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을 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Oct 11. 2019

가사활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경제주체를 가정 전체로 바꿔보자.

가사활동에 전념하시는 분이 '나는 돈을 벌지 않으니까...'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나는 정말 속상하다. 회사일을 "바깥"일, 가사 활동을 "집안"일이라고 안과 밖으로 구분하면서 차이를 두는 것도 좋아하진 않는다. 하물며 바깥 활동을 더 높이는 행위는 오죽하랴.


기본 전제는 이럴 것이다. 집'안'일은 가족끼리의 일이고, 가족끼리는 서로 잘 이해하니까 좀 쉬운 반면에, '바깥'일은 남의 비위를 맞추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니까 더 힘들다는 내용 정도이지 싶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족끼리 관계에서는 스트레스가 없고, 서로의 기분을 맞출 필요가 없는가? 혹시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Support 역할일 뿐이라고 믿는 것일까? 고부갈등은 어떤가? 가족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이라 풀기 쉬운가?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사 활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봤다. 회사일과 가사노동 중 어떤 쪽이 더 수월한지 답을 내리는 게 간단하지 않은 상황임을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성별을 배제하기 위해 '가부장적'이라는 말 대신-) 고압적인 바깥일 사람, 움츠러든 집안일 사람 모두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을 예정이다.




'내가 돈을 한 푼도 못 벌어서...'라는 푸념을 접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신감을 되찾고 떳떳하게 가정 구성원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때 가장 필수적인 것이 '주체의 변경'이다. 주체를 '나'에서 '가정'으로 변경해야 한다.


'내가 돈을 한 푼도 못 벌어서...'라는 푸념은 '그래도 내가 나가면 xxx 정도는 벌 텐데...'라는 후회와 경제학적으로 동일하다.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체가 '나'인 이상 동일하다. 내가 집에 머물기 때문에 바깥에서 벌어올 수 있는 돈만큼이 희생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관련 논문도 찾아보았는데,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 이와 다르지 않았다. 작은 차이를 무시한다면 논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쓰고 있었다.


1.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가사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으로 산정

2.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이 지금 취직을 했을 때 벌 수 있거나 가사활동으로 전환하지 않고 직장에 남았으면 지금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추정


가만히 살펴보면, 1번의 비용도 2번의 소득으로 벌충하게 되는 셈이므로 결국 이러한 접근에는 개인 입장에서 바라본 기회비용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 방식들은 일견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지나치게 학구적 접근이란 느낌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가족 구성원 누구도 의기소침하지 않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우선 고민한 내용은 이것이다. 왜 가사노동을 '내' 경제 활동하고만 비교해야 하는가? 가사노동이 '나'에게만 주어진 천명인가? 그렇지 않다. 누구도 태어나면서 가사노동을 '해야만 한다'라고 지정되지 않았다.


주체를 '가정'으로 바꿔보자. 완전 콩가루 집안이거나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을 철저하게 지키는 집안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모든 의사 결정이 가정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즉, 내가 가사에 전념하기로 하든, 직장에서 돈을 벌기로 하든 모두 배우자와 자녀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이는 기회비용의 계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가사 활동에 전념하는 기회비용은 '내가 회사 생활을 했으면 벌어올 수 있었을 돈'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버는 돈'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A와 B를 부부라고 해 보자. A는 회사일을 하고 B는 가사활동 중이다. A의 연봉이 5천만원이고 B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이 3천만원이라고 치자. 대부분의 문제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A는 '내가 5천이나 버는데 당신은 한 푼도 못 벌면서', B는 '내가 나가서 3천만원이라도 벌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형식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가정이다. 누구 연봉이 높은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란 소리다.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경제적 수준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오로지 경제적 숫자가 가족 관계를 지배해서도 안 된다. 가족을 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가족 전체의 입장으로 기회비용을 바라보자. 즉 A와 B 모두, 'B가 가사 활동에 전념해 주는 덕분에 우리 가정은 5천이나 벌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B가 가사활동을 하지 않으면 A 노동력의 일부 또는 전체가 가사에 투입되어야 하고 소득은 5천만원보다 작아진다고 생각해도 된다. 핵심은, 어느 한쪽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정 전체가 긴밀한 상호작용 한 결과 지금처럼 활동 영역을 나눴다고 보는 데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방향이나 폭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일전에 야근 후 새벽 퇴근길 택시 기사님께서 해 주신 얘기가 생각난다.

"돈을 많이 벌어봤자 기껏해야 지구 밖에 더 사겠어요? 몸 챙겨가며 일하세요."


기껏해야 지구밖에 못 사는 돈 때문에, 우주보다 소중한 가족 간의 사랑을 잃지 말자.





1. 좀 더 깊이 고민을 한다면 응당 양성에 대한 취업률이나, 육아나 가사 노동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부부 또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구 하나라도 이런 것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지고 의견의 균형을 잃는 상황을 줄였으면 하는 마음에 집중해서 썼다. 움츠린 아빠나 엄마, 그리고 배우자의 모습은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2. 국립국어원의 해석에 따르면 '가부장적'이라는 말에는 '남성'의 뜻이 녹아있다고 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예반 출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