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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은 너무 길다"의 심리학

by 박진우

1. 반대 구호의 폭발력(The Opposer's Loss Effect)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는 단순한 정치 슬로건이 아니었다. 이는 한국 유권자들에게 ‘윤석열 정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반대 감정(anti-framing)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정서적 동원 장치였다. 최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된 Teeny & Petty(2025)의 연구, 「Reactions to Undesired Outcomes: Evidence for the Opposer’s Loss Effect」는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12,8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기록분석, 종단연구를 통해, “내가 좋아서 지지한다(pro)”보다 “나는 상대가 싫어서 반대한다(anti)”라고 프레이밍할 때 사람들이 훨씬 강하게 결집하고, 실패나 위협을 훨씬 더 크게 경험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즉,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이 “우리가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윤석열 정권이 3년이나 더 이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외칠 때,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행동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2. The Opposer’s Loss Effect의 심리학적 검증


Teeny & Petty(2025)의 주요 연구들은 이 구호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효과를 냈는지 잘 보여준다.


- 스포츠 팬 실험: 특정 팀을 “좋아서 응원한다(pro)”보다 “저 팀이 싫어서 응원한다(anti)”라고 말한 팬은, 응원팀이 패배했을 때 더 강한 부정적 감정을 경험했다.


- 정치 기록 분석: 미국 대선과 슈퍼볼 데이터를 보면, anti-framing을 가진 집단은 결과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승리 시 더 큰 환희를 느끼고 패배 시 더 큰 절망을 느꼈다.


- 건강·소비자 연구: “나는 건강해지고 싶다(pro)”보다 “나는 아프기 싫다(anti)”라고 말한 사람들이 실제로 예방주사, 앱 선택 등에서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실증적 증거는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가 단순한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정권 몰락을 촉발한 심리적 엔진이었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반대 기반의 프레임은 사람들의 양가적 태도를 줄이고, 명확한 ‘적대적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집단 결속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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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eny, J. D., & Petty, R. E. (2025). Reactions to undesired outcomes: Evidence for the opposer’s loss effec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이 표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원치 않는 결과(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의 당선)가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다. 각 선거연도별로 Opposer’s Loss Effect의 강도를 통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맨 오른쪽의 partial eta square가 효과 크기를 의미한다. 이 값이 클수록 설명력이 크다.


2008년 오바마 당선 시, 공화당원들이 느낀 충격과 냉소에 비해, 오바마 재선 시 느낀 부정 정서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16년 트럼프 당선 시 민주당원들이 느낀 충격과 냉소는 지대했지만, 2020년 바이든 당선 시에 공화당원들의 분노는 강렬하지 않았다. 코로나 대응 실패로 공화당원들조차 트럼프의 패배를 응원했을지 모른다.



3. 정치적 결과: 정권 붕괴의 심리 메커니즘


지난 총선 당시 윤석열 정부의 모든 정책은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서사 속에서 증폭된 반감으로 직면했다. 정권 연장의 정당성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에너지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했다.


총선에서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의 약진이 없었더라면, 탄핵 정국에서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반대 프레임이 만들어낸 Opposer’s Loss Effect의 동원 효과 덕에 빛의 혁명을 이뤄낼 수 있었다.



4. 왜 부정이 더 강한가: Bad is Stronger than Good


Baumeister 등(2001)의 고전적 연구는 “부정적 사건, 감정, 특성이 긍정보다 인간에게 더 큰 힘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한 번의 부정적 경험은 네 번의 긍정적 경험을 상쇄한다.

- 동일한 크기의 손실(loss)은 이득(gain)보다 더 크게 체감된다.

- 부정적 리더십 경험은 긍정적 경험보다 조직 신뢰와 몰입에 더 큰 타격을 준다.


“3년은 너무 길다”는 바로 이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좋다”라는 긍정보다, “윤석열 정권이 싫다”라는 부정을 훨씬 강하게 느끼고,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



5. 그런데, Opposer’s Loss Frame으로 실패했다면?


Teeny & Petty(2025)의 연구에 따르면,

- Pro-framing (“나는 A가 좋아서 지지해”): 패배 시 실망, 그러나 대안 모색·학습 가능성 유지.

- Anti-framing (“나는 B가 싫어서 A를 지지해”): 패배 시 단순한 실망을 넘어 ‘혐오 대상의 승리’라는 이중 손실(double loss)로 경험.


즉, 지지 대상의 패배 + 증오 대상의 승리 = 두 배의 타격을 입는다. 이때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과도한 분노와 허탈을 느끼며, 집단적 냉소와 붕괴 현상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는

- 정치 맥락: “그래서 뭐가 달라졌나? 정치 다 똑같다.” : 정치적 냉소, 탈정치화(투표 포기, 참여 의지 상실).

- 조직 맥락: “우리 팀이 또 졌네. 이 회사는 희망 없어.”: 직무 몰입 저하, 성과 기대치 하락, 이직 의향 증가.


집단 차원에서는

- 감정의 집단화: anti-framing 기반 집단은 “우리가 싸운 적”이 선명하기 때문에 패배 시 분노와 절망이 공동 감정으로 증폭.

- 책임 전가(blame culture): “누가 전략을 잘못 짰냐, 누가 방해했냐”라는 내부 갈등으로 확산.

- 분열과 이탈: 일부 구성원은 냉소 속에 집단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더 강경화되며 내분 발생.


이를 조직에 적용해 보자. 팀장이 “우린 경쟁 X만 이기면 된다”고 팀을 몰아붙였다고 가정하자. 단기적으로는 팀원들이 결집하고 에너지가 솟는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이는 단순히 성과를 못 낸 게 아니라, “경쟁사 X가 우리보다 낫다”는 굴욕적 현실을 직면한다. 이때 팀원들은 “우리 회사는 희망이 없다”는 냉소에 빠지고, 책임 공방 속에서 조직은 붕괴 위험에 처한다.


정리하면, Opposer’s Loss Effect에서 실패 시 냉소와 붕괴를 초래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 반대 프레임은 태도를 이분법적으로 강화한다.

- 그래서 패배는 단순 손실이 아닌 이중 손실로 경험된다.

- 그 결과, 개인은 무력감과 탈몰입에 빠지고, 집단은 냉소·분열·책임 전가로 붕괴 위험을 맞는다.



5. 다크사이드 성격과 조직 심리학의 교훈


이 원리는 조직 내 개인 성격 차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CARAT의 Dark 요인(N, Na, M, P, ES)은 종종 갈등과 위험을 불러오지만 동시에 강력한 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형평민감성(ES)은 갈등을 촉발할 수 있지만, 불공정을 드러내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개혁의 엔진이 될 수 있다. 나르시시즘(Na)은 자기과시적이지만, 동시에 카리스마로 집단을 결집시키기도 한다.


정치에서 부정적 감정이 강력한 동원력을 발휘하듯, 조직에서도 다크 사이드는 몰입과 변화를 촉발하는 자극제가 된다. 다만 과도하게 발현되면 Opposer’s Loss Effect에서처럼 실패 시 냉소와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조직이라면 다음과 같은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 단기 결집 vs 장기 지속성

반대 기반 동원은 강력하지만 실패 시 “Bad”의 힘 때문에 붕괴가 크다. 리더는 위기 대응이나 경쟁 구도에서는 활용하되, 장기적 비전은 반드시 긍정적 지향(pro-framing)으로 설계해야 한다.


- 다크 사이드 관리

개인의 다크 사이드는 억제해야 할 위험만이 아니라, 관리하면 혁신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잘못 발현되면 긍정적 특성보다 훨씬 더 큰 파괴력을 가진다. 따라서 개인은 Bright 관리 + Dark 조율이라는 이중 전략을 가져야 한다.


- 리더십 함의

리더는 반대 구호를 통해 집단을 단결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 몰입을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반대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조직심리학이 "3년은 너무 길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다크 사이드와 반대 프레임의 동력을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비전과 프로 프레임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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