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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y 08. 2019

머리 쓰기

그야말로 '뇌를 쓰기'

1.

대학교 때의 일이다. 유독 수업 내용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깍쟁이 동기 하나가 시험 3일 전 그 노트를 빌려갔다. 아무렇지 않게 빌려주는 그 친구를 보며 다들 말했다.

"제정신이야? 저 친구가 시험 전날까지도 돌려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에 대한 친구의 대답이 정말 멋졌다.

"괜찮아. 저건 노트일 뿐이고,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훨씬 더 방대한데 그걸 들고 가진 못할 테니까."


노트를 빌려갔던 동기는 결국 시험이 끝나서야 머쓱한 미소와 함께 노트를 돌려주었지만, 성적은 내 친구가 더 잘 나왔다. 후에 게임이론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hawk'와 'pigeon' 간의 전략을 설명하시면서 그 예로 정확하게 위와 같은 상황을 상정하셨다. 자기 할 공부 다 해 놓고 다른 친구들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 hawk, 그리고 순둥순둥 하게 그에 따라가다가 자기 의지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해 버린 pigeon.


그러나 내 친구는 hawk보다 강한 pigeon이었다.



2.

사회에 나와 다들 다양한 자리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특색으로 묶인 동문 단톡방이 여러 개 생겨났다. 그중 하나의 방에서 후배님의 유튜브 계정이 화제가 되었다. 법대 출신인데, 법률 지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때로는 공부법에 대한 팁도 올리고 있었다. 나도 몇 개의 영상을 보았는데, 댓글들을 보니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듣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공부'라는 분야에서 사법고시만큼 방대한 양을 다루고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험을 찾기 쉽지 않고, 그것을 통과한 사람이 얘기하는 공부법이었기 때문에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도움되는 구절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보게 된 한 영상이 내 머릿속을 때렸다. 마치 뭐랄까. '행복한 가정은 그 이유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톨스토이의 문구를 읽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려면 비슷한 관점이 필요하구나."


이윤규 변호사의 유튜브 중 "책을 통째로 외우는 방법" 링크



3.

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암기를 잘하기 위해서도 결국 필요한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외할 때도 항상 목차부터 시작하고 각 단원별로 '학습 목표'를 읽고 공부하라고 말했다. '출제 의도'가 문제를 맞히기 위한 방향성이라면 '단원 목표'는 그 부분을 공부하는 데 대한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학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들입다 문제를 푼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 아니, 늘긴 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그러한 귀납적 방식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출제 가능한 영역'을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1) [집합] 집합을 배운다. 이로써 내가 생각할 범위를 한정 짓는 방식을 알게 된다. (어디까지가 경기장인가.)

2) [수] 다양한 수의 개념을 배운다. (어떤 공으로 플레이할 것인가.)

3) [수열] 그 수들을 나열할 때 규칙을 배운다. (플레이의 규칙성은 무엇인가.)

4) [극한] 그 규칙을 무한히 확장해 본다. (이 시합이 무한히 이어진다면 경기 결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

5) [미분] 함수를 무한히 잘게 쪼개는 연습을 한다. (경기의 일부분을 무한히 작게 분석할 수 있을까.)

6) [적분] 잘게 쪼갠 것을 역으로 다시 붙여 본다. (경기의 일부분으로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를 놓고 이해하면 왜 좋은 선생님들이 공식을 외우라 하지 않고 '정의'를 외우라 하는지 알 수 있다. 공식은 정의에서 파생된 일부 규칙이나 산식들을 편하게 정리해 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의 공식을 몰라도 원칙을 알면 이를 도출해 낼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4.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이는 사고방식의 영역인바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학창 시절 인터넷도 별로 발달돼 있지 않던 때였기에 나는 어떻게 하면 사고방식, 즉 뇌를 쓰는 방식을 연습할 수 있을지 혼자만의 사고 실험을 했고, 무턱대고 그에 따랐다. 그 원리는 단순했다.


'내 몸에 불수의근(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근육)은 없다.'라고 믿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전 항상 명상을 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몇 초, 그렇지 않은 날은 5분 정도라도 했다. 상상을 한다. 나는 무척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폭포 아래 앉아있다. 그 물들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며 뇌 사이사이에 낀 불순물을 씻어 내린다. 내 뇌는 무척 개운하다. 그런 뒤 나의 뇌를 한 마리 준마와 연관시켜 생각한다. '자, 오늘도 달릴 준비됐지?' 적토마를 닮은 그 말은 입김을 내뿜으며 어서 올라타라고 나를 바라본다.


공부를 하는 중간에는 수시로 다음과 같이 의식적으로 상상했다. 뇌는 부피가 클수록 저장공간이 커 지고, 한정된 뼈 안에서 부피를 키우려면 주름을 많이 잡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을 공부할 때는 뇌의 주름이 하나 더 잡힌다는 상상을 했다. 머릿속으로 실제로 주름이 잡히는 그 순간을그리는 것이다. 다른 모든 수의근도 상상에서 비롯된다는 발상에서 떠올린 방식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려면 손가락을 움직이는 상상을 하면 된다.)


또한 각종 뉴스에서 읽은 정보를 짜깁기했다. 뇌로 전달되는 정보는 시각 → 청각 → 촉각의 순이라고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눈으로 읽고, 그다음 좀 지겨워지면 내가 좋아하는 성우의 목소리를 씌워 그 부분을 읽어준다고 상상하며 귀에다 의식을 집중하고 그래도 지겨워지면 손으로 썼다.


그날 치의 공부가 끝나면 '내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라고 되뇌며 잠자리에 들었다.



5.

때론 뜻밖의 상황에서 나와 유사한 경험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전체를 보는 맥락을 강조한 후배님의 유튜브도 그중 하나다.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책 중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었다. 쉽게 얘기하면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보다 수십 년 전 나온 '신념의 마력'이라는 일본 책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다뤘다는 것이다.


더 오래 시간을 돌려 보면 '오랜 기간 꿈을 그린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룬다.'라는 앙드레 말로의 말도 맥락을 같이 한다. 믿는 대로 운명도 바뀐다는데 뇌라고 안 움직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어디 그 뿐인가.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도 운동을 할 때 항상 '내 근육이 산처럼 부풀고 있다.'상상했다고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에선 이를 mind and muscle connection이라고 부른다.)


대학 때 좋아하는 수학자 푸앵카레가 무의식의 힘을 강조한 것을 봤을 땐 더욱 힘을 얻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 때 어떻게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선 그 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한 뒤, 그다음 '내 무의식이 알아서 풀어 줄 거야.'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희대의 천재 수학자도 그런 무턱 댄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어느 어르신이 해 주신 얘기도 기억에 남았다.

'종교를 불문하고 사람이 죽으면 다양한 사후 세계를 상정할 텐데, 그때 그 절대자가 우리가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아니? 바로 그 사람의 뇌를 보는 거야. 그 뇌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기록돼 있거든. 뇌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지. 우리가 다시 살려내지 못할 뿐 뇌에는 모든 것이 기록돼 있단다.'


이 정도 얘기를 들으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마치 초두에 적었던 노트를 빌려 준 내 친구처럼 말이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뭔가 허황된 마법사 이야기나 약장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코 말하건대 이는 내 진심으로 작성하는 기록이며,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을 위해 내가 가진 비밀을 털어놓는 등가교환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일들이 명료하게 잘 풀리도록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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