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감각(S)과 직관(N)을 설명하는 '인식하는 정보' 보완
MBTI의 두번째 지표인 감각(S)과 직관(N)은 정보 인식에 관한 선호를 드러낸다. S형은 지금 현재,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정보를 선호하지만, N형은 현재 오감으로 인식되는 정보 이면에 있는 의미에 관한 정보를 인식하길 원한다. S와 N의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소개하겠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기억력에 관한 퀴즈를 풀 것이다.
아래 제시한 사진을 1분 동안 관찰한 다음, 이 사진과 관련한 퀴즈가 출제된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니 사진을 잘 관찰하도록 하자.
미안하지만, 사진과 관련한 퀴즈를 준비하지는 못했다. 진짜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1분의 시간이 주어지는 동안 자신이 사진의 어느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S와 N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S형의 경우, 사진에 제시된 구체적 사실에 주목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장화가 있는지, 전구는 사진의 어느 편에 위치하는지, 전등의 스위치는 문의 왼편인지, 오른편인지, 신발은 총 몇 켤레인지 등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기억하려 한다. 반면에, N형은 사진에 관한 퀴즈를 낸다고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잠깐 훑어보고 바로 왼 편에 있는 글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사진 이면에 있는 사연 즉, 의미는 사진이 아닌 글에 적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형이라면 자연스럽게 현재 주어진 정보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정확히 측정, 계산하려고 들 것이고 N형이라면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 패턴이나 관련성을 살피고, 기회나 의미를 찾으려 시도할 것이다. S는 N의 비약적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고, N은 S의 상상력 결핍과 융통성 없음을 참기 어렵다. 이처럼 선호하는 정보, 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끌리는 정보의 형태가 서로 다른 것이 S와 N의 차이라고 MBTI는 설명한다.
MBTI의 정보 인식에 관한 설명에 가장 가까운 심리학적 개념은 System1과 System2다.
이중정보처리이론(dual process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시스템을 가지고 정보를 처리한다. System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들지 않는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알아차린다던가, 구름을 보며 동물을 연상하고, 2+2와 같은 단순한 계산도 System1의 역할이다. 이에 반해 System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을 의미한다. 58×82를 계산하거나, 비좁은 공간에 주차할 때, 논리적 타당성을 따져보거나 '월리를 찾아라'처럼 비슷한 그림 중에서 다른 점을 찾아야 할 때에 작동되는 생각의 방식이다.
System1은 자동적이고 빠른 정보 처리 시스템을 갖췄지만 실수가 많다. 반면에 System2는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정보 처리 시스템이지만 느리다.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은 System1을 기본으로 작동시키면서 세상을 바라보다가 필요할 때, System2를 의도적으로 작동시킨다. System1은 직관, 감정, 인상 등의 정보를 System2에 전달하고 System2가 승인하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이 되고 감정으로 인한 충동은 자발적 행동이 된다. 일상적인 삶에서 대부분의 경험과 직관에 의한 System1의 판단은 효과적이고, System1과 System2의 역할 분담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선 System2가 제대로 개입하거나 통제하지 못해 편향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직관을 써야 할 때는 System1을, 치밀함이 필요할 때는 System2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System1과 System2의 사용 상황과 시점에 관한 경험과 학습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정보 인식에 있어 S에 비해 N은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는다. 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인식하면서 기회를 탐색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상한다. 그래서 MBTI 유형에 N이 포함되어 있으면, 직관적,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창의성이 MBTI 유형에서 N이 포함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중정보처리이론처럼 인간은 System1과 System2를 모두 갖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해당 체계를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MBTI를 어설프게 활용해 N은 창의적이고, S는 꼼꼼하다고 규정짓거나 단정한다면 인간의 인지체계에 관한 무지라고 밖에 할 수 없다. S도 얼마든지 창의적일 수 있으며, N도 충분히 주의력을 활용할 수 있다. 관건은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느냐에 있다.
S형이 N이 필요한 시점에서, 또 N형이 S가 필요할 때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심리적 간격이 클 때 우리는 나무보다는 숲을 보면서 추상적 언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세부사항과 구체적 방안 등 구체적 언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리적 거리의 여러 개념 중의 하나인 사회적 거리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가족, 친구, 동료, 상사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대부분 구체적 언어를 사용한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자녀와의 대화에는 학원 숙제와 수행 평가 과제를 말하지만, 명절 때 만난 조카와의 대화는 공부 잘하라는 추상적 언어만 오간다.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직속 상사는 우리에게 구체적 일정과 과업을 조율하며 대화하지만, 사회적 거리가 먼 CEO는 비전을 제시한다. 심리적 거리는 사회적 거리 외에도 시간적, 공간적, 경험적 거리로 나눌 수 있다. 10년 후에는 추상적인 꿈이 있지만, 당장 오늘은 구체적인 할 일이 있다. 공간적 거리가 가까운 사무실에서는 구체적 업무로 머릿속이 가득하지만 장소만 바꿔도 추상적 사고가 쉽게 촉진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스위스 한 달 살이를 떠올리면서 구체적인 분리수거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S형이 N이 필요한 시점엔 심리적 거리를 넓히는 대상, 시간, 공간,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 유리하고 N형이 S가 필요한 타이밍엔 반대로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시도가 필요하다.
하나 더, N형이 S가 필요할 때는 주의력 자원(attentional resource)을 써야 하는데, 익숙치 않은 환경이나 업무를 수행할 때는 주의력 자원의 여유가 없어서 구체적인 정보를 놓치기 쉽다. 익숙한 길을 운전해서 갈 때는 동승자와 대화가 자유롭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면 옆 사람과의 대화가 우리의 주의력 자원을 뺏기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집중이 필요할 때 우리는 잠깐만 조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N이 강한 사람이라면 주의력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이즈성의 정보를 차단하는 시도도 함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