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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와 추억

체제에 맞서 싸우는 엘파바에 감정이입되다...

by 브래드

어제 오랜만에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가서 '위키드' 뮤지컬 영화를 보고 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뮤지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던 내가.. 지금 와이프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이해한 뮤지컬이 '위키드'였디. 총각 때, 뮤지컬을 도대체 왜 보는지 몰랐고, 상대적으로 비싼 문화생활인데,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 데이트를 하면서 와이프의 취미생활을 같이 하기 위해 뮤지컬을 보기 시작했었다.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초보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것들을 위주로 접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뮤지컬에 대해서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고, 'F'감정이 하나도 없는 'T'인 내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이해하려는 노력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뮤지컬을 보려 가는 길에도 다투고 했었던 것 같다. '루돌프 황태자', '엘리자베스', '지킬박사와 하이드', '모차르트', '노트르담드 파리', '웃는 남자', '레베카' 등 기억나는 건 이 정도인 것 같은데, 몇몇 생각나고 감동을 준 넘버들이 있었다. 그중에 몇 편의 뮤지컬의 넘버가 뮤지컬에 눈을 뜨게 해 줬다.


첫 번째로 '모차르트'의 '황금별'이었다. 신영숙 배우의 그 노래가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줬고, 뮤지컬이 이런 감동을 받기 위해서 듣는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줬었다. 한동안 '황금별' 넘버에 빠져있었고, 그로 인해 뮤지컬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사실 '황금별'빼고는 '모차르트'가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영숙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 위주로 와이프에게 얘기해서 신영숙 배우가 출연하는 대다수 작품을 찾아서 봤었다.


두 번째가 바로 '위키드'의 '디파잉 그라비티'였다. 위키드는 예전에 박혜나 배우와 정선아 배우의 뮤지컬을 봤었는데, 내용도 그렇고 너무나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샤롯데'에서 봤었는데, 무대에서 공중에 매달려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닭살이 돋고 전율이 느껴졌었다. 그 당시에는 뮤지컬을 몇 번 접하지 못했던 터라, 배우들도 잘 모르고, 그냥 봤었는데.. 이래서 와이프가 뮤지컬, 뮤지컬 하는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가슴이 터지는 샤우팅과 연기에서의 감정.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 현장에서의 사운드와 분위기 등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나고 같이 본 첫 뮤지컬을 '판타지아- 돌아온 도로시'를 보았다. 어린이 뮤지컬이라 그때의 감정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볼만했고, 줄거리를 좀 아니깐 이해하기 편했었다. 우리 딸도 이 뮤지컬때문에 '위키드'를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감동을 받았던 '위키드'가 영화화가 되었다. 사실 개봉한 지는 좀 되었지만 회사일과 아이를 데리고 약 3시간의 러닝타임을 버티는 게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더빙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계속 시간을 보다가 드디어 어제 본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내가 예전에 봤던 뮤지컬의 출연진이 대단했다는 것을 영화 더빙판을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내가 봤던 뮤지컬의 출연진이 그대로 더빙판을 참여했고, 엘파바에 박해나, 글린다의 정선아, 마법사 남경주 등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보다 우리 딸도 화장실 한 번을 안 가고 긴 러닝타임을 집중해서 잘 봐서 뿌듯했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마지막 '디파잉 그라비티(Defying Gravity)'가 나오면서 엘파바가 도망치며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데.. 눈물이 주르륵 났다. 진짜 젊었을 때는 눈물이 정말 없었는데, 왜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눈물이 주르륵 계속 흘러서, 딸이 볼까 봐 몰래 닦았다. 참 신기한 것 같다. 눈물이 별로 없었던 내가 뮤지컬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리다니.. 요새 회사 조직개편이나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그게 대입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노래 가사가 기존 틀에 억압받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믿고 해 보자는 그런 내용에서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색으로 계속 놀림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고, 능력이 발견되어 그것을 이용하려는 마법사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본인의 능력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는 그 가삿말이 왜 이렇게 내 가슴에 와닿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못된 방식이지만 순응하며 살지 않고, 본인이 생각한 방식을 고수하며, 내 능력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런 마음이 내 가슴을 움직인 것 같다.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만들어진 나로 살아갈 것인가, 환경에 대해 도전하고 내가 맞다고 판단한 것을 믿고 도전할 것인가..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사악한 서쪽마녀로 통하지만, 실제 사악한 서쪽마녀는 만들어진 것이고, 능력 없는 오즈의 마법사가 자신을 숨기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 뭐가 진실인지 모르는 현재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이 감동을 유지하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 소설을 찾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영화 한 편으로 행복해진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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