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힐링되는 책..
와인을 잘 모르지만 마시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우연한 기회에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와인을 접하면서 와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이라는 '먼 나라 이웃나라'를 쓰신 이원복 교수님 책으로 공부했었다. 대략적으로 어느 나라에는 어떤 품종이 좋고, 특히 어떤 지역이 좋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습득한 채 와인을 마구 사 먹었었다. 근처에 와인샵이 있어서 추천도 받고, 비비노 어플로 찍어가면서, 인터넷에서 와인의 스토리도 보면서 와인을 재밌게 즐겼다. 물론 전문적으로 동호회나 취미로 하는 분들은 못 따라가지만 저렴한 와인들 중 가성비 좋은 와인을 선별하는 걸 즐거워한다. 다양하게 경험하려고 하지만 와인이 다른 술에 비해서 비싸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살 수는 없어서, 항상 부족함에 더 감사해하면서 와인을 즐긴다.
이탈리아는 내가 신혼여행으로 간 멋진 나라이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와이프는 폼페이와 포지타노, 로마, 피렌체 등 관광지 위주로 보고 싶어 했었고, 나는 오로지 축구를 보기 위해 로마에서는 AS로마, 밀라노에서는 인터밀란 경기를 보는 것으로 합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축구도 재미있었지만 워낙 도시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역사적인 나라이다 보니 그 아름다움에 푹 빠졌었다. 그때는 어렸기도 하고, 이탈리아에 가면 와인을 마셔야 한다는 것만 들어서, 식당을 갈 때마다 하우스 와인을 마셨다. 매우 싱그럽고 상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마어마하게 와인을 골라서 마셨을 것 같다. 아직도 후회하는 것이 피렌체를 갔었는데, 토스카나의 와이너리들을 왜 안 갔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이탈리아는 가볼 것이다.
토스카나의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은 나의 최애 와인이다. 이 책에서는 와인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그 도시에서의 와인의 역사와 인물, 동네, 와이너리, 와인메이커 등 다양한 와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그림도 싱그럽게 들어있고, 내용도 많다 보니 페이지가 500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하지만 매번 머리 아프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어려운 책만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와인과 좋았던 기억을 가진 나라가 합쳐지니 너무 힐링이 되고 즐겁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의 50% 이상이 토스카나 지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탈리아 하면 워낙 유명한 끼안띠 클라시코 리제르바 와인이 대표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지역이 토스카나 지역 안에 있는데,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쟁으로 피렌체 쪽으로 기울어진 지역이라고 한다.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으로 만든 약간 순하면서 음식과 페어링이 아주 잘되는 싱그러운 와인이라서 내가 매우 좋아한다. 매우 반가운 이름들이 많이 나왔다. 베라짜노, 안티노리, 반피 등 내가 경험해 봤던 이름들이 나오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안티노리 끼안띠 클라시코 리제르바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이 와인이 슈퍼 투스칸인 티나렐로의 세컨드 와인인 줄 알았는데, 티나렐로는 카쇼를 블랜딩 한 다른 종류였다. 사실 티나렐로는 비싸서 아직 못 마셔봤다. 비교적 반피 브랜드의 와인이 저렴해서 자주 마셨는데, 미국인이 설립한 와이너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반피 와인이 전 세계에 토스카나 와인을 알린 일등공신이라고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타일로 대량생산을 하는 최초의 이탈리아 와인이라고 한다.
와인 이야기에 역사적인 사람들이 매우 많이 언급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에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와인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석사 논문을 쓸 때 와인 한잔씩 마시면서 썼는데, 창의력에는 와인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많이 마시면 졸려서 안되긴 하다. 몬탈치노의 브루넬로 와인이야기에서는 단테의 이야기가 나온다. 단테의 '신곡'에 브루넬로 와인이 제법 많이 언급된다고 하니,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마지막 시칠리아 이야기에서도 괴테의 말을 인용했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 이탈리아를 본 것은 이탈리아를 전혀 본 것이 아니다. 시칠리아에 모든 것에 대한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와인도 유명한 것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이탈리아는 언젠간 또다시 꼭 방문해보고 싶다. "와인의 왕, 왕의 와인' 바롤로 와인,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바르바레스코 지역, 끼안띠 클라시코 와이너리 체험을 할 수 있는 아그리투리스모 코르테 디 발레 등 이 책에서 언급한 것 중에 꽂힌 것들을 다 기록해 놨다. 언젠가는 이곳을 거닐면서 여유 있게 책을 읽으면 와이너리 체험도 하고, 매일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런 날을 위해 또 내일부터 열심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