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르미 Nov 09. 2020

봄날, 엄마의 첫 등교

엄마 이야기 10

올해 벚꽃은 코로나 때문에 ‘드라이브 스루’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서인지 몰라도 유난히 올해 벚꽃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엄마, 내 차에 그냥 타고 있으면 내가 예쁜 벚꽃들 구경시켜줄게.
요즘 코로나 때문에 드라이브 스루가 유행이잖아.
우리도 드라이브 스루로 꽃구경 하자.

머뭇거리던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맥 빠지게 했다. 


다음에 갈게. 조금만 더 나으면......


내가 늘 어렵게 꺼낸 말에 엄마의 대답은 똑같았다. 마치 시험을 앞두고 달달 외워서 대답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다음에’라는 말이 나는 지겨웠다. 이렇게 미루다가 엄마에게 좋은 구경 한 번도 못 시켜 줄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좋은 추억을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엄마가 기다려주지 않고 어느 날 훌쩍 떠날 것 같아서 가끔 불안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올봄부터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아빠를 보면서도 엄마는 당신도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타는 엄마는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다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특별하게 보는 시선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도 두 번 정도 엄마의 의사를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그 이상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엄마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상황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가 다니는 센터에서 집에 처음 방문한 날 센터장과 아빠의 대화는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어서 잊히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센터예요. 전화받고 우리 어머님 상태 좀 보려고 방문했어요.” 

아빠는 꽃무늬 원피스에 눈이 크고 예쁘게 생긴 센터장을 훑어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어디 센터여?” 


센터장은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네. 군산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왔어요.” 


“진작에 그렇게 말해야지. 항상 소속을 밝히는 거야. 센터가 한두 개야? 어디 센터인지 말해야지. 이름이 뭔가?” “이름이요? 신! 소! 자! 신소자 센터장입니다. 어르신.” 


아빠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소자’ 란 이름이 특이해서 그랬는지 ‘소? 소‥‥’ 이러면서 허허허 계속 웃는 바람에 나는 센터장이 무안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센터장이 하는 말을 들으며 ‘역시 어르신들 모시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제 이름이 좀 특이하지요? 아버님이 웃으시니 저도 좋네요. 호호호.” 
“한자로 쓸 수 있어? 이름 여기에 한자로 써 봐.” 


아빠가 주는 종이와 볼펜을 받아 든 센터장은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이거 시험이에요?” 
“기본을 아는지 봐야지. 한자로 어서 써 봐!” 


센터장이 한자로 이름을 쓴 종이를 받아 든 아빠는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대답을 들은 후 큰 소리로 말했다. 


합격!


센터장은 이제 시험 합격했으니 어머님 좀 만나도 되겠냐고 묻고 허락을 받아냈다. 센터장과 대표님이 엄마의 다리를 만져보고 침대에서 일어나 휠체어에 혼자 앉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화도 나눠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인지능력이 좋으시네요


오랫동안 안 걸어서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재활 치료를 받으면 곧 걸으실 수 있겠다며 내일부터 우리 센터에 같이 가자고 엄마 손을 잡고 말했다. 망설이는 엄마에게 대표는 부담 없이 일주일만 다녀보고 결정하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집안까지 들어와서 엄마의 휠체어를 밀며 모시고 갔다. 나는 엄마가 차에 타는 것을 부축하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좀 있다가 가볼게.
그때 만나! 불편한 거 있으면 센터장님한테 말하고. 알았지?


차량이 아파트를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이 되었다. 엄마의 첫 등교에 나까지 긴장이 되고 설레기도 했다. 첫날이니 보호자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센터에 오라고 전화를 했다. 안 그래도 센터 구경도 하고 싶었고 그 안에 있는 엄마의 모습도 궁금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명분이 생기니 더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게 은파 벚꽃길이죠? 딸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벚꽃 보여준 다고.
벚꽃은 졌어도 철쭉도 피고 이쁘네. 진짜 이쁘다!
꽃구경하시지 왜 안 하셨어요?
내가 차 한번 타려면 힘들어서. 우리 딸도 힘들고.


상담실에서 센터장이 아침에 엄마 모시고 오는데 엄마가 말씀을 너무 잘하신다며 대화 나눈 내용을 들려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님은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이 라는데 그 말이 맞나 보다. 나는 엄마가 당신 몸이 너무 힘들어 그런 줄만 알고 상황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다른 평범한 가족이 부럽기도 했었다. 내가 엄마에게 벚꽃 구경 한번 시켜드리려고 나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을 하면서 엄마의 지난 세월을 급하게 토해내다가 울컥해져 나도 모르게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센터장이 휴지를 건네주며 다독여줬다. 센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집안에 아픈 부모가 있는 건 진짜 힘든 일이에요. 일단 심적인 부담이 크죠. 울지 마시고 이제는 어머님도 따님도 강해져야 합니다. 오랫동안 집에 계셔서 여기 다니는데 적응 기간이 필요해요. 처음엔 힘들 수도 있어요, 저희 아버지도 여기 다니고, 아까 그 젊은 사회복지사 외할아버지도 여기 다녀요. 어머니처럼 교편 잡으셨던 분들도 있어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어요. 인정을 빨리 해야 본인도 편하고 가족들도 편해져요. 앞으로는 고령화 사회라 노인 복지가 더 좋아질 거예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겠네요.” 


마지막 ‘고생 많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너무 지쳐서 돌덩이처럼 무뎌져 가는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참 고마운 분 들, 고마운 곳이다. 우리나라 노인 복지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부모님 일로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이런 센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어디선가 나처럼 힘들어하는 자식들이 많을 것이다. 병들고 아픈데 자식들은 바빠서 미안하고 눈치 보이는 부모님도 많을 것이다. 이런 곳이 있으니 연락해서 알아보고 잘 활용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봄날, 등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 같아서 희망이 생기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은파에서 만난 친구 어머니이자 에세이반 동기인 특별한 인연 이숙자 선생님을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두 손을 잡고 엄마가 센터에 나가신다고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너무 잘되었다며 고생 많았다고 안아 주었다. 이렇게 자랑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뻤다. 사십 대 중반이지만 가끔은 누군가에게 응석도 부리고 실컷 울어도 보고 싶다. 이제 나는 부모님 그늘 밑에 있던 철부지 딸이 아니라 부모님을 보살피는 보호자가 되어 있다. 이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다들 겪어야 할 일을 누군가보다 먼저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아파트 위, 아래로 살며 우리의 관계는 더 끈끈해졌다. 만약 내가 없다면 우리 부모님의 삶은 어떨까? 멀리 사는 오빠보다 부르면 바로 달려올 곳에 살고 있는 딸과 사위에게 의지하고 사는 친정 부모님. 오늘은 부모님도 편하고 자식인 우리도 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날이다. 등굣길이 엄마가 좋아하는 철쭉이 핀 아름다운 길이라 더욱 좋다. 


엄마! 그동안 꽃구경도 못하고 답답하게 살았는데
이제 군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길로 등교하네?
엄마가 좋아하는 꽃 실컷 구경하고 항상 웃는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해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울어 울어 소리 내어 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