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더의 존재감만으로 달라지는 성과

by 박진우

"우리 팀은 수평적이야. 리더는 필요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수평적 협업, 자율적인 팀워크, 상명하복 없는 문화. 다 그럴듯하다. 최근 많은 기업이 전통적인 상사-부하의 구조보다, 서로 수평적으로 협력하는 팀 체계(flat team)를 선호한다.


특히, 명확한 답이 정해지지 않은 복잡한 과제일수록, 리더의 역할보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자율적 협업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리더가 없어도 잘 되는 팀이 실제로 존재할까?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기 위해, 최근 독일 뮌헨 대학교의 심리학자 플로리안 엥글마이어(Florian Englmaier)와 연구진은 대규모 현장 실험을 실시했다.


리더십의 가치를 검증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


총 281개 팀, 1,273명이 독일 뮌헨에 모였다. 이들은 방 탈출(escape room)과제에 도전한다. 60분 안에 방을 탈출해야 한다. 팀마다 정보가 쪼개져 있고, 협업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때, 연구진은 두 집단으로 나눠 절반의 팀에만 다음과 같은 지침을 추가로 주었다.


“여러분을 도와줄 팀 리더를 선발하세요.”

지침은 이 문장 하나였다. 리더를 임명하지도 않았고, 따로 리더의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으며, 역할도 강제하지 않았다. 단지 리더를 정해보라고 유도했을 뿐이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리더가 있는 팀은 정말 더 잘했다


리더의 존재가 가져온 성과 개선 효과


- 과제를 성공한 비율을 보면, 리더 그룹은 63% 성공했지만, 리더가 없는 그룹은 44%만이 성공했다.

; +19%p 향상, 거의 1.5배 가까운 차이다.


- 문제 해결 속도를 보면, 리더 그룹은 평균 5분 29초 여유있게 성공했지만, 리더가 없는 그룹은 평균 3분 10초를 남기고 성공했다.

; 75% 더 빠름, 문제를 더 빨리, 더 여유있게 풀어낸 것이다.



출처: Englmaier, F., Grimm, S., Grothe, D., Schindler, D., & Schudy, S. (2025). The value of leadership: Evidence from a large-scale field experiment. The Leadership Quarterly, 101869.


위의 그래프는 이 결과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는 각 팀의 과제 완료 시간을 누적 백분위로 표현한 그래프(Cumulative Distribution Function)다.

- 긴 점선(Leadership LCI): 리더를 즉시 정한 그룹

- 짧은 점선(Leadership LNCI): 리더를 바로 정하지 않은 그룹

- 실선(Control): 리더 없이 자율적으로 협업한 그룹


그래프를 보면, 리더를 즉시 정한 Leadership LCI 팀들이 더 빠르게 문제를 푼 것을 알 수 있다. 리더를 바로 정한 팀은 과제의 빠른 시점부터 우수한 성과를 보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리더 선출을 유도했지만 바로 정하지 않은 팀(LNCI)은 중간 성과를 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리더 없이 작업한 Control 팀은 가장 느리고 분산된 경향을 보였다.


행동 패턴도 달랐다. 리더가 있는 팀은 회의 시간은 줄었지만, 정보 탐색과 공유는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들은 명확한 조율자 중심으로 움직이며, 혼선 없이 협업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했다. 리더의 존재 자체가 팀의 행동을 바꾼다. 누가 리더인지보다, 우리에겐 조율의 중심이 있다는 인식이 팀 전체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리더가 있는 그룹의 회의 시간은 줄었고, 정보 탐색과 공유는 늘었다. 잘 조율된 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말은 즉, 각자 자기 할 일은 하되, 팀 전체가 혼선 없이 조율된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말하는 회의’가 아니라, ‘필요한 말만 나오는 협업’이 이루어진 셈이다.


가장 흥미로운 통찰


이 모든 차이는 리더를 반드시 두라고 강제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누가 어떤 리더십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 채 발생한 결과였다는 점이다. ‘누가 리더냐’가 아니라 ‘리더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팀의 사고와 행동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연구진은 무작위 할당과 통계 보정을 통해 인과관계를 확실히 검증했다. 즉, 리더의 존재 자체로 성과가 높아졌다는 증거다.


도대체, 리더를 정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연구팀은 3가지 관점에 주목한다.


1. 리더로 인해 인지적 기준점(cognitive anchor)이 생긴다: 누군가는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라는 기대는 구성원의 인지 부하를 줄인다.

2. 자발적 조율이 쉬워진다: 정보를 수집하되, 리더에게 넘기거나 맡긴다는 암묵적 합의가 생기고, 혼란이 줄어든다.

3. 책임의 공유 대신 책임의 위임이 가능해진다: 모든 것을 다 같이 결정하려는 수평적 혼란 대신, 최종 결정은 리더의 생각에 따르자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 실험이 조직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아직도 많은 조직과 심지어 리더들 조차도 리더십을 직책이나 위계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실험은 리더십이란 권한을 가진 누군가의 통제가 아니라, 팀이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리더는 직책이 아니라 조율의 상징이다. 그 상징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성과는 달라진다.


리더가 필요 없는 팀은 없다. “우린 자율적인 팀이에요, 누가 리더인지 따로 정하진 않아요.” 이 말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선 문제가 된다. 회의는 길어지고, 결정은 미뤄지고, 책임은 애매해지며, 성과는 흐려진다. 리더가 없어도 되는 팀은 없다. 리더가 명확하지 않은 팀, 구성원들이 리더로 인정하지 못하는 팀만 있을 뿐이다. 좋은 팀은 모두가 리더인 팀이 아니다. 좋은 팀이란 ‘누군가 조율을 맡고, 나머지는 그에게 신뢰를 보내는 팀’이다.


리더가 있어도 리더가 없는 것만도 못한 팀은 왜 그럴까?


명목상으로는 리더가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조율하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리더는 조율하지 않고, 팀원은 각자 판단하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으려 하고 협업이 필요할 때는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벌어질 뿐이다. 이 상태는 리더가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리더가 있을 거라 믿었는데 실제로 없었던 상황은 팀에게 혼란과 무기력을 동시에 안긴다.


연구가 밝힌 리더십의 핵심은 리더가 조율자로 기능하고 있느냐다. 형식적 리더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 즉 심리적 구심점이 존재하는 팀이 성과를 낸다.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위계나 직책이 아니라, '이 사람이 우리의 조율자다'라는 공감대다. 그 공감대가 생기는 순간, 혼선이 줄어들고 결정이 빨라지고 성과가 달라진다.


리더십이란 호칭도, 연차도, 직급도 아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자'는 합의다. 그리고 그 단순한 합의 하나가 성과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다.





아래는 CARAT 학습자를 위한 글입니다.


"리더가 있어도 성과가 떨어지는 팀"의 CARAT 기반 해석


리더가 직책은 있지만, 팀이 잘 굴러가지 않는 이유는 그 리더가 실제로 조율자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다음과 같은 CARAT 요인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조직기반자긍심(OBSE: 낮음)


OBSE가 낮은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을 조직 내에서 정당화하지 못한다. 심리적 위축 상태에 머무르며 리더라는 타이틀은 갖고 있지만, 구심점 역할을 회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조율자가 없다는 불안감에 빠진다.


2. 자기효능감(E: 낮음)


자기효능감이 낮은 리더는 의사결정과 조율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명확한 판단이나 피드백을 유보하게 되고, 결국 팀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팀은 책임 전가, 의견 충돌, 회피적 태도로 이어진다.


3. 조직신뢰(T: 낮음)


T가 낮은 리더는 조직 내 상사와 동료, 부하직원의 지지와 정당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결정을 내렸다가 나만 손해 보면 어쩌지?', '팀원이나 상사가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커지면서, 리더십 실행의 안전판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런 리더는 책임 있는 조율을 회피하거나, 피상적 리더십만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OBSE, E, T가 모두 낮거나 일부가 낮은 리더는 심리적으로는 이미 리더가 아니다. 팀원들은 리더를 중심으로 삼지 못하고, 각자가 주도권을 가지려 하거나,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한다. 의사결정은 지연되고, 커뮤니케이션은 산개된다.


"리더십은 직책이 아니라 기능이다." 그리고 이 기능을 뒷받침하는 건 OBSE, E, T라는 심리적 기반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아무리 포지션이 있어도 리더십은 작동하지 않는다.

keyword
이전 09화다이어트와 리더십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