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최근 생각한 경제학 화두 몇 개를 글로 풀어보려다가 수차례 실패했다.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근 2주에 가까운 새 글 공백이다. 가벼운 슬럼프인가 치부하려다가 문득 이 단절의 근본적 원인인 재택근무를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극복하려면 원인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하의 서술은 지난주 금요일부로 재택근무가 만으로 꼭 10주를 채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나는 미국이다.)
1. 업무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용 폴더이든, 클라우드 서버이든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또한 업무용 노트북을 통해 사무실 바깥에서 VPN으로 접속하든, 다른 PC로 업무용 PC에 원격 접속을 하든,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뻔한 소리인 것 같지만 이게 없으면 재택근무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비효율을 불러온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조건부터 어긋나는 회사가 많다.
2. 업무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투입이 아니라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 내가 몇 시간 일했는지가 아니라 약속한 기한에 완성된 프로젝트를 가져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그 완성품을 가지고 다음 단계 작업을 해나갈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데 '너 왜 일과시간에 메신저 답이 없냐.'라고 하는 순간 꽝이다.
3. 개인적인 조건 : 집중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아이들, 반려동물들, 가족들, 또는 혼자 있더라도 다른 유혹들에서 벗어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학교가 폐쇄되어 아이들이 종일 집에 있어도 스스로 뭔가를 할 줄 아는 나이와 온종일 함께 놀아줘야 하는 나이의 아이는 파급효과에서 차이가 크다. 업무용 공간을 따로 할애할 수 있는 사람이 갖는 이점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아이 역시 함께 머무르는 상황에서의 재택근무는 난이도가 극상이다. 업무 하는 중간중간에 맥이 끊기니 미진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들을 재우고 난 밤에 PC를 켜는 경우가 다반사다. 놀랍게도 꽤 많은 동료들을 새벽 메신저에서 본다. 그들 역시 같은 사유를 지닌 동지다. 그래서 수다를 떨 엄두조차 못 낸다.그만큼 서로의 수면시간이 깎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침 회의는 점점 시간이 당겨진다. '통근시간이 준 데다 굳이 씻거나 하지 않아도 되니까.'라는 사유로, 요새는 아침 8시 회의도 빈번하다. 반면 한국과 소통해야 할 때는 시차 때문에 밤 9시 이후인 경우가 많다.
스티브 잡스는 재택근무를 미친 짓이라고 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창의력 발휘에 부정적이라는 사유에서였다. 그 말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막상 겪어보니 마냥 천국인 것만도 아녔다. 아이가 있든 없든 생산성의 하락은 분명했고 대면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이번에도 하나의 답은 없는 셈이다. 트렌드가 될 수밖에 없다면 어떤 식으로 자신의 회사에 접목할지 고민하되, 앞서 언급한 인프라 구축을 제1의 과제로 하고, 이후 접목의 수준은 업의 특성과 개개인의 선호에 따르면 될 것이다.
퇴사나 장기간 파견을 해 본 이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처음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니 좋은 것 같은데 이내 이러다 내가 잊히는 건 아닌지,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없었는지, 나를 무엇으로 어필해야 하는지 등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런고로 언제나 승자는 자기가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