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말라는 뜻인가? 상사가 원하는 대로 대답을 해야 회사생활이 무난하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대응을 해야 고객 만족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20년의 직장 세월을 더듬어 본다. 나는 잘 휘둘리는 사람인가? 지난 시간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잘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였다. 불합리한 상황에 마주하면 불합리하다고 앞장서서 맞섰다. 어려운 일을 맡으면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의 희생을 인정받아야 했다. 칭찬을 받으면 우쭐해졌다.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는 속담처럼 나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ISFJ 이다.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며 판단형이라고 한다. 용감한 수호자, 실용적인 조언자 유형이라나. 그렇다. 조직생활을 하며 앞장서서 내가 속한 부서를 대변하고 보호했다. 직속상사에게 인정은 받았지만 호불호가 강했다. 인정을 받으며 빠르게 진급을 하기도 하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이 생겼던 것이다. 직속상사들을 등에 업고 잘 나갈 때는 몰랐으나 한 번 삐끗 어긋나자 보이지 않던 적들로 그동안 쌓아왔던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아야 했다. 상대라고 불합리한 것을 모르겠는가. 내 동료들이라고 불합리한 것을 몰랐겠는가. 앞장서서 먼저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빠르게 반응하고 시시각각 휘둘렸던 나를 뒤돌아 본다. 용감한 수호자라 자부했지만, 뒤돌아보니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잘 휘둘리는 일꾼은 아니었을까? 눈치 빠르게 판단력과 순발력이 좋다고 자신했는데,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휘둘렸던 것은 아닐까?
사실 지금도 나는 휘둘린다. 작은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사소한 일에 감정이 상한다. 감정의 소모가 많은 만큼 하루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이제 상사, 후배, 회사의 관점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본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바라보며 휘둘리지 않겠다.
퇴근길 조용히 읊조린다.
회사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동료와 감정 소모로 힘들다면
상사의 무리한 요구로 지친다면
거래처, 고객에게 상처를 받는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하루로 꽉 채워진 하루를 응원하며, 퇴근길 하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