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으로 만든 감동
얼마 전 단순히 소설이 읽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랭킹에 있는 소설을 골라서 그냥 읽었다. 제목도 생소했고, 책 표지가 노란색이어서 그저 생각 없이 읽었었다. 책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이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 번 예측을 했지만 다 실패하면서 뭔가 허무하게 책이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학자에 대한 전기라고 생각했었고, 그다음에는 불륜 소설인가 생각했다가 사회 동료들과 갈등에 대한 내용인가? 병이 들어서 슬픈 이야기인가? 그런 예측과 반전을 기대하며 읽었다가 적당한 자극을 주는 매우 평범한 책이었다. 다 읽고 난 뒤 책을 다시 찾아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책이었고, 미국에서 출판되었지만 한참 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양극화가 되고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달라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자가 되기 위한 전기 소설인가? 책의 앞부분에서 스토너는 농사짓는 가난한 집 아들로 묘사되어 있었다. 농사의 일손이 부족하면 도와주는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소년이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농사에 대한 기술을 배우면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대학교에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집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에 빠진 스토너는 부모님 몰래 전과를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한다.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졸업식에 얘기를 하고, 부모님도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느낌으로 허락을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되는 과정을 매우 평범하게 그려냈다.
불륜소설인가? 아니면 사회 갈등 이야기인가? 순수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결혼을 잘못한 케이스였다. 제멋대로 하고, 사랑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스토너를 대하는 와이프.. 일과 육아를 모두 남편에게 부담시키고, 여하튼 별로인 와이프와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강사인 그레이스와 사랑에 빠져 불륜을 저지르고, 하지만 금세 탄로가 나면서 헤어진다. 그로 인해 대학교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스토너는 별로 대응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병이 걸려서 슬픈 결말인가? 마지막에는 병에 걸려서 오늘내일하는 순간들이 묘사가 된다. 뭔가 극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모습도 없고, 와이프와 다시 관계가 좋아져서 서로 애틋한 내용도 없고, 마지막 작품을 만든다고 애쓰는 그런 모습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담담하게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매우 추상적인 말을 남기고 그렇게 끝이 난다. 다 읽고 났을 때,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다야? 이게 뭐야? 너무 한평생 참기만 하고 결국 마지막에도 참기만 하고 별거 없이 끝이 나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생겨났다.
나는 평범함의 위대함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책 속의 스토너처럼 적당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적당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적당히 사랑하고, 갈등하고, 적당히 그렇게 지내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스토너가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는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삶이 스토너보다 더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것 같고, 저런 삶을 꾸준히 유지하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남자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렇게 표현한 이 소설이 오랜만에 많은 생각과 삶에 대한 시야를 다시 돌아보게 한 것 같다.
특별한 것 없고, 지극히 평범한 그런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고 와닿는 것 같다. 성공스토리, 불쌍한 이야기, 신박한 사건 등 많은 소설에서는 특별함을 주고 대리 인생을 경험하게 했었는데, '스토너'는 평범한 인생을 대리 경험을 해준 것 같다. 뭐랄까? 한 남자의 인생을 무심히 지켜본 느낌이랄까? 나도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