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었다. 출장으로 방문한 그곳의 하늘은 오랜만에 맑았고, 그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던 직원 한 명이 나를 인근 커피숍에 데려갔다. 나는 한자와 영어가 적절히 섞인 메뉴판을 호기롭게 바라봤다. 뭔가 모르는 말들이 많아 대부분 잊었지만 내가 마셨던 '아메리카노'를 '미식커피(미국식)'이라고 표현한 것만은 기억에 남았다. '갤럭시 호텔'을 '은하귀빈(우주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고 표현한 호텔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당시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문득 2주 정도 되는 출장 중 그날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이와 연관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봤다. 나는 몇 년 전의 기억을 꺼냈고, 이내 잡상이 시작되었다.
중국인이 일 년 동안 마시는 커피는 평균 몇 잔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도심지로 갈수록 숫자가 커지고, 외곽으로 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그러나 모든 수치를 종합해 평균을 내면, 놀랍게도 한자리 숫자가 나온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은 1년 동안 평균 5~6잔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1주일이 아니다. 1년이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커피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연간 70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심지어 이 다섯 잔도 최근 몇 년 새 대폭 증가한 수치다. 조금만 몇 년 뒤로 돌아가도 많은 자료에선 중국의 1년 커피 소비량으로 2잔을 꼽는다.
중국인들이 커피를 덜 마시는 이유는 다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차(Tea)를 선호하는 문화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고, 외국 문화에 대한 이질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기 동안 커피를 즐기는 여유를 향유하기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스타벅스는 중국에 진출을 했고, 이제는 전역에 걸쳐 3,000개가 넘는 매장을 갖췄다. 진입 초기 꽤 오랜 기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버텼고, 중국 성장세가 둔화되며 애플이나 맥도널드가 중국 정착에 난색을 표명할 때도 여전히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며 참았다. 그러던 중 Luckin Coffee라는 경쟁자도 등장했고, 금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2,000개가 넘는 매장을 쉬는 타격까지 입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스타벅스는 왜 이렇게까지 중국 시장에 비중을 두는 것일까? 그들에게 중국이라는 큰 시장은 버티기만 하면 달콤한 수익을 보장하는 엄청난 블루오션인 것일까?
어떤 기업에 특정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인식되려면, 진입하는 순간 유일한 플레이어가 되며 가격 책정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통하려면 해당 기업의 진입으로 인해 눌려 있던 소비자의 선호가 표출되어야 한다. 즉, 블루오션이란 해당 기업이 지배력을 쉽게 가질 수 있는 무주공산(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제품을 가지고 등장해야 하는 엄연한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타벅스는 자신의 등장이 중국인들이 쌍수를 들고 반길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제부터 이를 큰 주제별로 쪼개서 생각해 보자.
1. 중국이 가지는 대표적 특징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 그리고 높은 경제 성장률이다.
인구가 많으므로, 그들이 1년에 소비하는 커피의 수를 1잔씩만 늘려도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도심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커피를 소비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높은 경제 성장률은 이에 고무적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도시화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은 차 소비도 함께 늘린다. 이는 경제 성장에 따른 사람들의 Food consumption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커피뿐 아니라 차도 함께 늘어난다. 소비가 늘어난다고 해서 커피가 차를 대체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경제 성장이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진다면 되레 차 소비가 커피에 비해 더 증가할지도 모른다.
2. 스타벅스는 고급 커피와 '경험'을 제공한다.
커피 소비를 증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선,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차보다 커피를 마시겠느냐'라고 묻는 방법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차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느냐'라고 묻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모 외신에서 이러한 설문을 한 적 있는데, 그들의 대답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샤넬이나 에르메스 물건을 사는 것과 유사하게, 우리가 서양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였다.
실제로 TIME에서 Luckin Coffee가 스타벅스보다 경쟁에 취약한 이유로 꼽은 것 중 하나가, '스타벅스는 실제로 매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고급 커피뿐 아니라 고객들에게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각주)
즉, 일종의 과시인 것이다. Luckin 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서양에서 온 그것을, 매장에 앉아서 마시는 여유를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이를 두고 Economist 지에서는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데' 핵심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뜻밖에, 스타벅스가 성공의 요인으로 꼽아야 하는 것은 아래 두 가지가 된다.
1. 소셜 네트워킹이 중국에 얼마나 확산되느냐.
2. 중국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오르느냐.
자, 이렇게 질문을 다시 정리해 보고 생각해 보자. 중국은 스타벅스에게 블루오션일까? 아니면 장고 끝에 둔 악수에 지나지 않을까?
* 참고로 스타벅스 재무제표를 보고 쓴 글이 아니다. 재무 분석이 아니라 전략적 접근 연습으로 잡상을 짧게 펼쳐 본 것이다. 이런 류의 작업은(조건 재변환) 생각보다 재미있다.
각주 : 해당 기사에 따르면, Luckin은 커피숍이라기보다는 편의점에 가까우며 그 지나친 편의성 때문에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당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