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의 온도 차

 현실은 항상 상상과는 다른 법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승무원은 멋짐으로 통한다. 매 비행 다른 세계의 도시를 관광하며 맛집에서 밥을 먹고 좋은 호텔에서 여행자처럼 시간을 보내다 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상상과 현실, 겉과 속은 항상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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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내가 근무했던 항공사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다. 승무원은 기본적으로 매달 다른 스케줄(통칭 로스터) 근무를 한다. 로스터는 개인마다 다르다. 비행은 기본적으로 레이오버(layover)와 턴 어라운드(turn-around)로 나뉜다.  레이오버 비행은 일정 시간 체류를 하고 돌아오는 비행이고 턴 어라운드 비행은 목적지의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승객을 태우고 허브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을 말한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비행기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승무원은 없을 것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레이오버 비행이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운이 좋은 달은 인기 있는 레이오버 비행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렇지 못한 달은 공항 냄새만 실컷 맡고 돌아오는 턴 어라운드의 비행으로 가득 찬다. 이런 달을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폭탄 맞았다고 표현한다.

체류시간이 짧으면 관광이 힘들다.

레이오버 비행이라고 해서 신나게 여행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비행마다 정해진 체류시간이 있는데, 어떤 비행은 그 시간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유럽의 어느 비행은 체류 시간이 16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비행기에서 모든 업무를 종료한 시점부터 시작해 다시 업무로 복귀하는 시간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니 이동, 준비시간을 포함한 16시간이란 꿀잠을 자기에도  모자란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비행의 경우 순수 비행시간만 12시간 정도였는데,  체류시간은 2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 비행은 거주 국가와의 시차도 크고, 고난도 코스의 비행이라 도시 관광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방문한 취항지나 체류기간이 긴 레이오버 비행에서는  바득바득 나가서 뭐라도 보고 오는 편이었다. 매번 새로운 비행이나 머무는 시간이 비교적 긴 비행들로만 로스터가 채워졌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승무원으로 일하는  해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취항지보다는 전에도 갔던 곳, 여러 번 갔다 온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호텔에 머무는 시간들이 잦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

인기 있는 비행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인기 비행은 보통 체류시간이 길거나 관광지, 혹은 새로 생긴 취항지를 말한다. 매달 자신이 원하는 비행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런 비행들은 항상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모두의 마음은 비슷한 법.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살뜰히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특정 기종의 특정 승무원

승무원들은 보통 교육받은 특정한 비행기 기종이 있다. 어떤 승무원들은 에어버스 380(A380), 어떤 이들은 보잉 787(B787)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 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그 기종이 취항하는 특정 비행 위주로 로스터가 짜여진다. A380 교육을 이수한 친구는 런던과 시드니가 매달 그렇게 나온다.

결국 짧은 체류시간, 특정 취항지의 반복, 컨디션 난조 등의 이유로 호텔 안에서 혼자 보내다 돌아오는 경우가  번번이 생겨났다.  나 같은 경우 두 번 이상 관광을 했던 도시에 또 가게 되면 보통 방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좋은 시간이긴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조금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매번 여행을 원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상과는 달리 그렇지 못한 적이 많았다. 유명 맛집에서 식사를 하며 인스타에 수많은 하트를 얻어낼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의 식사는 호텔방 침대 위의 룸서비스 식사였던 경우가 많다. 좋은  호텔의 부대시설도 이용할 힘이 없어서 침대와의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렇게 상상과 현실의 온도 차이는 승무원의 세계에서도 실제로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