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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 취하다 Oct 04. 2023

잘 적응 상, 나에게 주는 트로피

귀임 3년 차, 아들도 힘들었구나.

 나에게 주는 트로피 만들기

 어떤 트로피를 받고 싶으세요? 또는 만들고 싶으세요?



 초등학생 아들의 하이클래스 앨범에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다. 나에게 주는 트로피?

 '이거 참신한데, 우리 아들은 어떤 상을 만들었을까?'

 사진을 순서대로 넘긴다.

 도전상, 노력상, 달리기상, 키큰상, 운동상, 게임상, 행복상, 바둑상, 배려상, 예쁜글씨상, 무기박사상, 도전상, 도전상, 노력상, 피아노상, 열심상, 그림상, 잘 적응 상, 개근상, 개근상, 행복상, KIND상, 스마일상, 도전상, 그네상

  아들의 사진을 찾았다. <잘 적응 상> 트로피를 한 손에 들고서 해맑게 웃고 있다. '잘 적응 상이라고?' 다시 확인해 본다. 맞다. 잘 적응상.



 사진 속 아들의 트로피를 찾으며 어울리는 상을 떠올려 보았다.  배려심이 남다르니 배려상, 이웃에게 인사를 잘하니 인사상, 잘 웃으니 웃음상, 이해상, 축구를 좋아하니 축구상, 영어상을 짐작했다. 그런데, 처음 들어본 <잘 적응 상> 이라니. '뭐 이런 상이 있담?' 순간 멍해진다. 정신을 차리니 여러 생각들이 든다.

 <잘 적응 상>이 위로와 깨달음을 준다.

 트로피를 생각하면 스포츠 우승팀이 들고 있는 반짝이는 우승컵이 먼저 떠올려진다. 이렇듯 반 친구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남보다 잘하는 것, 특이한 것으로 트로피를 만들었다. 달리기상. 노력상, 예쁘글씨상처럼.

 아들은 남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자신과 동행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치열한 경쟁문화에서 남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는 편견이 아닌 본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니.

 '아들, 아빠보다 네가 더 훌륭하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독일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복귀한 지 이제 3년 차이다. 첫째 아이의 첫 학교생활은 국제학교였다. 한국으로 귀임하여 초등학교로 전학을 한 아이는 다행히 학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급식이 맛있다고. 독일에서의 스파키티, 소시지는 입맛에 맞지 않았나 보다. 가끔 독일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잘 다녔기에 한국 생활에 어려움 없이 적응했다고 여겼다.

 

 이번 학기에는 임원선거에서 부회장으로 뽑혔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가 어려움 없이 적응을 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국에 전학을 와서 매 학기 임원선거에 나가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도 아내와 나는 말렸지만, 이는 꿋꿋하게 후보로 등록했고 5학기 만에 부회장이 되었다.


 아이가 만든 <잘 적응 상> 은 완전히 다른 한국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겪었을 어려움과 부회장 당선의 열매라는 생각이 드니 종이로 만든 트로피가 금빛 트로피처럼 빛나보였다.

아들, 적응하느라 힘들었구나.
잘 적응해 주어 고맙다.



 귀임 후 맞이하는 회사는 낯설었다. 새로운 사옥, 새롭게 도입된 자율좌석제, 모르는 동료들, 모든 게 적응해야 할 대상이었다. 오랜 시간 굳건히 쌓아온 나의 입지도 사라져 있는 듯했다.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아들의 적응은 당연한 것이고 나의 적응이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너도 적응하느라 힘들었구나.'


가족과 함께 <잘 적응 상>을 나누고 싶다




 오늘 어떤 하루를 맞이하고 계시나요?

 지금 서 계신 그 자리까지 잘 적응하신 독자님께도 '잘 적응 상'을 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맞이하시기까지, 어려움을 견디고 잘 적응하셨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잘 적응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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