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알려주는 난기류를 대하는 자세
"손님 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에 타면 한 번쯤 꼭 겪는 현상, 바로 난기류이다.
10년 가까이 승무원으로 비행을 한 나는 난기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익숙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존재이다. '비행'하면 '난기류'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매 비행을 난기류와 함께한다. 아기 요람이 흔들리는 정도의 귀여운 수준부터 비행기가 튕겨나갈 것 같은 흔들림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비행기 흔들릴 때 안 무서워?"
가까운 지인들이 종종 물어보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나도 무섭지!!"
나도 사람인지라 엄청난 난기류를 만나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승객들은 승무원에게 의지하고 승무원만 바라보고 있다. 단지 승객들에게 '괜찮다. 걱정 마라.'라는 안심의 신호로 옅은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다. 승객만큼의 공포심은 아니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비행 시작 전 객실 승무원과 운항 승무원(기장)은 함께 브리핑을 하며 공항 날씨, 항로상 날씨, 난기류 상황에 대한 내용을 주고받으면 날씨를 예측한다. 난기류를 대하는 승객과 승무원의 차이는 사전에 미리 알고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종종 난기류로 인해 승객 및 승무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를 본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남일 같지 않고 안타깝다. 객실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떨어져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엄청난 난기류가 객실을 휩쓸고 갔을지 추측할 뿐이다. 사진으로 본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랑'이라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실제 우리 항공사에서도 예기치 못한 난기류로 승무원이 뇌진탕으로 기절을 하거나 발목을 접질리는 사고가 있었다. 그만큼 난기류에 의한 사고는 비행하면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기압이나 풍량 변화 등이 난기류를 만드는 요인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맑은 하늘에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는데 이때 크고 작은 난기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40년 동안 심한 '맑은 하늘의 난기류'가 50%나 증가했다는 기사도 있다.
1. 비행 중에는 항상 벨트를 매고 있는다.
너무 식상한 답변이라 실망했는가? 단연코 이 방법만큼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
비행기 좌석에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면 허리가 뻐근하고 매고 있던 좌석 벨트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많은 승객들이 자리에 앉아있을 때 벨트를 매지 않고 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예상치 못한 강한 난기류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 비행기 안 상황은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난기류는 기장이 칵픽(Cockpit 조종실)에서 좌석 벨트 표시등을 켜 승객들에게 벨트를 매라는 신호를 보내고 곧이어 기내 방송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예측 불가한 상황도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내리기 전까지는 상시 벨트를 매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만약 객실 복도에 서있는 상황에 난기류를 만나게 됐을 경우에는 무리하게 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다. 이때에는 가장 가까운 빈자리에 앉거나 만약 비어있는 자리가 없다면 자세를 낮추고 근처에 있는 고정물을 잡고 난기류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2. 뜨거운 음식&음료 먹는 행위를 자제한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지나갈 때에는 승무원들의 뜨거운 물 서비스는 잠시 중단된다. 이때 컵라면이나 커피와 같은 뜨거운 식음료는 주문하지 않도록 한다. 만약 먹고 있는 도중에 심한 난기류를 만난다면 바닥에 내려놓는 게 현명하다. 화상의 위험 때문이다.
3. 화장실 이용 중 난기류를 만나게 된다면?
비행기 화장실에서 한참 볼일을 보고 있는데 자리에 앉아 좌석 벨트를 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참 난감할 것이다. 변기 주변에 벨트가 있나 살펴보지만 안타깝게도 찾을 수가 없다. 하던 일을 잠시 끊고 바지를 올리고 싶으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럴 경우에는 화장실에서 무리하게 나와 자리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화장실 내부 벽면에는 안전바가 있다. 안전바를 잡고 기류가 괜찮아질 때까지 화장실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4.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져 있고 기내 방송이 나왔는데 별로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져 있는 상황. 저 멀리 한 승객이 승무원을 부른다.
"저기 지금 화장실 가도 되나요?"
"손님 곧 기류 불안정한 곳 통과할 예정입니다. 앉아서 벨트 매고 계셔야 합니다."
10분 후.
"하나도 안 흔들리는데, 화장실 조심해서 갔다 올게요. 급해요."
"손님..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내 설명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승객은 화장실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위와 같은 상황은 난기류를 지나고 있을 때 꼭 생기는 일이다. 마치 불변의 법칙처럼 말이다. 긴 비행시간 동안 왜 하필 화장실 가는 타이밍이 지금이여만 하는지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물론 화장실 가는 것을 조절하기 힘든 것은 안다). 화장실 이용으로 승객과 실랑이하는 것도 은근 정신 에너지 소모되는 일이다.
난기류가 예보되어 있는 구간을 지나갈 때에는 기장은 승객의 안전과 부상 방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좌석벨트 표시등을 켜놓는 경우가 있다.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화장실 사용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던지 객실 복도를 돌아다니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한다.
비행 연차와 상관없이 서비스 도중 갑작스러운 난기류를 만나면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난기류가 심한 경우에는 승무원 또한 하던 서비스를 중단하고 점프싯(Jump Seat 승무원 전용좌석)에 앉아 벨트를 매기도 한다. 이때 승무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승객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확인한다. 만약 누군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일어나게 된다면 승무원으로부터 즉시 제지 당할 것이다.
승무원은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기 전에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 요원이다. 승무원의 안내와 지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안전하고 즐거운 비행이 되길 바란다.
PS. 승무원으로서 한 가지 부탁드려요. 화장실 사용은 부디 난기류가 없을 때 사용해 주세요:) 난기류 때 화장실 가겠다는 손님을 막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안전상 어쩔 수 없다는 부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안전에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면 사고 나는 건 한순간 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