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병을 이겨내는 세계적 노력 중 하나다.
유행병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물론 가장 기본은 의학적인 방법일 것이다. 감염된 사람을 치료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활동을 말한다. 정치/외교적인 부분도 있으며 경제 활동과 연관된 항목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에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중요한 요소가 또 있다. 바로 '자금(Fund)'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단순히 국가에서 재정을 할당하거나 화폐를 발행하면 되지 않느냐 묻는다면 : "물론 가능하지만, 그 규모를 생각하면 쉽게 얘기할 거리는 아닙니다."라고 답하겠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나온 기사들을 참고할 때, 유행병 퇴치를 위해 한 나라에 투입되는 자금이 보통 $bn (십억 불) 단위라고 한다. 이를 전 세계적으로 환산하면 그 규모가 몇 곱절될 것이다. 그러나 조기에 방지하는 활동에는 $mn (백만 불) 단위 정도면 된다고 한다.
물론 사전 방지 시스템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구축할 수 도 있다. 일부 자료에선 매년 선진국이 조금씩 갹출해서 $2bn 정도만 마련할 수 있으면 충분한 선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발병 감시 시스템 (Surveillance System)과 관련 종사자 임금, 그리고 유사시 즉각 활동할 수 있는 활동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mn 단위보단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2bn이면 분명 작은 수준이다. (각주 1)
그렇다고 해서 이와 유사한 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얘기하려는 Pandemic bond(유행병 채권!?)이 그 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는 Bond다. 다른 채권처럼 사고팔 수 있다. 이자(Coupon)도 나온다. 심지어 일부 Pandemic bond는 두 자릿수 이자율을 지급하기도 한다. (각주 2) 그러나 다른 채권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Pandemic bond는 특정 상황(Trigger condition)이 충족되면 원금 회수를 못한다. 그 돈은 곧장 유행병이 퍼진 곳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물론 원금이 없으니 그때부터의 이자도 없다.
그렇다 이 체계는 보험(Insurance)과 정확히 동일하다! 부유한 국가들에게서 돈을 걷은 뒤, 이를 운용하다가 세계 어디선가 사태가 터진다면 그곳을 지원한다. 만약 유행병 발생 없이 무사히 지나간다면 원금을 돌려받는다.
보험은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높은 비용이 드는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 때 십시일반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병이 되었든 사고가 되었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 가입자들에게 소액을 걷어서 운용을 하다가 누군가 해당 일을 겪게 되면 그 자금을 활용해 지원한다. 아주 러프하게 얘기하면, 이런 구조 속에서 유독 튀는 확률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심사역의 일이고, 모인 돈을 잘 굴려 일을 겪은 사람에게 충분히 돈을 지급하고, 그러고도 남으면 원금을 돌려주게끔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게 운용역의 일이다.
그러나 Pandemic Bond를 발행하는 World bank는 보험회사가 아니다. 설령 보험과 유사한 일을 하더라도 (각주 3) 보험회사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보험과 유사한 성격을 띤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이 상품을 통해 우리가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자.
1) 유사시 충분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Trigger Condition에 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해당 국가로 자금이 지원된다. 이는 해당 발발 국가의 예산과 별개다. 글 초두에 언급한 모든 활동에 다 돈이 들어가는바, 이런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규모도 적지 않다.
2) 해당 채권 가격으로 현 상황 유추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로 해당 국가가 받는 영향을 알고 싶다면 환율의 움직임을 보라고 일전에 적은 바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99
Pandemic bond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환율이 해당 국가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면, Pandemic bond의 가격은 지금 유행하는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퍼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일례로 최근 발행한 Pandemic Bond의 수익률이 (또는 채권 액면가 대비 실제 거래가) 40% 정도 하락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금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Pandemic으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었다.
물론 한계점도 있다.
1) Trigger Condition이 너무 제한적이면 실효성이 부족하다.
실제로 대부분 Pandemic bond가 발효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너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상자를 낸 에볼라 사태 때도 이 채권들은 발효되지 않았다. (어떤 기사에 따르면 심지어 당시 수익률이 60%가 넘게 하락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발동되지 않은 것이다.)
2) 예방이 아니라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만약 누군가 Trigger Condition을 낮춰 실효성을 높인다고 하여도, 이는 어쨌거나 유행병이 발발한 뒤 제공되는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다. 즉, 서두에 언급했듯 $2bn이면 되는 예방 시스템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미 발발해서 퇴치에 - 통상 한 나라에만도 - 몇십 $bn이 드는 비용에 일부를 보태게 되는 형식인 것이다.
역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을 짜깁기했다. 창조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평소 모르고 지내던 영역을 알게 되는 게 작은 즐거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자위한다. 그리고 이번 글에는 일부러 기사들 링크를 달지 않았다. 왜냐하면 google을 통해 해외 기사를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도 된다! 읽기에 대한 것은 내 영어공부 중간보고 2편의 예고다.)
- 각주 1 : 곰곰 곱씹어 보면 알겠지만, 맞다. 이는 IMF가 운영되는 체제와 똑같다. 해당 기사 작성자는 캐나다의 교수인데 IMF를 본 따서 의학적 감시 체제를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 각주 2 : 이자율에 너무 놀라지 말자. 통상 이자율은 연 환산을 해서 얘기한다. 물론 그럼에도 작금의 저금리 시대에 두 자릿수는 높긴 하다.
- 각주 3 : 보통 이런 다국적 은행은 최빈국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긴급 지원할 수 있도록 비상 펀드를 따로 마련해 둔다. 이는 Pandemic bond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어쩌면 이 부분은 보험회사라기보다는 원조단체의 성격을 더 진하게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