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놈과 후배님

시니어리티말고 주니어리티

by 플라잉제이
두 명의 승무원이 캐빈에서 일하고 있다. 한 명은 선배이고 다른 한쪽은 후배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밀 카트(meal cart: 음식 쟁반이 들어있는 카트, 양쪽으로 문이 열림)를 양쪽에서 잡고 승객들에게 식사를 서빙하고 있었다. 서비스 도중 후배 승무원이 작은 실수를 했는데 선배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그녀는 후배에게 밀 카트의 문을 열고 잠시 앉아 보라고 지시했다. 그 둘은 카트 아래쪽에서 얼굴을 마주 봤고, 선배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후배에게 실로 대단한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위의 야기는 시니어리티를 가십 삼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서비스 도중 선배로부터 쌍욕을 먹은 가여운 후배의 잔혹동화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시니어리티(seniority)의 본래 뜻은 상급자인데, 승무원 용어에서 수직적인 선후배 문화를 말한다. 시니어리티=텃세=똥 군기 모두 같은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근무했던 E 항공사에 시니어리티가 없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위를 남용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후배들도 선배라고 해서 괜히 주눅 드는 경우도 없었다.



E 항공사에 시니어리티가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각자의 스케줄이 매번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떤 항공사들은 팀(team)으로 묶어서 같은 크루가 몇 년을 같 일한다고 한다. 하지만 E 항공사는 매번 다른 크루와 일을 한다. 한번 비행한 크루와는 몇 년 뒤에나 다시 하게 되거나 영영 못하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이 일회성의 만남이니 시니어리티가 재하기 힘들다. 얼굴이라도 계속 봐야 똥 군기라도 잡을 것 아닌가.



둘째, 로 다양한 문화와 나이대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승무원들의 국적은 자그마치 100군데가 넘고 나이대도 굉장히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이코노에서 일할 때 만난 동료 승무원의 나이는 마흔 중후반이었다. 시 그녀는 입사 2년 차의 경력 없는 신입이었다. 몇의 아시아계의 승무원들을 제외하고는 나이나 경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점도 한 이유가 된다. 가끔 너무 날뛰는 크루에게 너보다 내가 열 살도 더 많아라고 하면서 나이를 슬쩍 흘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은근한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 너 나이 많구나. 끝. 노인에 대한 존중과 공손함 따윈 없다. 경력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먼저 들어왔다는 점이 그녀들에게는 권위가 되지 못한다. 시니어는 먼저 입사한 사람 그 자체, 그뿐인 것이다.





시니어리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냐?




시니어리티가 없다는 건 분명 좋은 환경이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확고했던 이 신념이 몇몇의 사건을 겪으면서 들리기 시작했다.




입사 4년 차 즈음의 이야기이다. 아부다비-카이로 비행구간이었다. 당시 나의 실제 직급은 비즈니스 승무원이었다. 보통은 비즈니스 객실에서 서비스 담당이지만, A320 같은 작은 비행기에서는 포지션이 달라진다. 이코노미 객실에서 부 매니저(Deputy Manager)로서 이코노미 서비스를 총괄다.




사 서비스를 마치고 우리들은 점프싯(Jump Seat: 승무원들이 앉는 접히는 의자)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휴식도 충분히 취했겠다 싶어 나머지 두 명의 크루에게 물 서비스 준비하자고 했다. 물 서비스(Hydration Run)는 30분마다 한 번씩 큰 쟁반에 물컵을 담고 기내를 돌아다니면 승객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것 가리킨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제안한 것뿐이었는데, 되돌아온 대답은 정말 신선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순간 내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얘가 헛소리를 하나. 아니면 다른 크루에게 말하는걸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다시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 서비스 준비하자.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승객들 거의 다 자잖아. 안 보여?
왜 굳이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그래?
진정하고 쉬어.




팩트는 승객 중 반절 정도만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령 승객들이 다 자고 있는 것 같아도 서비스는 진행해야 한다. 서비스뿐 아니라 캐빈 체크(cabin check)도 시에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황해서였을까. 나는 대꾸도 못하고 얼음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후배님은 그 말을 뱉고 나서 비즈니스 객실에 먹을 게 있나 둘러보고 오겠다며 재빠르게 이코노미를 떠났다. 그녀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비행한 지 일 년도 안됐는데 뭣이 이리 당당 무식거지?

뒤통수를 쌔리 치고 싶다.

머리채를 두 번 돌려 잡은 다음에 상모를 돌려버 싶다.




다행히 모든 것은 나만의 상상 안에서 무리되다. 나는 그녀와 어떠한 대화 시도하지 않았다. 설교나 충고도 하지 않았다. 비스룰을 따져가며 협박하지도 않았다. 사실 말도 섞기 싫은 마음이었다. 내가 시니어랍시고 뭐라 해 봤자 귓등으로라도 듣겠는가. 그녀의 당당하다 못해 개념 없는 태도에 나의 기분만 나빠질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럴 때는 가끔 시니어리티가 너무 없는 회사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얘들아, 그러지 말고
나도 텃세 조금만 부려보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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