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지만 내 글은 아니다.
회사에서 우리는 많은 글을 쓴다. 보고서를 비롯해 하루에도 수 차례 주고받는 메일까지 포함하면 생각보다 많은 글을 쓰고 읽는다. 때로는 업무 외적인 글을 쓰기도 한다. 퇴임하는 분들을 위한 송사라든지 연말 행사 인사 글을 쓸 때도 있다. 만약 어떤 이가 필력이 좀 있어 어지간한 글 작성 대부분을 맡는다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송사와 답사를 한 사람이 쓰는 경우 같은 것이다.
예시일 뿐이지만 꽤 극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론은 극단적일수록 머리에 잘 담긴다. 하여 오늘은 이 예로써 얘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내가 어떤 분의 퇴임식을 대비해 송사와 답사를 다 썼다고 해 보자. 이를 두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며 비웃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작성자가 한 명인 것은 맞다. 그리고 그 한 명이 두 글의 초안을 모두 다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부턴 양상이 달라진다. 송사와 답사에 대해 발언을 할 당사자들의 첨삭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때부터 붙는 살에는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가치관이 녹아있다. 작성자가 그것들을 어떻게 활자로 표현할지 결정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기본 뼈대는 당사자들이 정한다. 그리고 글의 핵심은 뼈대다. 그래서 그 글은 첨삭이 붙는 순간부터 당사자들의 글이 된다.
작성자의 역량이나 노고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다 썼는데!"라거나 "저들은 대체 하는 게 뭐지?"라는 식으로 생각이 엇나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극단적인 예에서 시작한 주장의 해답은 역시 비슷한 강도로 극단적인 예에서 찾으면 좋을 때가 많다. 유명 정치인의 연설문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해도 해당 연설은 정치인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해답의 좋은 예가 되겠다.
그러면 비관적인 질문이 생긴다. 빨간 줄 그여가며 매일 첨삭당하는 보고서만 붙들고 있는데 그나마 글의 주체마저 내가 아니라고? 제로베이스에서 이 만큼이나 적어낸 게 얼만데 칭찬보다 꾸중을 더 듣는 내가 설 곳이 정녕 없단 말이라고?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꼭 보고서가 written by 강철근육.이라는 형태로 인식될 필요도 없고 그에 목매달아서도 안 된다.
글을 작성하는 행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자.
1. 회사에서 쓰는 글은 회사 것이다. 앞선 예라면 연설을 하는 정치인이 곧 회사인 셈이다.
2. 나는 내가 만든 보고서 개수를 쌓아 나가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 이것을 정리하는 기술, 설득을 위한 논리적 구성 등 "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일을 한다.
3.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그 설득의 결과로 사업이 더 잘되게 하기 위해 일을 한다.
즉, 실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이상적이기에 더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면 저런 것들을 동시에 익힐 수 있다. 역량이 부족한 선배를 만나도 실질에 집중해서 심리적 타격을 덜 입을 수 있다.
누가 알랴, 실질을 위해 고민하다 보니, 검토해 주십사 제시한 보고서의 논리가 너무나 명쾌해 트집만 잡던 선배조차 딴 말 못 할 정도가 될는지. :)
명명백백 깔끔하여 안건마다 첨삭이나 트집 없이 지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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