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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06. 2017

오만과 편견, 선입견

때로 우리는 자기가 만든 선입견에 스스로를 가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바라볼 때 어느 정도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온전히 처음 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우리가 첫인상이라고 일컫는 것과 연관돼 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상대에게 호감을 갖거나 이유 없이 싫어지는 것은 분명 주관적이다. 어떤 점수표가 있어 xx점 미만은 누가 보든지 첫 대면부터 싫어할 것이라는 류의 객관적 지표라는 건 없다.


어느 정도 기간을 함께 보낸 사람에게는 주관성이 더 크게 개입된다. "오죽했음 그랬겠어.."하는 말과 "너 진작 그럴 줄 알았다."하는 말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으로서 첫인상 때 적용되는 단편적 호오를 벗어나는 수준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주관이 개입할 때 생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가 이런이런 일을 했는데 홍길동 그 자식은 보나 마나 비웃겠지!". 나는 아직 홍길동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만약 홍길동이 나를 실제로 비웃었고 내가 그를 향해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식은 늘 그렇지 뭐"해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비웃음을 보지도 않고 저리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의 극단이다. 보통 수준의 선입견을 '상대의 본디 성정에 대비해 과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정도를 일컫는 것이라면 이는 그것을 벗어난 것이다. 그가 장래에 할 행동까지도 내 감정에 따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측의 방향 역시 상대를 향한 호오로써 결정했다. 즉 내 입장에서 판단한 그의 성향대로 특정한 행동을 하리라고 내입장에서 지레짐작을 한 것이다. 선입견이 두 번 개입하였고, 그 결과 내가 만든 선입견에 스스로를 멋지게 가두게 되었다.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사이에 놓고 좋아하는 후배가 그런 나를 일깨웠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할 말을 또렷하게 다 했다. (취한 척만 한건지도;) "그건 옳지 않아요!"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해요!" 나는 다음날 후배에게 사과했다. 그를 향해 가졌던 선입견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졌던 선입견으로 안 좋은 말들을 내뱉은 것에 대해서도.


선입견은 약한 자의식에서 나온다. 그래서 시중에는 자존감을 높이라거나,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라거나 심지어는 망나니로 살라고 가르치는 책들이 많이 있다. 책을 읽어 높아질 자존감이었다면 그토록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당장 우리 옆엔 30년이 넘게 "아이고 내 새끼."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뭘 하든 "상대가 잘못했네!" 해주는 가족, 연인, 친구가 있지만 그들도 여태껏 높여주지 못한 게 내 자존감 아니던가.


후배가 얘기해 준 게 좀 더 현실적이 대안이라 생각한다. 사안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방법 말이다. "홍길동과 같이 작업한 이번 프로젝트는 잘되었어." "보고서를 쓰는 데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어. 홍길동의 접근 방식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아."


내가 홍길동을 좋아하든 말든 그건 옆으로 미뤄두고 발생한 일에 대해서 개별적 사안 위주로 서술하기. 그러면 입에서 "하여간 그 자식이 하는 일은 다 그렇지."하는 류의 거친 말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안 좋게만 지내던 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기적도 가끔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난 일은 그렇게 약간의 거리를 둠으로써 당장 내 주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 사랑의 스튜디오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감정의 작대기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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