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삶은 외교전과 닮아있을까?
지도 위 강대국들 사이에 낀 작은 나라들의 외교사를 듣다 보면, 묘하게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자신의 주위에 경쟁자가 많은(또는 많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과, 지리적으로 다른 여러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들 간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핵심적인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1. 과각성 상태, 끊임없는 환경 탐색
2. 대체 불가능성을 위한 차별화 강박
3. 고도의 줄타기와 네트워킹 전략
4. 만성적 긴장과 피로
그럼 이제 이 네 가지 공통점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1. 과각성 상태, 끊임없는 환경 탐색
먼저 "과각성 상태와 끊임없는 환경 탐색"이다. 경쟁자, 경쟁국을 의식하는 이 둘은 모두 주위를 탐색하며 상대의 성과와 동향, 변화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변화나 상황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항상 레이더를 켜두는 것과 비슷하다. 정보 수집 능력이 생존과 직결(또는 직결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우리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유난히 남이 뭘 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주위에 경쟁자가 많아서(혹은 많다고 인식해서) 생존을 위해 과각성 상태에 놓여 있고 끊임없이 환경을 탐색하며 정보수집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러한 정보수집형(가십형) 사람들이 왜 나는 관심도 없는 남의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2. 대체 불가능성을 위한 차별화 강박
두 번째는 "대체 불가능성을 위한 차별화 강박"이다. 이들은 경쟁자와 비슷한 스펙이나 능력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이나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국가의 관점에서는 압도적 기술력을 확보하거나(대만의 반도체), 독특한 중립국의 지위를 확립하거나(스위스),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대체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또한 이에 더해 자신이 확보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이 되기도 한다. 핵심 노하우나, 희소한 데이터, 중요한 업무 네트워크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희소성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의 경우에는 이러한 배타성이 기술 패권 경쟁, 핵심 자원의 수출 통제, 보호무역주의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우리와 그들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차별화를 유지하는 전략은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고립을 초래하게 되며, 새로운 지식이나 자본, 혁신이 유입되지 못해 개인과 국가는 결국 도태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3. 고도의 줄타기와 네트워킹 전략
개인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사내 정치나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인간관계 관리에 힘을 쏟게 된다. 국가도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나 실용외교를 하며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요즘 유럽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고 있는데, 유럽 국가들은 서로 땅이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는 만큼 생각보다 국가 간의 정체성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쪽 나라의 왕자나 공주가 옆 나라의 왕족이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즉 경쟁을 하는 관계이지만 어떨 때는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맺어야 하고, 이러한 신뢰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경쟁자나 경쟁국 사이에 놓인 개인이나 국가는 상황을 기민하게 살피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고도의 관계 관리 능력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다. 바로 옆에 경쟁자들이 많다면 오히려 자신의 편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누구와도, 어떤 국가와도 척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만 개인 차원에서는 국가 차원과는 달리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줄타기를 하다보면 다소 "약아보이는" 행동이나 계산적, 이기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모습의 부정적인 모습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까?
인간관계는 호혜성과 진정성이라는 신뢰 자본을 통해 굴러가게 된다. 따라서 손익을 따지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행동한다면 주위에서는 결국 그를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할 것이다. 신용이 파탄나 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박쥐 같은 태도는 평상시 모두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큰 갈등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나를 방어해주고 함께 위험을 감수해줄 진짜 "내 편"이 남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기적, 계산적이라는 평판은 결국 중요한 프로젝트나 승진, 기회에서 그 사람을 배제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4. 만성적 긴장과 피로
주위에 경쟁자가 많은 환경에서는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번아웃에 취약해진다. 휴식조차 불안해 하게 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사회적인 위기감이 항상 높아져 사회 전반에 경쟁 압력과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이렇게 항상 긴장된 상태,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는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해지고 예민해지며, 마음에 여유가 없어 창의적인 생각이나 혁신은 불가능해진다.
즉 그토록 원하던 차별성 확보와 역량의 제고를 방해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공통점을 살펴보았는데, 사실 경쟁에 시달리는 개인과 국가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국가의 지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개인의 경쟁은 환경 변화를 통해 타개할 수도 있고, 사실은 인식의 오류이기 때문에 경쟁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지도 위에 박제된 영토가 아니다. 국가는 바다와 산맥, 강대국이라는 물리적 숙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제든 두 발로 걸어 환경을 바꾸거나 내면의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다.
스스로를 '경쟁자들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국가'로 규정하고 과각성 상태로 벽을 높이는 일은 단기적인 생존에는 유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과 피로라는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하며, 인지적 자원을 고갈시키고 창조력을 앗아간다. 진정한 차별화와 대체 불가능성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남을 견제할 때가 아니라, 무장 해제된 편안한 상태에서 나만의 여백을 누릴 때 비로소 피어난다. 이해관계를 따지는 얄팍한 외교전보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결국 가장 든든한 동맹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주변을 살피던 예민한 레이더를 잠시 끄고, 나를 지키기 위해 높게 쌓아 올린 마음의 국경선을 조금 허물어 보는 것은 어떨까.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숨죽이며 억지로 생존하는 삶이 아니라, 기꺼이 여유를 허락하고 진실하게 연결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를 평화롭게 일구어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피 말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쟁취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승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