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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05. 2017

내 옆의 알쓸신잡

모든 어른들이 꼰대인 것은 아니다.

출장을 가거나 회식이 있거나 봉사활동을 가거나 회의 전후 시간이 남거나 심지어 고과 면담을 할 때 나는 일부러 윗분들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다. 정치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회사 일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가득한데 정치적인 공작까지 하기에는 벅찬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물론 나도 남들에 비해 유리한 부분을 가진 게 있다. 3년의 군대 장교 생활 중 2년을 장군 전속 부관으로 보낸 덕분에 윗분 곁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32살이라는 늦은 나이로 입사를 하면서 어른들께 역량과 관계없이 인지도를 높인 채 업무를 시작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룰 내용은 이런 특색이 없더라도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1. 그분들에게 질문을 하라.


모든 어른들이 꼰대인 것은 아니다. 모든 엄마들이 맘충이 아니고 모든 여성 운전자들이 김여사가 아닌 것과 동일하다. 성의 관념에서는 그나마 집단과 개인을 분리해 사고하려는 의식이 좀 생겨나고 있지만 세대나 정치에 대한 문제에서는 아직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집단과 개인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할 때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먼저 몸을 움츠리고 행동을 조심한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질문하기다. 

"지난번 xx 건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런 일들을 수차례 겪으셨을 선배님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다들 그렇게 사회생활을 채워가는 거지." (여전히 방어적이다.)

"괜찮으시다면 이럴 때 도움이 될 만한 마음가짐 같은 게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보통 이 정도면 말문을 여신다. 오랜만의 젊은 접근에 반가워하며 그리고 동시에 혹여 잔소리로 들릴지 걱정하며 도움이 될 만한 말씀들을 해 주신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 회사의 문화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상당히 소비자 맞춤형 상담인 셈이다. 당장 업무에 적용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2. 내 불만이 개인적인 것인지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구분하라.


사람들이 선배들, 나아가 회사에 불만을 가지는 분야는 무척 다양하다. 물론 그 이유도 한량없다. 그 불만 중 일부는 타당할 것이고 이는 분명 시간을 들여서라도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불만은 동조자를 얻기 좋은 항목이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라. A는 상관인 B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상사 D를 싫어하는 C를 알게 되었다. A와 C는 술을 마시며 B와 D의 흉을 본다. 그러면서 결론은 '이래서 회사가 문제다.'라고 내려버린다. 물론 B와 D가 조직의 썩은 사과라 도려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회사가 문제인 것이 일부 타당하다. 하지만 비단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례에서 회사는 훌륭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개인적인 것을 회사 전체로 투영하는 순간, 회사는 호오의 장이 된다. 소개팅을 나온 자리가 아닐진대 내가 좋아하고 싫다고 하여 업무에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를 하는 것이 좋다. 회사 전체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에 포함된 선배 모두 미운 대상일 뿐이다. 그들의 좋은 의도나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역량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격이다.




얼마 전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가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이 나와 한 곳으로 여행을 하며 주고받는 대화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저렇게 박식함을 뽐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멋지구나!'라고 평을 했다.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던 상황들에서 내가 윗분들께 대화를 걸었을 때,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박식함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유순해 보였던 분이 뚜렷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다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나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 있겠어? 자만하다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다양한 독서를 하시는 분들도 봤다. 


어느 출장지에서였다. 현장에서 주말을 맞았고, 부장님 몇 분을 모시고 근처 마트에 들렀다가 마트 앞 벤치에서 사회, 조직, 육아, 교육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4시간을 넘게 앉아있었던 적이 있다. 억지로 주제를 바꿔가며 대화를 이어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소재들이 연관 되었다. 중간중간 샌드위치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나 역시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대화에 참여했던 날이었다. 그 순간이 너무도 황홀했던 나머지 나는 마지막 즈음 대놓고 속내를 말씀드렸다. 

"우와, 보여주신 식견에 많이 배웠습니다."

"너 그런 말 하면 우린 부끄러워서 다신 이런 대화 못한다." 하시며 웃으시던 분들이 생각난다.




* 객관적으로 못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살고자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는 사람도 있다. 악의에 차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이히만처럼 생각 없이 시킨 것만 처리해서 그런 건지 모를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배울 구석을 찾으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스트레스가 진저리 쳐질 수준으로 심해져 조직 전체가 밉게 보일 때, 그중 선의의 피해자 중 일부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구원자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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