을 받고 그 점수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과 바꾸는 선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점수가 더 좋다는 단순한 직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선호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닌 그저 높은 점수를 얻는 데만 치중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수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점수가 제시되는 순간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데 매몰되어 스스로에게 불리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점수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점수가 합리적인 판단을 이끄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종 점수는 우리를 합리성에서 멀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실제 무언가를 점수화하는 순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기 가격이 동일한 두 개의 중고 사전이 있습니다. 사전 A는 수록된 단어가 12,000개지만 표지가 낡았습니다. 그리고 사전 B는 수록된 단어는 10,000개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표지는 새 것에 가깝습니다. 


두 사전을 동시에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어떤 사전을 구입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2,000개의 단어가 수록된 사전 A를 선택합니다. 사전 두 개가 동시에 제시되었을 때는 수록된 단어의 숫자로 쉽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실험 방식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이번엔 다른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전 A와 B를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사전 A를 보여주고 참가자 눈 앞에서 사전 A를 치운 후에 사전 B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2개의 사전을 동시에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참가자들은 이제 단순히 단어의 분량이 아닌 사전의 상태나 다른 조건에 주목하기 쉬워집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제시되는 조건에서 사람들은 사전 B를 더 많이 선택합니다. 수치로 쉽게 하는 양적인 비교가 아니라 질적인 상태가 더욱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양보다는 질에 주목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짜리 가족여행을 다녀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여행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점수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경우는 특히 높은 숫자가 제시됐을 때 두드러집니다. 이에 관해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기술대학의 심리학자인 기디언 케렌(Gideon Keren) 교수는 간단한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아래는 두 기상학자 안나와 베티가 향후 4일 간의 강수확률을 예측한 일기예보입니다.     



케렌 교수는 데이터를 제시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실제로 나흘 중 사흘 동안 비가 왔습니다. 당신은 안나와 베티 중 누가 더 정확한 일기예보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베티는 비 올 확률을 75퍼센트라고 했고 실제로도 4일 중 3일이 비가 왔기 때문에 안나에 비해 더 정확한 예측을 했습니다. 안나가 베티보다 더 정확할 수 있는 경우는 나흘 내내 비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절반 정도의 응답자들은 안나가 더 정확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절반 정도의 피실험자들은 단순히 높은 숫자만 보고 더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간혹 높은 점수는 우리의 비합리성을 촉진시키기도 합니다.





'몇점짜리 동료'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동료'로




실제 점수가 가진 장점은 많습니다. 조직에서 빠르고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점수가 필수적입니다. 많은 경우 양적인 판단은 별 고민 없이 쉽게 내릴 수 있으며 리스크도 적습니다.


별 네개보다는 별 다섯개짜리 식당을 선택하거나 독자 평점이 8점짜리보다는 10점짜리 책을 보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집단지성의 결과라고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좋은 판단을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양적 데이터의 그림자를 보완해야 합니다.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ABCD 학점 없애는 대신 책 100편 서평 내야 졸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KAIST에 2021학년도부터 융합인재학부가 신설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래에 기사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점수를 없애고 질적인 피드백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KAIST의 도전이 반가웠습니다.


“몇점짜리”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질적인 영역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학습과 성장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인간관계에서 점수보다는 느낌이나 의미가 더욱 중요합니다.


제 아내가 저를 100점짜리 남편이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100점을 받았다고 해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나 애정이 더 생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몇점짜리 남편이 아닌, 저의 존재나 행위에 관한 느낌이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리더라면 인사평가 피드백 과정에서 등급 또는 점수와 질적 평가 결과를 동시에 통보하는 것은 질적인 영역에 주목하지 못하게 만드는 피드백 방식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리더가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피드백을 한다면 점수 또는 등급과 질적인 평가를 분명히 구분해서 시도해야 합니다. 앞서 사전 실험처럼 양적 정보와 질적 정보가 동시에 주어질 때 우리는 양적인 영역에 집중해서 질적인 내용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면담자리에서 눈 앞의 평가지를 치우기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직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점수로 평가하거나 평가받는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 점수가 만드는 마음의 작동 오류를 기억하고 질적인 평가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시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의 시작은 “당신은 몇점짜리 동료입니까?”였지만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동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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