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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Dec 20. 2019

스칸디나비안 복지국가에 대한 짧은 잡상

행복한 곳을 결정하는 방식

'행복함'을 서열화할 수 있는지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국민들의 행복지수라는 것을 조사하면 대개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있다. 바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안(또는 노르딕) 국가들이다.(각주 1) 


이들을 행복한 나라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게 만드는 건 지리적 위치나 그에 따른 기후, 또는 국민성 (각주 2)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바로 관대한 복지정책이다. 


그렇다 보니 이 국가들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좋은 예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내가 여기서 정치적인 부분을 다루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늘 그래 왔듯 경제와 연관해서만 약간의 잡상을 펼칠 예정이다.




관대한 복지정책을 실행하려면 높은 세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베풀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국가들의 최고 세율은 60%에 육박하기도 하는데(덴마크), 이것만 들으면 '세금 떼고 남는 돈이 있나?' 싶은 정도다. (소득세 외에 부가가치세도 상당히 높다는 것을 고려하자.)


이토록 높은 세율이라니. 이들 국가는 효율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형평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누진세를 볼 때 세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구간이다. 최고 세율이 60%라고 한들 연봉 10억 이상인 경우부터 이를 적용한다면 평범한 회사원에게는 요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모두를 일반화 하긴 어렵지만, 러프하게 따져볼 경우 이 항목에서 독특한 성격을 띤다. 최고 누진세를 물리는 구간이 상당히 낮다는 게 그것이다. 통상 평균 임금의 1.5배를 받는 구간부터 최고 세율 적용이 시작된다. 


이를 우리나라 통계를 빌려와 계산을 해 보자. '18년 기준 근로자 평균 연봉은 3,634만 원이었다. 이것의 1.5배니까, 5,451만 원 이상부터는 바로 60%의 한계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 역시 낮은 구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은 분명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 종합소득세를 기준으로 할 때 - 최고세율이 5억 원 초과부터 42%로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차이를 체감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누진세 체계가 실제로는 '단일세'에 가깝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내 연봉이 xxx 원만 넘으면 60%를 떼고 받는구나.'라는 계산이 상당히 심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 알겠지만 단일세는 '효율성'의 대표적인 예다. 즉 관대한 복지를 위해 효율적 세제를 도입하는 형국으로, 마치 Input은 자본주의인데 Output은 사회주의인 함수를 보는 듯하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효율성을 꼽자면 복지정책의 효과가 '국민 눈에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굳이 스칸디나비안 국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몇몇 유럽 국가만 봐도 쉽게 알게 되는 항목이다. 그래서 얼마 전 프랑스에서 온 직원과 나눈 얘기로 갈음이 될 듯하다.


"우리나라(프랑스)에서는 세금을 내도 아깝지 않아. 병원도 학교도 공짜거든. 내가 낸 돈이 어디로 쓰이는지 내 눈에 보이니까 나는 마음 편히 세금을 낼 수 있지."(각주 3)


이와 같은 '타겟 적합성' 역시 효율성의 예로 포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안 국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절묘하게 버무린 환상의 국가일까? 이제 조심스럽게 그 단점을 짚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가장 크게 부각되는 문제는 '성장 및 변화에 대한 갈망의 부재'다. 그래서 그토록 행복한 나라에서도 혁신적인 무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향하는 발걸음은 '훨씬 덜 행복한' 미국으로 향한다. 


이는 줄어드는 인구와 연관해서도 문제가 된다. 경제 활동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복지는 여전히 관대하니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 게다가 이들 국가 대부분이 이민에 개방적이지 않을뿐더러 EU에 속해 운신의 폭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 해결이 더욱 쉽지 않다. (각주 4)


즉, 행복한 국가이지만 사회주의가 갖는 보편적 단점들이 - 혁신의 부재, 성장 동력/활력의 부족 등 -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해당 국가들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쓴 칼럼을 보면, 미국에 있을 때 보다 조금 덜 활력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저자는 '행복하다'는 말보다 '만족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적기도 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92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양극화에 대한 문제다.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19-06-18/sanders-should-recognize-that-billionaires-aren-t-the-problem

위 기사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안 국가들에도 백만장자가 있으며 (당장 H&M, IKEA를 떠올려보자.) 국민 수 대비 비율로 따질 경우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백만장자 수는 심지어 미국보다 많다. 덴마크가 그나마 유사한 수준이다. 


또한 높은 세율이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현재 유동량에 부여될 뿐, 재산세나 상속세에 대해서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부의 세습을 터부시 하지 않는 문화에서 일부 기인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 있다. '애초에 부자로 태어나지 않으면, 부자가 될 가능성이 극히 미미하다!'라는 생각이다. 즉 보통의 삶을 살기에는 더없이 행복하고 좋지만 뭔가 잭팟을 터뜨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버는 족족 세금으로 내야 하니까) 나라인 것이다. 


자,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모두가 잭팟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더 좋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체화된 무기력함'에 있다. 어차피 나는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했으니 그냥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살련다는 무기력함 말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혁신/ 성장 동력과도 연관이 되는데 내가 굳이 다시 강조하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저기 언덕 너머 궁궐 같은 기와집이 있다. 그 집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분노인가, 질투인가, 무관심인가, 아니면 동기 부여인가? 


만약 당신이 저 복지국가에 살고 있고, 거기서 언덕 너머 그 집을 바라본다면 그때 느끼는 감정은 달라질 것인가?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모습, 그리고 어디서 살면 내가 행복할지 결정하는 것은 이 같은 감정의 변화에 달렸다고 본다.








- 각주 1 : 스칸디나비안 국가와 노르딕 국가의 차이를 보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기에 좋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노르딕이 스칸디나비안보다 좀 더 큰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기사 링크) 참고로 2019년 3월에 발간된 '세계 행복 보고서(2019 World Happiness Report)' 내 상위 1~5위 국가는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네덜란드다. (기사 링크)

- 각주 2 : 대개 이 나라들은 이민 정책에 있어서는 열린 편이라고 평하기 어렵다. 이는 관대한 복지 정책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국민성'이라는 단어를 쓰기 꽤나 용이해진다.

- 각주 3 : 물론 이런 복지를 제공하기 위한 제반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핀란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가 보면 재미난 글이 있다. 세금 확보가 중요하다 보니 태어나면서부터 국세청이 인구 관리를 하게 되는데 심지어 신생아의 이름을 거절할 권리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한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다.

- 각주 4 : 블룸버그-비즈니스 위크에서 이를 다룬 바 있다. 핀란드에서 최연소 여성 총리가 탄생하자,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앞둔 밀레니얼 세대 출신의 젊은 총리가 짊어질 부담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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