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착한 꼰대가 되지 않는 길.
여기 일을 무척 잘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심지어 성격도 좋다.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화도 안낸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을 같이 하기만 하면 몇 개월 뒤 후배들이 혀를 내두르는 경우가 있다. 분명 여러분도 한 두 번은 본 기억이 있으리라 믿는다.
보통 직장에서 욕을 먹는 대상은 일을 못하거나 성격이 나쁜 경우다. 그런데 이런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꺼려지는 사람이 왜 있는 것일까? 가만 보니 이런 사람들을 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과 같이 일하겠느냐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이런 사람과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윗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선배였고 새 일을 할 때는 내게 상세한 설명을 해 줬다. 내가 실수해도 감정을 싣지 않았고 일이 끝나면 소소한 회식도 챙겨줬다. 그런데 초기에 나는 힘들었다.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한 적 있는 사람들과 얘기 해 봤다. 모두 공통된 답이 돌아왔다. "다 좋아요!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만 빼면요.".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던가? 아니었다. 예전에 새벽 두세시 퇴근을 두어달 연속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이 더 힘든걸까?
우연한 기회에 정답을 찾아냈다. 그 사람은 늘 단도직입적으로 일 얘기를 했다. 웃으며 다가왔지만 늘 업무 얘기였다. 나는 일에 감정을 싣지 말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그 사람의 일 얘기 자체가 잘못 됐다는 게 아니다. 굳이 은유를 하자면, '정말 좋은 차인데 1단 기어 없이 바로 2단으로 올리는 격'이랄까.
그래서 요청했다. '딱 한마디만 해 주시면 안될까요?'
강철근육씨, 지금 바빠요?
(뭐해요? 시간 돼요?)
그렇다. 그 사람은 내 현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론부터 꺼냈다. '지금 하는 일이 급해서 두 시까지 끝내면 다음 일 가능한데 내일 또 다른 것 회의가 있어요.'라고 아무리 내가 얘기해도 일단 일을 주는 사람은 그 위에 하나 더 얹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 인식을 상대방이 먼저 가져주길 바랐다. 그 방안이 저 질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단순한 질문 하나일 뿐이지만 그 사람에게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케 하는 계기가 되었던 덕분이다. 내가 먼저 내입장을 얘기하는 것과 상대방이 내입장을 고려해 주는 것은 작지만 큰 차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을 못 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정신적으로 힘들다. 공감을 해 주는 사람이더라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육체적으로 힘들다.
상대방의 입장. 넓게는 상대방이 가진 자원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착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본다. 회계를 전혀 모르는 신입 직원에게 결산을 시킨다면? 거래선을 전혀 모르는 직원에게 단독으로 가서 거래를 성사시키라고 시킨다면? 구조를 전혀 모르는 직원에게 공장 기계 분해소제를 시킨다면? 암만 웃으며 지시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줘도 분명 상대방이 느끼는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