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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Feb 17. 2018

삶의 희망 : 사필귀정(事必歸正)

어쩌면 미래를 미끼로 현재를 버티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1. 영화에서 보았다.


김윤석과 유해진이 호흡을 맞춘 영화 중 "극비수사"라는 것이 있다. 그 작품에서 김윤석은 잘 나가지 못하는 형사, 유해진은 도사로 나온다. 납치가 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찾기 위해 점쟁이와 형사가 힘을 합친다는 내용이다. 줄거리만 들으면 빠른 전개의 액션 영화 거나 스릴러물 같지만 막상 보면 그냥 삶의 단편을 다룬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지만 기본적 스토리와 더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두드리는 요소가 몇 군데 더 존재했던 것이다.


김윤석은 잘 나가는 형사들과 팀을 꾸렸다. 잘 나가는 형사들은 당연히 실적이 우선이었고, 때로는 과욕 때문에 거의 다 된 수사를 그르치기도 한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가장 고생한 김윤석은 끝내 범인을 잡고, 아이를 구하는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공로를 시상하는 명단에는 잘 나가던 형사들만 언급됐다. 다행히 김윤석도 뒤늦게 그 명단에 포함된다. 그러나 상사와의 면담 중 테이블에 놓인 종이에, 뒤늦게 명단에 넣기 위해 펜으로 끼적인 자신의 이름을 보고 만다. 사실은 자기가 다 했다고 말해버리고 싶지만 결국 그는 상관 앞에서 다 같이 협조한 덕분에 잡을 수 있었다며 말을 흐린다. 


유해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말투로 그를 응원한다. 나중에 승진을 더 빠르게 할 것이라며 위로인 듯 말한다. 점쟁이가 하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예언인 걸까. 영화 마지막에서 그들은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을, 그렇기에 성공을 암시하는) 자가용을 타고 냇가로 나들이를 간다.




2. 영화에서 가슴이 저렸던 세 가지 : 1) 공을 빼앗겼다.


일상에서 노력과 공이 제 주인을 찾아가는 일은 얼마나 드문가. 대부분의 일들이 협업으로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주역은 존재할 텐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과연 온당한 사람인지 의심스러운 순간이 왕왕 존재한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이번 공을 앗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뒤돌아 봤더니 내 공이 뺏겨 있기도 하다. 


노력이 반드시 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험 점수가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꾸지람에 어린 시절의 우리는 종종 이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그래도 공부하느라 밤샜단 말이에요."


나의 노력은 그들의 화를 가라앉히는 역할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노력과 성취는 비례하지 않는다. 머리나 센스 탓도 있겠고, 핵심을 짚지 못한 탓도 있겠다. 운의 영향도 있으며, 성정(겁이 많다거나 참을성이 없다거나)과도 관련이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모든 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던 이가 수능 당일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면 대학 입학 사정관이 바라보는 그의 점수는 그저 無일 뿐이다.


하지만 노력과 공이 반드시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로 내 공을 당신이 앗아가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우리가 화를 내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3. 영화에서 가슴이 저렸던 세 가지 : 2) 상관 앞에서 말문을 흐렸다.


"사실은 그거 내가 다 한 거예요!"

공을 빼앗기면 누구나 이렇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내뱉기란 쉽지 않다. 예상되는 반응이 뻔하기 때문이다.


① 앞에서 인정을 하더라도 뒤에서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 / 너무 세."라고 말을 한다든지,

② "세상에 혼자 하는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동료들은 그럼 그 시간에 놀고먹었단 소린가?"라고 혼낸다든지,

③ "이제 와서 자네가 이렇게 모난돌이 된다면 (영화라면 경찰) 팀 전체에 대해 모욕이 될 걸세!"라며 곤란한 상황을 만든다든지. 등등. 뻔한 레퍼토리들이 많다.


이를 알기에, 너무 잘 알기에 현실의 우리는 말을 흐린다. 김윤석도 말을 흐렸다.




4. 영화에서 가슴이 저렸던 세 가지 : 3) 그럼에도 그는 잘 되었다.


점쟁이라 부를까. 도사라 부를까. 어쨌건 유해진의 응원, 또는 예언대로 그는 잘 되었다. 나중에 더 빠른 승진을 얻어냈다. 잘 된 일이다. 착한 주인공이 잘 되었으니까.


현실에도 이런 일이 많을지는 모르겠다. 앞의 두 항목과 달리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있긴 하다. 바로 착한이가 잘 되는 세상을 많은 사람이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필귀정. 일들은 반드시 좋은 쪽으로 귀결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네 개의 한자를 합쳐 멋진 문구를 만들었다. 저 4글자 속에 4천 년 넘는 시간 동안 4억 명은 넘을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왔다. 





5. 우리는 희망한다.


희망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버티게 하는 동기다. 그 미래는 특정된 것이 아니기에 되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언젠간 잘 될 거야.'하는 믿음에 유효기간은 없다. 다만 그 희망에도 몇 가지 구체적인 가능성은 있다.


1) 나쁜 사람은 언젠가 꺾인다.


대부분 말문을 흐리는 이는 선한 사람이다. 회사에서 모진 일을 당해서 뭔가 울분을 토해내려다가도, "저 사람도 가정이 있을 텐데...", "저 사람도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하고 참는 사람은 그 자체로 선하다. 적어도 공감을 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진 사람들이 언제나 선한 사람만 상대할 수는 없다. 게임을 하다 보면 끝판 대장은 언제나 새로이 나타나는 법이다. 언젠가 본인보다 더 모진 사람을 만날 것이고 그는 그때 똑같이 당할 것이다. 만약 모질었던 사람이 선한 성정으로 바꾸어서 그럴 복수의 기회가 없어진대도, 세상에 모진 사람 하나 줄었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분하다. 보상은 꼭 개인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모질게 대꾸를 했을 테니까.


2) 선한 다수가 동일한 것을 기원한다.


정성이 모이면 그 빛을 발한다고 믿는다. 초현실적인 믿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과 부모들,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모두 긴장하는 수능날 유독 세상은 추워지지 않던가. 


동일한 것을 기원하는 선한 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믿음이 뭉치고 뭉치면 눈덩이가 커지고 굴러가는 속도에 탄력이 붙듯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사필귀정은 미래를 담보로 한 현재의 미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미래가 반드시 이뤄지리라 기원한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갖는 담보 가치가 높다고 말하고 싶다.



음력설이다. 직장인들이 숨을 돌리기에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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