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소설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지만, 시간이 나거나 쉬고 싶을 때 읽는 편이다. 힘든 일 년을 거의 다 보내고, 잔여 연차 소진을 위해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면서 몇 가지 책을 읽었다. 1월 1일 기념으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한복 입은 남자"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가족 모두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아직 애가 어려서 어린이 뮤지컬만 봤는데, 이 뮤지컬은 8살 이상부터 볼 수 있어서 다 같이 보기로 했다. 첫 뮤지컬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이 내용을 찾아봤다.
사실 뮤지컬은 나보다 와이프가 잘 알아서 예약해 주면 따라가는 편이다. 이 뮤지컬은 원래 소설이고 한국 창작 뮤지컬이라고 한다.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 해서 외국 뮤지컬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창작한 것이라고 해서 더 흥미가 생겼다. 소설로 미리 배경지식을 쌓고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하루 만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 읽어버렸다.
장영실이 로마에 갔다면? 이 소설은 모든 정황을 음모론처럼 구성되어 있고, 작가가 증거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진짜같이 이야기하지만 픽션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장영실은 우리가 세종대왕을 도와서 해시계, 물시계를 만든 천재 과학자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그렇게 총애해서 신하들의 반대에도 천민출신인 장영실을 종 3품 벼슬까지 내린다. 그런 장영실을 가마를 만들게 하고 그 가마가 망가져 파직을 하고, 그 이후의 기록이 거짓말처럼 없다. 작가는 그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 장영실이라면? 조선의 비차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가 생긴 게 동일하고, 신기전과 다연발 로켓포 등 장영실이 조금 더 앞서 발명한 것들이 거의 비슷하게 발명되었다는 의견을 작가는 하고 있다. 이런 추리와 상상력은 내 흥미를 자극하였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고, 같은 시대 사람이고 장영실이 50살 때 다빈치는 7살 정도라고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대가 맞는 것 같다.
정화 대장의 배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멀리 갔다면? 장영실이 정화대장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고 명나라를 자주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7번째 항해 후 기록이 없어진 정화는 장영실을 데리고 유럽으로 갔다는 상상력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교황에게 쫓기면 장영실은 피렌체로 가서 다빈치를 만나지만 정화는 더 넓은 바다를 탐험하러 떠난다. 요새 조금씩 알려지는 사실은 정화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미국을 발견했다는 학설도 있고, 제임스 쿡보다 호주와 남극을 먼저 탐험했을 수도 있다는 학설도 있다고 하니, 이탈리아야 매우 쉽게 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판타지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장영실, 정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가 동시대의 사람이고 동일하게 신분의 아픔을 가진 천재들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장영실은 어머니가 관기출신으로 노비였고, 정화는 환관이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자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분에도 굴하지 않고 끝없이 노력했다는 것이 공통점이 있었다.
또 하나, 그들을 알아봐 준 리더가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이들과 같은 존재가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하지만 리더가 올바른 눈이 없어서 그냥 묻힌 사람들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영락제 같은 리더가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휴가를 보내면서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재미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