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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y 05. 2018

일을 잘 한다는 것

우주에서 직장인이 가야 할 궤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모처럼 푸르른 하늘에 흰 구름이 꽤나 대조적이었다. 구름은 빠르게 움직였다. 가끔 그런 구름 흐름을 멍하니 보고 있자면 문득 그 속도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실감하는 지구의 자전 속도는 아찔할 정도다.


구름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구름이 흘러가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 덕분이다. 지구는 자전 뿐만 아니라 태양 주변을 공전도 한다. 중력장에 마련된 공간을 따라 열심히 태양 주변을 돈다. 구름도 지구도 모두 제 갈 길을 간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날따라 사람들 움직임도 유독 분주해 보였다. 각자 갈 길을 빠르게 재촉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그리고 모든 직장인은 직장에서의 삶을 산다. (연관성이 좀 껄끄럽지만 참아보기로 한다.)


오오. 오묘하다. 우주여.




직장에서 직장인이 가야 할 길도 정해져 있다. 일을 잘하는 것이 그 궤도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일 잘하는 기준도 백 가지 제시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집합을 배웠으니 이럴 때 써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을 잘한다는 것 = {이해력, 스피드, 책임감}


내가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 갖는 특징은 저 세 가지다. 하나라도 있으면 어디 가서 일 못한다고 혼나지 않는다. 둘을 가지고 있으면 사내에서 이름이 알려질 정도는 되고, 셋 다 있다면 소위 에이스로 추앙받을 수 있다. (허나, 옛말에 '큰 부자와 명 재상은 하늘이 내린다.'라고 했다. 그만큼 능력있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 조건을 다 가진 이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이해력]

이해력은 업무 내/외적인 영역을 모두 아우른다. 전체 업무 중에서 내가 하는 영역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혹은 추구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내가 어떤 단계를 준비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업무 내적인 이해력이다. 업무 외적인 이해력은 주로 그 업무가 회사 전체의 전략과 어떻게 일치/불일치하는지 파악하는 능력으로서 리더가 가지면 더욱 효과가 크다.


Netflix의 유명한 HR PPT를 봐도 유사한 말이 나온다. 업무 외적인 이해력은 이것과 정확하게 맥을 같이 한다. 업무 외적인 이해를 잘 해야 적합한 문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매니저는 사람들을 통제(Control)하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문맥(Context)을 설정함으로써
훌륭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스피드]

스피드는 말 그대로 속도다. 엑셀, PPT, 워드가 빠르든 몸이 빨라 짐을 잘 나르든 무방하다. 일단 몸이 빠르면 내용을 고민할 시간이 남들보다 하다못해 1분이라도 더 생긴다. 흔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특히 하달된 업무를 위주로 행하는 주니어 시절이라면 더더욱) 몸이 느리면 머리를 단련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나돌듯 엑셀 단축키를 몇 개 더 안다고 해서 퇴근시간이 당겨지진 않는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엑셀 피벗을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자료로도 분석 자료의 횡축과 종축을 수시로 바꿔가며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앞서 언급한 업무상의 문맥(Context)을 알려주는 상사가 없더라도 자기 스스로 이를 키우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책임감]

책임감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내 황금률(이자 무수한 종교의 황금률)을 반영한 것이다. 적어도 1명 몫은 해 내는 게 책임감이다. 거창하게 100억짜리 계약을 혼자서 종결하고 오거나 10년 묵은 클레임을 혼자서 해결하고 금의환향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 지정된 내 역량만큼의 업무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업무라면 타인에게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고, 여러 단계로 구성된 업무라면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잘 넘겨줘야 한다.




워라밸이 중시되는 요즘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일 잘하는 조건을 집합으로 만들었다고 한들 그 쓸모는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마치 뭐랄까. 나는 기껏 복소수(Complex Number)를 정의했는데, 정작 '자연수만 고려하기로 한다.'라고 하는 문제를 앞에 둔 망한 수험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킨 오타니 쇼헤이란 선수가 있다. 그가 고교시절 만든 자기 계획표를 본 적 있다. 나는 그가 선수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화제를 끌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계획표를 본 순간 (그 안에 '인성'이라는 항목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본 순간) 적어도 그만의 기준이 있음을 알기에 다르게 보기로 했다.


물론 과정(계획표가 과정을 대표한다면)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계획이 없는 과정이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계획을 가졌다고 '오버했나...'라며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의 궤적을 그리며 살뿐이다. 꼰대처럼 남들에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야, 나만의 100가지 기준을 세운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수많은 성인들의 자경문, 자성문, 수상록 등등이 떠오른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에도 개츠비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보여준 것도 제 아들의 생활 계획표였다. 매번 망했던, 형식미의 극치 내 방학 계획표도 떠오른다.)






참고로, 어렸던 시절 사랑도 이런 식으로 정의 내린 적 있다.

사랑 = {관심, 차별성}

차별성 없는 관심은 의미가 없고, 관심 없는 차별성은 폭력이며 그 둘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정도로 각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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