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질문이라는 제목을 쓰고 보니 상당히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당연하다는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어 구조상으로는 '당연한'이 '질문'을 꾸며야 하므로 질문이 당연한 것을 뜻하나 싶지만 문맥으로 볼 때 '대답이'라는 구절이 생략된 형태로 보는 게 맞다고 본다.
즉, '당연한 질문'은 '대답이 당연한 질문'인 것이고 이를 영어로 치환하자면 "It is a given answer."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엊그제 매니저랑 면담하며 나눈 얘기를 옮기기에 적합한 제목이 된다.
2.
그전에 살짝 배경 설명을 하자면, 지금 내가 파견 온 곳이 금융 관련 기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나는 금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들었던 화폐금융론이 금융 수업의 전부이며 그나마도 재수강을 해야 했다. 당시 이창용 교수님의 '주식, 채권, 파생상품(소위 주채파)'과목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수강할 엄두도 못 냈다.
3.
면담 중간에 매니저가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최근 2주 정도 동안 회의 참석하고 업무 하며 느낀 점을 토대로 질문을 던졌다.
- 내가 보기에 이곳 직원들은 financial officer라기보다는 financial engineer에 가까워 보인다. 내 판단이 맞는가?
- 그렇지.
- 세계 경제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위에 가정을 세우고 서로 토론할 줄 알았는데 아녀서 놀랐다.
- 촉각을 곤두세워서 자료를 모으면 뭐하나.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네가 다룰 수 있는 게 엑셀뿐이면 너는 엑셀만큼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동시에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1차 우문현답 충격 뒤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 그렇다면 내게 조언을 달라. 내가 아는 것은 엑셀과 지극히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 언어(SQL)뿐이다. 오늘 회의에서 언급된 언어들 (R, Python) 중에서 무엇을 배우는 게 더 나은가?
- 둘 다 배우는 건 어떤가?
5.
총 2차 우문현답 충격이 있었던 이 면담을 모르는 다른 동료가 오늘 벙글벙글 웃으며 내 자리로 놀러 왔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둘 다 할 수 있냐고. 그러자 벙글벙글 웃으며 둘 다 할 수 있으니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오 좋다! 대답했더니 그가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해 볼까?'
그 동료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미시 세계(양자역학 류)를 다룬 건지 거시 세계(천체물리학 류)를 다룬 건지 물었더니 양자역학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벙글벙글 웃으며 다음에 양자역학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