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잉제이 Nov 30. 2019

선배놈과 후배님

시니어리티말고 주니어리티

두 명의 승무원이 캐빈에서 일하고 있다. 한 명은 선배이고 다른 한쪽은 후배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밀 카트(meal cart: 음식 쟁반이 들어있는 카트, 양쪽으로 문이 열림)를 양쪽에서 잡고 승객들에게 식사를 서빙하고 있었다. 서비스 도중 후배 승무원이 작은 실수를 했는데 선배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그녀는 후배에게 밀 카트의 문을 열고 잠시 앉아 보라고 지시했다. 그 둘은 카트 아래쪽에서 얼굴을 마주 봤고, 선배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후배에게 실로 대단한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위의 야기는 시니어리티를 가십 삼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서비스 도중 선배로부터 쌍욕을 먹은 가여운 후배의 잔혹동화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시니어리티(seniority)의 본래 뜻은 상급자인데, 승무원 용어에서 수직적인 선후배 문화를 말한다. 시니어리티=텃세=똥 군기 모두 같은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근무했던 E 항공사에 시니어리티가 없었다. 선배  후배에게 위를 남용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후배들도 선배라고 해서 괜히 주눅 드는 경우도 없었다.



E 항공사에 시니어리티가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각자의 스케줄이 매번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떤 항공사들은 팀(team)으로 묶어서 같은 크루가 몇 년을 같 일한다고 한다. 하지만 E 항공사는 매번 다른 크루와 일을 한다. 한번 비행한 크루와는 몇 년 뒤에나 다시 하게 되거나 영영 못하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이 일회성의 만남이니 시니어리티가 재하기 힘들다. 얼굴이라도 계속 봐야 똥 군기라도 잡을 것 아닌가. 



둘째,  다양한 문화나이 사람들이 섞여있다. 승무원들의 국적은 자그마치 100군데가 넘고 나이 굉장히 다양하포진돼 있다. 이코노에서 일할 때 만난  동료 승무원의 나이는 마흔 중후반이었다. 시 그녀는 입사 2년 차의 경력 없는 신입이었다. 몇의 아시아계의 승무원들을 제외하고는 나이나 경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점도 한 이유가 된다.  가끔 너무 날뛰는 크루에게 너보다 내가 열 살도 더 많아라고 하면서 나이를 쩍 흘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은근한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 너 나이 많구나. 끝. 노인에 대한 존중과 공손함 따윈 없다. 력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먼저 들어왔다는 점이 그녀들에게는 권위가 되지 못한다. 시니어는 먼저 입사한 사람 그 자체, 그뿐인 것이다.





시니어리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냐?




시니어리티가 없다는 건 분명 좋은 환경이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확고했던 이 신념이 몇몇의 사건을 겪으면서 들리기 시작했다. 




입사 4년 차 즈음의 이야기이다. 아부다비-카이로 비행구간이었다.  당시 나의 실제 직급은 비즈니스 승무원이었다. 보통은 비즈니스 객실에서 서비스 담당이지만, A320 같은 작은 비행기에서는 포지션이 달라진다. 이코노미 객실에서 부 매니저(Deputy Manager)로서 이코노미 서비스를 총괄다.




서비스를 마치고 우리들은 점프싯(Jump Seat: 승무원들이 앉는 접히는 의자)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휴식도 충분히 취했겠다 싶어 나머지 두 명의 크루에게  서비스 준비하자고 했다. 물 서비스(Hydration Run)는 30분마다 한 번씩 큰 쟁반에 물컵을 담고 기내를 돌아니면 승객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것 가리킨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제안한 것뿐이었는데, 되돌아온 대답은 말 신선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순간 내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얘가 헛소리를 하나. 아니면 다른 크루에게 말하는걸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다시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서비스 준비하자.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승객들 거의 다 자잖아. 안 보여?
왜 굳이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그래?
진정하고 쉬어.




팩트는 승객 중 반절 정도만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령 승객들이 다 자고 있는 것 같아도 서비스는 진행해야 한다. 서비스뿐 아니라 캐빈 체크(cabin check)도 시에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황해서였을까. 나는 대꾸도 못하고 얼음이 되었다. 러나 후배님그 말을 뱉고 나서 비즈니스 객실에 먹을 게 있나 둘러보고 오겠다며 재빠르게 이코노미를 떠났다. 그녀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비행한 지 일 년도 안됐는데 뭣이 이리 당당 무식거지?

뒤통수를 쌔리 치고 싶다.

머리채를 두 번 돌려 잡은 다음에 상모를 돌려버 싶다.




다행히 모든 것은 나만의 상상 안에서 무리되다. 나는 그녀와 어떠한 대화 시도하지 않았다. 설교나 충고도 하지 않았다. 비스룰을 따져가며 협박하지도 않았다. 사실 도 섞기 싫은 마음이었다.  내가 시니어랍시고 뭐라 해 봤자 귓등으로라도 듣겠는가. 그녀의 당당하다 못해 개념 없는 태도에 나의 기분만 나빠질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럴 때는 가끔 시니어리티가 너무 없는 회사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얘들아, 그러지 말고
나도 텃세 조금만 부려보면 안 되겠니?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을 관두고 비로소 보인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