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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r 03. 2021

심리학에서 배우는 영향력의 원리

원하는 것을 이루는 심리학


변화는 기대와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조직의 리더는 긍정적 변화를 꿈꿉니다. 새해가 되면 신년사, 비전선포식, 업무 보고와 같은 방식을 통해 다양한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전달받기를 원합니다. 성공적인 변화와 관련해서 가장 잘 알려진 심리학 이론은 소위 긍정적 기대의 힘을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입니다.


긍정적 기대의 힘은 실제 존재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 등에서 소개된 다양한 연구와 실험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긍정적 기대의 힘에 관해 로젠탈 효과를 예시로 짧게 말씀드겠습니다. 1968년 하버드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은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교사에게 ‘지적 능력이나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라고 전달했습니다. 무작위로 선정된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몰랐던 교사들은 이 아이들에게 긍정적 기대를 보였고 실제 8개월 후 아이들의 지능과 학업 성적 등은 크게 향상되어 있었습니다. 긍정적 기대의 힘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비롯한 긍정적 기대의 힘을 확인한 수많은 연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의 대상입니다. 주로 해당 분야의 초심자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한 로젠탈 효과에서도 연구 대상이 교사의 영향력이 커 반응을 이끌어 내기 쉬운 저학년으로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런 유사한 실험을 대학생들에게 했다면 동일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긍정적 기대의 힘이 성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응 민감도가 높은 대상에게 긍정적 기대를 한 것이 성과를 높인 것입니다.

그래서 반응 민감도가 떨어지는 시기에 들어선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긍정적 기대는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시기는 대략 만 14세 이전입니다. 부모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자녀를 보며 부모 자신이 좋은 모범을 보이는 시도를 시작합니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책장을 들여 놓고 아무리 피곤해도 소파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을 자녀에게 의도적으로 노출하려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중학교 정도의 자녀는 부모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지났기 때문입니다.


구글의 데이터 과학자인 세스 스티븐슨 다비노위츠(Seth Stephens-Davidowitz)는 미국 메이저리그 팬이 되는 결정적 시기를 밝혀냈습니다. 평생 응원할 야구팀을 굳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여덟 살 전후였습니다. 19-20세 때 야구의 재미를 알게 돼서 특정 구단의 팬을 자처한 사람이 계속 그 구단의 팬으로 머물러 있을 확률은 여덟 살 때 팬이 된 경우에 비해 8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캐털리스트(Catalist)의 수석 연구원인 야이르 깃차(Yair Ghitza)와 컬럼비아대학교의 통계학자인 앤드루 겔먼(Andrew Gelman)은 젊을 때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보이다가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연구한 바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통념은 잘못됐습니다. 연구자들은 정치적 성향이 형성되는 것도 역시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하는 영향도 일부 있지만 유권자가 대략 18세 전후에 당시 대통령의 인기도가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1941년생 미국인은 성년이 됐을 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를 만납니다. 1960년대 초, 이 세대는 확고하게 공화당 쪽을 지지하고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10년 후에 태어난 1951년생 미국인은 성년이 됐을 때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를 만납니다. 그리고 평생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영향력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강력한 영향력은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대상을 만나야 합니다.




작지만 꾸준한 신호로 반응민감도를 높여야 한다




강력한 영향력은 반응 민감도가 높은 대상을 만났을 때 비로소 효과를 발현합니다. 따라서 리더 혼자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도만으로는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반응 민감도를 높은 대상을 찾거나 대상의 반응 민감도를 높이는 시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리더 스스로 의욕은 높지만 구성원의 반응 민감도가 낮다면 민감도를 높이는 시도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나서 기대와 요구를 해야 합니다.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작은 신호를 꾸준히 보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전세계 수많은 군대 조직 중에 가장 높은 성과를 보이는 조직 중 하나는 미 해병대입니다.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후보자를 뽑고 강한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 이들의 탁월한 성과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식사와 같은 일상적인 활동도 큰 역할을 하는데, 바로 조직의 가장 높은 리더가 가장 마지막에 배식을 받는 문화입니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Leaders eat last)』에서 이들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좋은 리더는 어떤 일이 닥쳐서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긍정적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가장 마지막에 배식 받는 신호를 매일 경험한 해병대원들은 실전에서 리더의 기대에 반응합니다. 작전에 실패해 후퇴해야 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남을 사람이 리더일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소 이러한 신호를 주고받은 적이 없는 조직은 위기가 기회나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의 급격한 이탈만 낳을 뿐입니다.


제가 경력사원으로 새로운 직장의 HR로 옮겼을 때 일입니다. 아마도 저는 새로운 조직에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빠르게 성과를 내려는 의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당시 팀장은 제게 성과에 조급할 필요가 없다며 HR은 사람을 알아야 하니 여러 팀과 만나 식사하면서 얘기나 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후로 몇 주간은 팀장 주관 하에 여러 사업장을 그저 돌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식사하는 게 주요 일과의 전부였습니다. 팀에 새 사람이 왔다고 팀장이 먼저 나서서 소개하고 자리를 만들었던 여러 번의 반복된 신호는 제가 이 조직에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저는 이를 계기로 일을 하기 전에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요구를 파악하는 HR의 기본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 일 뿐만 아니라 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대상을 연속으로 만난 행운이 겹쳤던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진정성은 값싼 신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리더의 영향력에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따라서 리더의 진정성은 리더십의 효과성에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성은 어떤 신호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일까요?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빌 게이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승으로 알려진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의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을 통해 진정성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상대로부터 오는 신호를 민감하게 읽으려고 애씁니다. 이때 상대는 나에게 값싼 신호(cheap talk)를 보낼 수도 있고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상대가 칭찬이나 아부 같은 신호로 나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나는 그 신호를 전적으로 믿으며 협력하는 것이 유리할까요?


진화심리학에서는 수컷 공작새가 구애를 위해 화려한 깃털을 펼쳐 보이거나, 위협적인 사자 앞에서 도망가기 보다는 제자리 점프를 높게 뛰는 가젤의 행동 등을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은 여러모로 생존에 불리합니다. 일단 천적의 눈에 띄기 쉽고 무거운 깃털 때문에 달아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지금껏 살아 남았다는 것은 수컷 유전자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암컷 입장에서는 어떤 수컷이 자신의 짝으로 적합한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으려 하는데 수컷의 화려한 깃털은 암컷에게 신뢰의 신호를 줍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사자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제자리에서 높게 뛰며 사자를 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가젤이 있습니다. 사자 입장에서 사냥에 성공하려면 가젤 무리 중에서 약한 녀석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살아남으려는 가젤은 무리 중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사자의 추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잘 뛸 수 있는지 사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 이러한 신호들은 자신의 생존을 담보로 건 값비싼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펜스의 신호 이론은 구직과정에서 어떤 지원자가 회사의 선택을 받는지를 설명합니다.  지원자는 자신에 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지만 회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정보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원자는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면접관들에게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이때 만일 지원자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로만 허풍을 떠는 값싼 신호(cheap talk)만을 보낸다면 면접관은 지원자를 신뢰할 리 없습니다. 지원자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지에 관한 학력과 외국어 실력, 경력 및 리더십 경험 등의 값비싼 신호를 준비해야 면접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리더가 구성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구성원에게 보내는 신호의 가치를 따져봐야 합니다. 설득이나 커뮤니케이션 스킬 위주의 말 뿐인 값싼 신호에 구성원들은 리더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조직과 리더는 구성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값비싼 신호를 보여줘야 합니다.


리더십을 발현하는 장면에서 리더의 자원과 희생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원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그 신호의 가치와 효과성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껏 값싼 신호에 머물러 있었다면 리더 스스로 효과성 있는 새로운 신호를 찾아 꾸준히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값비싼 신호는 진정성을 낳고 꾸준한 전달은 리더십 행위의 반응 민감도를 높일 것이며 반응 민감도가 높아진 구성원에게 거는 긍정적 기대로 리더가 원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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