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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불쇼 최광희 하차에서 본 도덕적 라이선싱 효과

by 박진우

나는 매불쇼의 ‘시네마 지옥’을 즐겨 듣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직설적이고 과감한 발언으로 팬층도 탄탄했던 최광희 평론가가 최근 하차했다. 핵심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동일한 발언이라도 타인이 하면 문제 삼고, 자신이 하면 '그건 맥락이 다르다'며 정당화하는 해석의 비대칭성이 반복되었고, 그 균열은 결국 공개적 갈등으로 폭발했다.


최광희 평론가의 하차 사태는
특정 심리 구조가 반복 강화되며 나타나는
조직의 갈등 패턴과 동일하다

발단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 ‘미치광희’였다. 이 라벨은 처음엔 캐릭터적 농담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발언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일종의 면허(moral license)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MC 최욱이 여러 차례 제지해도 '나는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듯한 안하무인식 대응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최광희 평론가의 하차는 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 연구가 오랫동안 밝혀온 세 가지 메커니즘(도덕적 라이선싱, 지각된 권력, 해석 비대칭)이 겹겹이 작동한 결과로 이해해야 보다 정확하다.


1. 도덕적 라이선싱: ‘나는 원래 이런 캐릭터니까 괜찮다’


도덕적 라이선싱(moral licensing)은 사람들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역할을 근거로 규범의 예외권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현상이다. Reynolds & Turner(2006)는 실험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한쪽엔 '당신은 직설적 역할', 다른 한쪽엔 '당신은 협력적 역할' 이라는 캐릭터 라벨을 주었더니, 직설적 역할 집단은 무례한 발언을 정당한 역할 수행으로 인식했다.


'미치광희’라는 라벨은 정확히 이 기능을 했다. '미치광희' 캐릭터는 '센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면허가 되었고, 그는 이 라벨을 근거로 자신의 행동 가능 범위를 넓혀 해석하기 시작했다.


조직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흔하다. “나는 원래 직설적인 리더야”, “저 사람은 천재니까 괴팍함은 감수해야지” 이런 라벨은 곧 규범의 예외를 허용하는 심리적 패스로 작동한다.


2. 지각된 권력: 팬의 지지가 만든 권력자 착각


두 번째 축은 지각된 권력(perceived power)이다. 사회심리학에서 권력은 공식적 직책보다도 주목, 지지, 호응이라는 사회적 반향에서 급격히 강화된다. Keltner, Gruenfeld & Anderson(2003)은 인간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뇌의 권력 접근 회로(approach system)가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프로그램에서 공식적 권력은 MC에게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지지, 칭찬, ‘사이다 발언’이라는 반응은 최광희 평론가를 심리적 권력자로 만들었다.


Fast, Gruenfeld & Sivanathan(2009)은 고권력 조건의 사람들은 자신이 맞다고 30~40% 과대 확신하고, 피드백을 거의 수정하지 않으며, 타인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더 엄격하게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타인은 규범을 지켜야 하지만, 자신은 상황에 따라 예외가 허용된다는 사고가 형성된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책보다 직원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 혹은 조직 내 비공식적 영향력이 높은 구성원들, 그리고 특정 프로젝트의 키맨(key person)과 같은 사람들은 이 같은 권력 착각에 빠질 때 갈등이 심화된다.


3. 해석 비대칭: '내가 하면 맥락, 남이 하면 문제'


Jones & Nisbett(1972)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은 의도 중심, 타인의 행동은 결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다.

여기에 Lammers et al.(2010)의 연구가 더해지면 그림은 더 명확해진다. 고권력 조건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행위는 상황적 이유로, 타인의 문제 행위는 본질적 결함으로 설명하려 든다. 이를 권력 기반 귀인 편향(Power-Based Attribution Bias)라고 한다.


이 두 편향이 결합하면 동일 사건을 자신에게는 '맥락', 타인에게는 '성격'으로 해석하는 구조가 강화된다. 부정적 결과라면, 상대의 잘못은 상대에게 있지만, 자신의 잘못은 무조건 상황 때문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최광희 평론가의 반복된 해석 패턴은 바로 이 구조에 완벽히 부합한다. 조직에서 리더가 흔히 범하는 실수도 같다. 리더가 권력을 갖게 되면, 타인의 실수는 ‘무능’이고 자신의 실수는 ‘불가피한 사정’이 된다. 부하의 반발은 ‘무례함’이고, 자신의 직설성은 ‘진심’이 된다.


최광희 평론가의 하차에는 이러한 ‘삼중 구조’가 완성되어 있었다.


1) 도덕적 라이선싱 → “미치광희 캐릭터니까 괜찮다.”

2) 지각된 권력 → 팬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 판단은 옳다.”

3) 해석 비대칭 → "남의 발언은 문제지만, 내 발언은 맥락을 읽어야 한다."


이 조합은 스스로에게만 너그럽고 타인에게 엄격한 해석 구조를 만들며, 결국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 현상은 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에서도 반복된다


비단, 유튜브나 방송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흔하게 나타난다.

- '나는 원래 직설적인 리더야'라는 자기 라벨 → 공격적 피드백 정당화

- 구성원이 나를 지지한다고 착각한 팀장 → 비판에 둔감

- 특정 전문가에게 붙은 ‘천재, 괴짜’ 별명 → 규범 예외권 발동

- 팀 내부 팬덤(친위 세력)이 만든 내부 권력 → 자기확신 과잉


이런 상황들은 모두 똑같은 위험을 만든다. 조직이나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심리적 면허의 연쇄 작용이다.


‘미치광희’는 처음엔 캐릭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규범을 대체하는 면죄부가 되었고, 지지자 기반의 지각된 권력이 이를 강화했다. 그렇기에 동일한 발언이더라도 타인에게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 자신에게는 문제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한 사람의 돌발적 일탈이 아니라, 심리적 삼중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첫째, 라벨이 행동 면허로 작동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라벨은 사람의 행동 허용선을 넓히기 때문에, 팀원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라벨을 근거로 행동을 정당화하려 할 때 리더는 즉시 개입해야 한다.

라벨 기반 행동을 관찰하면 역할과 책임을 재확인하고, 라벨이 아닌 행동 기준에 따라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캐릭터나 별명이 규범을 대체하는 순간, 조직은 해석 비대칭에 취약해진다.


시네마 지옥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욱 MC는 최광희 평론가가 '미치광희'라는 캐릭터로 선을 넘으려고 할 때, 그가 맡은 정확한 역할을 제시하고 '캐릭터가 아닌 역할로 말해달라'는 기준을 설정했어야 했다.


둘째, 지각된 권력(perceived power)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주목’과 ‘지지’만으로도 권력자처럼 사고한다. 따라서 특정 구성원이 팀 내 비공식 권력자로 굳어지지 않도록 책임과 의사결정 역할을 순환시키고, 단일 팬덤이 형성되는 것을 차단하며, 주목과 인기보다 역할, 책임, 절차가 우위인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지각된 권력이 실제 권력을 넘어 폭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신작 영화 소개를 라이너 평론가 외에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진행하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수용했다면 어땠을까? 최광희 평론가가 신작 영화 소개를 하는 기회를 가졌다면, 자신의 역할에 대해 더 감사하고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셋째, 동일한 행동을 자신과 타인에게 다르게 해석하지 않도록 '대안적 해석 생성'을 일상화해야 한다.


해석 비대칭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연구로 입증된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상대가 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던 다른 맥락은 무엇인가?”

“이 행동을 당신이 아닌 타인이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자기 확신을 조정하고, 타인 판단의 과도한 엄격성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내가 보는 최욱 MC는 평소 이런 대안적 질문에 매우 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시네마 지옥 갈등 사태에는 이런 질문법이 유독 작동하지 않았다. 그만큼 최광희 평론가의 지각된 권력과 라벨 기반 면허가 강하게 작동된 상황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갈등을 예방하려면 라벨을 역할로 재정의하고, 지각된 권력을 분산시키며, 해석 비대칭을 조정하는 대안적 사고 루틴을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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