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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09. 2019

모병제라니!

경제학적인 잡상 펼치기.

대학 때 김대일 교수님의 '노동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마르크스 주의를 공부할 것 같지만 실상은 지극히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수업이었다. 당시 교수님은 그야말로 수업에만 집중하시는 스타일이었는데, 담백한 방식에 팬이 많았다. 물론 나 역시 그중 한 명이 되었다. (각주 1)


하루는 수업 중 어쩌다가 부병제와 모병제 얘기가 나왔는데, 교수님은 이를 경제학적으로 푸셨다. 당시 수업 커리큘럼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러프한 계산을 칠판에 쓱쓱 써내려 가시던 그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기억이다. 칠판의 마지막 줄에는 '그래서 월급을 ~만원을 주면 현재 군대 인력을 대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결론을 쓰셨다.


이때 사용던 개념이 '기회비용'이었다.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군인 월급이 얼마가 되면 20대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도 있던데, 이 역시 기회비용 관점에서 접근한 방식이다. 그래서 오늘은 모병제와 연관한 몇 가지 잡상 거리를 늘어놓으려 한다. 늘 그러하듯 정답은 없으며, 그저 심심할 때 곰곰이 생각을 뻗어나가기에 괜찮은 소재 정도로 소개할 뿐이다.




군대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누가 뭐래도 가장 핵심은, 젊고 가능성도 많은 20대의 한 중간에 뜬금없이 사회와 격리돼(?) 2년 여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 군대 가 있던 그때 ~~를 했다면 ~~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기회비용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영어 가정법에도 완전히 들어맞는다!  * i.e. If I had not been there, I could have been much happier!) (각주 2)


기회비용과 연관한 사고는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서, 다른 하나는 타인의 관점에서 나온다.


자신의 관점에서 본다는 말은, 내가 이때 군 복무 대신 뭔가 했다면 어떤 것을 이뤘으리라는 가정으로 이뤄진다. 공부를 해서 학점을 얻거나, 휴학을 하지 않고 빨리 졸업해서 취직/대학원 진학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쌓거나,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거나, 연애를 하거나 무엇을 했든 간에 군대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만약 이 중 당신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치가 바로 당신이 군대를 감으로써 치른 비용이다. (내 인생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타인의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은 같은 듯 살짝 다르다. 질문은 대개 '만약 당신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까?' 형태로 이뤄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만약 당신에게 얼마가 주어진다면 군 복무를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뒤, 주겠다는 금액이 이보다 크다면 시장에서 거래가 성사된다. 즉, 타인의 기회비용 개념이 본인 군 복무 선택에 영향을 주는 셈이다. (각주 3)


* 비슷한 구조를 다룬 적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69





이것에서 가지를 더 칠 수도 있다. 이는 주로 타인과 비교를 할 때 발생한다. 앞선 내용들이 주로 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이라면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은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


가장 대표는 '내가 군대를 안 갔으면 ~~ 을 했을 텐데 그것을 못 해서 억울한 와중에 (신의 아들인) 저 사람은 군대도 안 가고 그 덕에 ~~ 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언뜻 보면 기회비용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직접 겪지 않은 가상의 선택지와 현실을 비교한다는 점에서는 그 틀이 유사하다. (내 인생이 마이너스일 때 심지어 저 사람은 플러스를 이루었다!!)


이러한 생각 방식은 '대체 복무제도 기간 얼마가 적합한가?' 는 질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그 좋은 대안을 의무와 맞바꾼 것과 달리 당신은 그보다 수월한(주관적이지만, 사회와의 격리성, 가혹행위, 위험에 대한 노출도 등에서 분명 현역보다는 유리하다는 평을 받는다.) 길을 걷게 될 테니 XX배 정도는 더 길게 복무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가상의 옵션과 비교하는 행위다.




잡상이 뻗어가는 방향을 잠자코 따라가면 이내 이와 유사한 질문을 몇 개 더 찾을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로 '내가 저 사람보다 xx 배나 일을 더 열심히 하는데 그렇다면 연봉 yyy만원만큼은 내가 더 받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같은 줄기다. 엄연히 일을 잘해 평균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데 '이렇게 괄시받고는 못 산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의 이면엔 이런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이쯤 되면 반박이 나올 수 있다.


- 기회비용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반대급부다. 그러나 군 복무는 선택이 아니지 않은가?

>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 현재 군 복무는 선택이 아니지만, 이를 '선택항'으로 변환하기 위해 지금의 '의무'를 '선택'인 것처럼 가정해 비용을 산출하는 것이다.


- 당신이 언급한 예시들을 보니 질투나, 억울함 등을 모조리 기회비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 아니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둘째를 챙기는 엄마를 향해 느끼는 첫째의 질투, 이성인 친구에게 친절한 연인을 항해 느끼는 질투는 내 선택과 상관이 없으므로 기회비용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억울함은 질투보다는 좀 더 가깝긴 한데 여전히 다르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해 기대되는 반대급부가 기회비용이고, 실제 보상이 이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 억울함이다. 보상이 기대보다 작거나 징벌이 예상보다 클 때를 말한다.




훈훈한 마무리를 위해 매거진 성격에 맞춰 직장 생활에 연계한 질문 몇 개를 나열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 이 거래선과 거래를 트기 위해서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 '어떻게 하면 이 거래선과 거래를 할 수 있을까?'와 비교해 보면 질문이 한결 구체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거래선이 우리와 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우리와 거래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면 된다. 이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의 현실 버전인 셈인데, 어떻게 하면 고객이 우리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지 고민한다는 점에서 기회비용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이 프로젝트를 성사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을까?

>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나 리더십 책들은 조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막연한 말로 설명한다. 그러면 대개 선언적인 명제로 다가갈 뿐 효용을 잃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하나가 되어 이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도록 '선택'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 어떤 맥락에서 직원들은 태만이나 놀이, 거절이 아니라 '일'을 선택하게 될까?






이 모든 질문이 늘 이슈가 되는 것은 기회비용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이라고 하 다들 돈을 생각하여 한류 연예인이나 일류 운동선수들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만데, 그들이 국위 선양에 미치는 영향이 얼만데 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단어에 '비용'이 들어갔다고 해서 꼭 경제적인 것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 만약 큰 병에 걸려 1달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만약 너무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나 꼬물거리는 그 귀여운 시절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선택'에 따라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가치'는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어떤 식으로 제도가 정해지더라도 늘 반론이 나온다.




(각주 1) 당시 수업 중 재미난 광경을 목격했다. 교수님이 칠판 가득히 방정식을 써 내려가고 계시던 참이었다. 학생 중 한 명이 계산을 해 보더니 '저기 적분 계산 값이 잘 못되지 않았나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어떠한 감정의 요동 없이 그저 잠시 분필을 내려놓으신 채 가만히 암산을 하시더니 '맞지 않나요?'라고 반문하셨다. 결론은 학생이 틀린 것으로 판명 났었다.


(각주 2) 유명한 '군 복무 vs 출산' 대결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논쟁 적합성을 떠나서, 현재 글의 문맥상 '내 인생은 마이너스일 때 남의 플러스를 보는 것'이라는 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저 대결은 '누가 더 마이너스가 크냐'의 맥락으로 진행된다.


(각주 3) 과거 역사에서 늘 문제가 되었던 부역 제도가 생각난다. 이론적 논의에는 감정이 없다.



* 악! 내가 딱 제대하고 온 다음날 모병제가 시행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은 '매몰비용'이다. 비록 억울하겠지만 지나간 것은 잊고 미래에 집중해야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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