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심리학
여러분은 어떤 리더를 선호하십니까? 자신감이 넘치며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입니까? 아니면 자신감 없는 것처럼 보이며 매사에 심사숙고하는 리더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며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를 선호합니다. 의사결정의 결과가 맞든 틀리든 확신에 찬 단호한 결정이 리더다운 모습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조직 내에서만 벌어지진 않습니다. 정치, 학계,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확신에 찬 예측과 발언을 하는 전문가들은 좋은 평가를 얻고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예측에 확신이 없는 전문가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단호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소심하고 느린 의사결정에 비해 실제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와튼 스쿨의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문가들의 예측과 그 결과를 실증연구했습니다. 2005년 그가 연구한 결과가 발표되자 세상의 많은 전문가 집단은 당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나 국내외 정치 위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자신감 있게 내놓은 예측이 동전을 던져 하는 판단보다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사건 가운데 무려 15%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고,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 사건의 25%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이중에 가장 최악의 전문가들 사이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할수록 예측력은 떨어졌습니다.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실제 해당 분야의 탁월한 전문성보다도 그저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발언의 강도도 세고 예측엔 확신이 넘칩니다. 자신과 다른 견해는 쉽게 무시하고 객관적 사실조차도 왜곡해서 해석합니다. 대중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들 뿐, 정작 세상에 좋은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테틀록의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예측은 전체적으로 엉망이었지만, 이 중에서 예측을 잘하는 전문가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예측과 의사결정은 매우 어려운 영역이므로 불확실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자신감과 확신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는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순발력은 부족했지만 예측의 정확성만큼은 높았습니다.
Fortune 500대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가르치는 Advanced Competitive Strategies의 CEO인 마크 처실(Mark Chussil)은 2016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위와 같은 제목으로 보다 나은 전략적 의사결정 방법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처실은 직접 개발한 비즈니스 전략 게임으로 기업의 임원들, 컨설턴트들, 교수들, 그리고 MBA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실험했습니다.
실험 결과, 전략적 의사결정 능력은 높은 지능과 MBA 학위보다도 마인드셋(Mindset)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처실은 참여한 사람들의 마인드셋을 의사결정의 속도와 확신도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빠른 의사결정을 하면서 확신도를 높였고(I already know), 일부는 느린 의사결정 이후에 확신이 생겼습니다(Now I know). 또 다른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속도는 빨랐지만 자신감이 부족했고(I guessed), 어떤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속도도 느린데다 자신감도 부족했습니다(I don’t know).
그런데, 이들 중 가장 의사결정의 성과가 높았던 그룹은 놀랍게도 “잘 모르겠어(I don’t know)”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게 여러 측면들을 검토하며 자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직에서 높게 평가하는 빠르고 단호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조셉 시몬스(Joseph Simmons) 교수와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의 리프 넬슨(Leif Nelson) 교수는 사람들의 자신감의 원천과 자신감의 효과를 연구한 바 있습니다. 실험자들은 참가자들에게 프로야구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지 예측 결과와 결과에 대한 확신도를 함께 체크하도록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실험자가 경기 시간을 알려주자, 참가자들의 예측 확신도가 갑자기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경기 시간을 안다고 해서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질 리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감은 높아졌고, 게다가 처음 예측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 결정을 고집스럽게 고수했습니다.
우리는 자신감의 원천이 능력에 있을 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이없는 이유에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훈련을 한 전문가보다 이제 갓 입문해 기초 수준만 겨우 넘긴 초심자들의 자신감이 더 높습니다. 또한, 자기 비판이 없는 자신감은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의 콜린 맥로오드(Colin MacLeod) 등의 연구팀은 소심함이 과소평가된 덕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위험과 확률을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을 실험 장면으로 옮겼습니다. 참가자들은 세 번의 위험 상황마다 한 번의 Pass 카드를 쓸 수 있는데, 낮은 확률의 작은 위험은 감수하고 높은 확률의 큰 위험은 피해야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 번마다 Pass는 단 한 번만 쓸 수 있으므로 확률과 위험의 크기를 매 상황마다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위험의 크기에 민감하다면 확률이 낮더라도 카드를 쓸 것이고, 확률에 집착한다면 낮은 위험에도 기회를 날리고 말 것입니다.
실험 결과, 속성 불안(trait anxiety)이 높은 소심한 사람들이 속성 불안이 낮은 대범한 사람들에 비해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장면에서 대범한 사람들에 비해 정확한 판단을 내렸지만 낮은 확률의 큰 위험을 만났을 때만 점수가 낮았습니다. 소심함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대범함보다 분명 강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사실 확신은 너무 지나쳐서도, 또 너무 적어서도 안되는 덕목입니다. 확신에 넘친 자만심은 자신과 조직을 파멸로 이끌 뿐이고 반면에 지나치게 소심한 리더는 매력이 없습니다. 넘치는 자만심보다 차라리 소심함이 나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만, 확신을 보이라는 건지, 보이지 말라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이유는 우리가 확신에 관해 정작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확신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의 차원을 구분해서 보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확신의 차원과 넘쳐서는 안되는 확신의 차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고 후자는 자신의 전략이나 방법론에 관한 믿음입니다.
성과가 탁월한 리더는 자신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지만 전략이나 방법론에 대해선 의심합니다. 한마디로 겸손한 리더입니다.
겸손한 리더는 자신이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임을 늘 상기하고 인정하지만, 자신 자신에 대한 안정적 믿음과 책임감이 있습니다. 겸손함은 안정적인 자기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전략과 방법에 대해선 늘 의심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되는 의견을 듣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검증하고 확인합니다.
브리검영대학교 매리엇경영대학의 브래들리 오웬스(Bradley Owens)교수 등의 연구진은 가장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조직은 자신감과 겸손함 모든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리더가 이끄는 팀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자기 능력에 대해 믿음이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약점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고 있었습니다. 겸손함은 자칫 소심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심해 보이는 것이 겸손함 때문이라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겸손(humility)은 힘들지만 적어도 전략과 방법에 관해선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