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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an 12. 2019

미국 회사와 일하며 느낀 잡상의 단편.

느리지만 빼놓지 않는다. 중요한 건은 책임자가 직접 챙긴다.

이 브런치는 재작년~작년간 미국에 파견 가 있을 때 만든 것이다. 가족 없이 홀로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소일거리를 만들자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이틀간 글 하나가 다음 메인에 뜨면서 조회수 만 건을 삽시간에 넘겨버렸다. 소박했던 생성 목적에 비해 과분한 일이라 감사의 의미로(꾸벅!) 미국 회사와 일하며 느낀 잡상의 단편을 남긴다.


미국 회사를 일반화 하여 한국 회사와 비교를 한다거나 편견을 만드는 목적은 아니다. 회사가 갖는 문화나 특성은 회사마다 달라 사실상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다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던 두 가지 기억을 남겨두고 싶다.





1. 느리지만 빼먹지 않는다.


우리나라 만큼 일처리가 빠른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 특성상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것은 편견보다는 Fact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미국은 느렸다. 마트의 계산대도 느렸고 아파트 인터넷 설치기사도 늦게 왔다. 인터넷이나 전화같은 경우는 집을 방문해야 하는데 기사의 업무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애초에 시간 약속을 잡을 때도 일정한 여유(Time band)를 둔다. 우리나라 같으면 '오후 세 시에 와 주세요.' 할 일인데, 타임 밴드상 '오후 두 시에서 네 시 사이에 방문 가능합니다.' 하는 격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늦었다. 두 시간의 여유 조차 허망하게 무효했다.


그러나 빠뜨리진 않았다. 원래 시각에 반드시 전화가 왔고 늦게 됐을 때 미리 전화가 왔고, 기다리는 중 더뎌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전화가 왔고 드디어 당도했을 때 집앞이라고 전화가 왔다. (내 아파트 작업하는 동안 다음 고객에게도 그러했다.) 인터넷도, 가구 업체도, 철거 업체도 모두 동일했다.


혹자는 변명이나 핑계라고 폄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이것이 그들의 룰 내지는 업무 방식 문화로 느껴졌고 부정보단 긍정에 가깝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작업 중에 딴짓을 하는 것도 아녔다. 군더더기 없이 쉬지 않고 작업했다. 단지 모든 항목이 조금 느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속 100키로로 십분 만에 끝내고 쉰다면, 이들은 시속 50키로로 속도를 낮추되 삼십분 동안 빠뜨림 없이 다 살피는 식이었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계좌상 어떤 환급 건이었는데 요청부터 완료까지 자그마치 육개월이 걸렸다. 요청은 내가 파견된 지 얼마지 않아 한국식 조급함에 전화와 메일까지 수차례 반복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기다리란 주변의 조언에 나는 템포를 늦췄다. 금액은 작았다. 그래서 이내 나는 그것을 잊었다.


그러나 그들은 잊지 않았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돈을 육 개월 뒤 환급 받았다. 놀랍게도 그 사이 담당자도 바뀌었지만 그들은 내 일을 잊지 않았다.


빠른게 좋은 건지, 잊지 않고 다 챙기는 책임감이 좋은 건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빠른게 좋지만, 실수로 놓친 것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다면?


"김 주임, 그 고객 다시 전화왔어? 안 왔으면 일단 덮어두고 있어. 그냥 지나가길 기다려보자."
번거로운 일들이여 동동 날아가서 잊혀져라!




2. 중요한 건은 높은 직급의 담당자가 직접 챙긴다.


역시 금융쪽 일이었다. 시작은 Associate급의 직원을 마주 했다. 그러다 안건이 좀 꼬였다. 거래처도 개입된 일이었는데 그쪽에서 곤란하단 내색을 했다. 은행에서 우리의 당혹함과 거래처의 불편을 인식했다.


다음날 나는 바로 Partner급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가 직접 일을 챙겼다. 나는 나보다 훨씬 높은 직급의 담당자로부터 진행상황을 보고받는 느낌이었다.


갑과 을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은행에 대놓고 항의를 한 적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 판단하기에 안건이 컸고,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이라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컨택을 해 준 것 뿐이다. 즉, '이건 내가 책임지고 처리할 일이다.'라는 무언의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일은 잘 처리 됐다. 얼마전 다시 그녀에게 연락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거의 반 년 전 내가 보낸 메일을 기억하고선(혹은 찾아보고선) 역시 미국 야구 얘기로 답변 메일 서두를 채웠다. (내가 아니고 그녀가 팬이다 :))




앞서 말했다시피 무엇이 옳다 그르다 품평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 두 가지는 분명 고민할 가치가 있다. 느리지만 빠뜨리진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책임자급으로 담당자가 바로 튀어 오른다.


역설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충분히 현실에 적합하게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운 역설이다.





결론은 아니므로 문단을 달리해서 써 본다. 마지막 문장이 '아름다운'으로 끝나서 문득 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순함과 현실 접목 가능성이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한다.


아래는 유사한 뉘앙스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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