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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r 01. 2021

화가 난다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심리학


화는 꼭 필요한 감정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의 파괴를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이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주고자 하고, 화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공격을 퍼부으려 한다.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마저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고대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세네카는 화를 잘 내는 그의 동생 노바투스를 위해 <화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세네카에게 화는 인간이 가진 그 어떤 감정들보다 더 비천하고 광포한 악덕이자 일시적인 광기입니다. 


세계 4대 성불로 추앙받았던 틱낫한 스님 또한 그의 저서 <화>에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는데 마음 속의 독인 화를 해독하지 못하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화는 인간에게 몹쓸 광기이고 독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화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도 화를 본능적으로 표출합니다. 화라는 감정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화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게 만들고 이기적인 상대를 협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집단 차원에서 분노가 경쟁사나 경쟁 국가 등 외부로 향해 있다면 내부 응집력은 강해집니다. 역사적으로도 외세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하지 않은 리더를 우리는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심리학 연구에서도 리더의 적절한 분노는 성과와 신뢰를 높이며 내부 응집력을 높여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화는 이처럼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감정이지만 잘 다스리지 못하면 독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화를 대하십니까?


1.    화를 느끼되 그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고, 부인하고, 억압한다.

2.    화를 느끼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엔 1번이었다가 특정 상황에서는 2번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화를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면 암이나 고혈압 등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느끼는 화를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한다면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화는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요?




화는 ABC 원리에 따라 작동된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Albert Ellis는 인간의 분노는 ABC원리로 작동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먼저 C(Consequence)는 화 즉, 정서적 또는 행동적 결과인 분노 반응입니다. A(Activation Event)는 선행 사건인데, 사람들은 대개 A를 C의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A와 C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요소가 끼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사건에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사건에 대해 사람마다 평가 과정이 개입되는데 이를 B(Belief), 사고 혹은 신념체계라고 부릅니다. 결국 A, 즉 어떤 사건이 C라는 분노의 감정의 원인인 것은 맞지만 A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분노 반응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B라는 평가체계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사고(B)에 대해 잘 알고 있을수록 바람직한 감정(C)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감정(C)은 크게 적절한 감정과 부적절한 감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적절한 감정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는 태도를 유발하는 감정입니다. 인생을 살며 맞닥뜨리는 장애물에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고, 보다 합리적이며 행복하고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감정입니다. 반면에 부적절한 감정이란 인생에서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는 감정을 일컫습니다. 


마찬가지로 B의 사고체계 역시 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신념으로 나누어지는데, 우리의 신념이 합리적일수록 선행 사건에 바람직하게 대처하게 하여 적절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 습관 점검, 자존감 향상, 자기주장, 정서적 발산, 비합리적 신념에 대한 논박 등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비합리적 사고체계의 핵심만 알아도 화를 통제할 수도 있고 화로 인해 야기되는 후회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합리적 사고체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건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대부분의 상황은 그 사람이 그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인거죠. 같은 충고를 존경하는 누군가로부터 듣게 된다면 애정 담긴 조언이라 생각하지만 평소 싫어하던 동료에게 들을 때는 화가 납니다. 동일한 사건임에도 약자에겐 분노하고 강자에겐 비굴한 선택적 분노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말이나 행동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비합리적 사고체계의 핵심입니다. 비합리적 사고를 갖게 되면 분명 같은 말인데도 자신을 아끼는 의도로 들리기도 하고 전혀 다른 비난의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해결안은 의외로 쉽습니다.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 됩니다. 나를 비난하는구나가 아니라 나에게 이러이러한 말을 하는구나라고 객관화만 해도 부정적 감정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아이가 숙제도 안하고 유튜브만 보고 있다면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기 전에 ‘너는 숙제를 안하고 유튜브를 보고 있구나’라고 말하면 됩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서 비아냥거린다면 이미 동일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습관만으로도 비합리적 신념체계에 관한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B의 사고체계를 작동시키기 전에 A가 이미 C를 유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고체계인 B가 개입할 여지는 없습니다. 이미 화를 내버렸기 때문입니다. 


B를 작동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B가 개입되려면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



금주를 결심한 사람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술을 찾지 않습니다. 퇴근 무렵에 술 한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이유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누적된 스트레스를 근무 중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비합리적 사고체계가 들어오기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회사에서 혹은 집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들 중에 가정 안에서 난폭한 사람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중인격자나 성격파탄자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내력이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100만큼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 인내력을 스트레스 상황마다 소모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쳐다보기도 싫은 동료와 회의를 해야 하고, 상사에게 불편한 보고를 올려야 하고, 고객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응대하면서 우리는 인내력을 소모합니다. 


그러다가 자원이 바닥이 나는 순간, 사고가 개입될 여지는 사라집니다. 선행 사건 A에서 사고체계 B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분노 반응인 C가 발동됩니다. 이런 경우엔 심지어 분명 화를 내긴 냈는데 무슨 사건 때문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개 퇴근 후 술을 마시고 나서 가정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직장에서는 바닥난 자원에서도 뒷감당이 두려워 함부로 화를 내지 못하지만 가정에서는 뒷감당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고생한 자신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까지 엮여서 쉽게 버럭하게 됩니다.


결국 자원, 즉 스트레스 관리가 비합리적 사고체계를 막는 최상의 대안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 방안 중 최고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운동입니다. 운동은 신체적 근육 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 심지어는 뇌의 기능도 강화시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해진 마음엔 세로토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계를 타깃으로 하여 세로토닌 수치를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면 세로토닌 뉴런의 발화 빈도가 증가하고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됩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한 운동법

 


신경과학자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흡연이라고 말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세로토닌은 증가합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신경과학자들이 권장하는 아래의 원칙을 지킨다면 운동의 효과는 배가 됩니다.


1.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생각하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든, 자녀와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든, 즐거움을 위해서든 자신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위해서 운동한다고 생각할 때 운동의 효과는 높아집니다. 


2.    자발적으로 하라. 미국 휴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Leasure와 Jones 교수는 강요된 운동과 자발적 운동이 뇌와 행동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자발적 달리기 그룹은 강제 달리기 그룹에 비해 더 많은 뉴런이 생성됐는데, 이는 능동적으로 운동을 하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운동을 하고 싶은만큼 하는 것이 우리 뇌에는 더 효과적입니다.


3.    쪼개서 하라. 운동을 시작하면서 헬스장에 석 달 등록하기를 떠올린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더 쪼개야 합니다. 석 달 동안 일주일에 3번 가기. 더 쪼개면? 오늘 7시부터 1시간 운동하기. 더 쪼개면? 스트레칭 – 달리기 – 웨이트 순으로 운동하기. 더 쪼개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 들어가서 신발 갈아신기. 머릿속에서 운동하는 행위가 쪼개져 구체적으로 떠오를수록 운동의 효과는 높아집니다.


4.    보상을 주라. 퇴근하고 어차피 TV를 볼 거고, 야식도 먹을 거고, 스마트폰 게임도, SNS도 할 것입니다. 소모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행동들을 지나치게 통제하기 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보상으로 그 일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팔굽혀펴기 10번 한 뒤에, 가볍게 동네 산책을 마친 후에, 이처럼 보상 차원에서 소모적인 행위를 한다면 다음 번엔 그 소모적인 행동의 빈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영국 엑서터 대학의 Janse Van Rensburg 교수 등의 연구진은 흡연자들을 15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 다음, 두 그룹으로 나눠 운동그룹에겐 10분 정도 자전거 페달을 밟게 하고 대조그룹은 가만히 있게 했습니다. 이후 두 그룹에게 담배를 보여주자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의 뇌는 도파민을 원하는 뇌의 부위가 심하게 작동해지만 운동그룹의 뇌는 상대적으로 잠잠했습니다. 운동만으로도 담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파민을 획득한 것입니다. 운동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기 때문에 운동으로 보상을 받은 뇌는 소모적인 행동을 원하지 않는 뇌로 바뀌게 됩니다.


5.    자연 풍경을 즐겨라. 쾌적한 환경 또는 자연의 이미지를 보며 운동하면 운동의 이점이 증폭됩니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 Kaplan 교수는 집으로 가는 길 혹은 집에서 보이는 풍경이 정원이나 나무, 공원, 강, 연못, 동물 등 자연적 환경을 경험한 집단과 주차장이나 도로, 북적이는 사람들, 건물 등의 인공적 환경을 경험한 집단을 경험한 집단과 비교해보니 자연 환경 집단은 우울감이 감소하고 활력과 전반적 웰빙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지친 마음은 B의 사고체계를 적절히 작동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B의 개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PC의 바탕화면을 코로나 이후에 가고 싶은 어딘가의 자연 풍경으로 바꾸고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연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퇴근하고 타이핑하다가 간혹 손목 돌리기라도 하면서 조금씩 몸을 건강한 방향으로 움직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고 분노의 씨앗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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