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야기 11
암으로 입안을 수술한 지 1년이 훨씬 넘었는데 엄마는 종종 입안이 아프다면서 먹는 것을 힘들어한다. 오늘도 거의 먹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째 하루 한 끼 그것도 죽으로만 겨우 먹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손목까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2주 전부터 손목이 아프다고 해서 정형외과에 갔었다. 석회가 쌓여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그렇다고 왼쪽 손목과 팔을 붕대로 감아 놓은 채 열흘을 지내도록 했다. 휠체어를 타는 엄마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을 때 한쪽 손목을 사용할 수 없으니 옆에 항상 사람이 있어야 했다. 센터에서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귀찮을 수도 있으니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서운하게 할 것이라 염려스러웠지만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참 천사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 유난히도 잘하는 젊은 보호사가 있는데 웃어가면서 손도 잡아주고 화장실 갈 때도 내가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화장실 가는 건 생리적인 현상인데 그게 왜 미안하냐고 한 번만 더 그런 말 하면 화낼 거라면서 애교도 부리고......”
참 다행이다. 어찌 그렇게 마음이 예쁜 사람이 다 있을까 싶어 언제 만나면 내가 뭐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에게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고맙고 천사 같다.
운전 중에 센터 요양보호사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나요?”
“어머님이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계속 토하셔요. 먹은 게 없어서 별로 나오는 건 없는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쩌죠?”
“제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 엄마 좀 편하게 눕혀 놓고 상황 좀 봐주세요. 빨리 가보도록 할게요.”
“네, 알겠어요, 조심히 오세요.”
한동안 괜찮더니 엄마가 또 병원에 입원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엄마도 병원이면 이가 갈린다며 싫어했다. 나 역시 병원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너무나 안 좋은 기억이 많은 장소이기에.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안에 계시다가 엄마와 영영 이별할 것 같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울었는지. 그 악몽 같은 날이 생각났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검사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주사실에서 영양제와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는 주사를 놔주었다. 엄마가 주사 맞는 동안은 혼자 있어도 되니 남편을 집으로 보내며 끝날 때쯤 오라고 했다. 엄마 옆에 앉아 가방 안에 들어있는 조영주 작가의 에세이를 꺼냈다. 읽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살짝 눈을 부쳤다. 눈을 떠보니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피곤하지? 내가 또 이래서 어쩐다니.”
“뭘 어째. 빨리 주사 맞고 집에 가서 밥 먹고 나으면 되지. 그러니까 좀 잘 먹어야 기운이 나지.”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거의 다 맞은 것 같은데 좀 참아보면 안 될까? 엄마 급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를 붙잡아주고 휠체어 앉히는 과정이 복잡하다. 좀 참았다가 나갈 때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상황은 언제나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의 눈빛은 ‘미안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휠체어와 주사기 거치대를 같이 밀며 조심조심 화장실로 갔다. 요즘 통 먹은 게 없어서 소변을 잘 못 보던 엄마가 시원하게 소변을 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 우리 엄마 시원하게 잘도 싸네. 그러니까 물도 좀 자주 마시고 잘 먹어야 한다니까! 사람이 잘 먹고 잘 싸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어?
엄마는 힘없이 피식 웃는다. 어떤 식으로든 엄마가 웃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나의 임무는 엄마를 웃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남을 잘 웃기지도 못하고 개그맨도 아니지만 엄마의 개그맨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웃고 좀 덜 아플 수만 있다면 까짓 거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