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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r 24. 2018

직장에서 투명성이 갖는 힘

효율, 그리고 스피드.

0. 잡상의 발단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한창 열기를 뿜어대던 그 고등학교 시절 말이다. 그 시절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은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었다. 운동도 잘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알아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집중하느라 따로 드러내 놓고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적이 곧잘 나오는 학생 말이다.


많은 친구들이 그런 모습을 추구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는 멋진 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와 연관된 일화가 여러 개 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자습시간에 시크하게 엎드려 자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엎드린 상체 밑에 영어 단어장을 숨겨두고 외우고 있었다거나, 밤에 공부하느라 보지 않은 야구 경기를 뉴스에서 전해주는 주요 장면을 활용해 친구들에게 직접 본 듯이 얘기를 하는 식이다.


당시에는 그저 그 친구를 놀려대던 일화였을 뿐이다. 직장에 들어와 업무를 하다가, 그리고 『An Everyone Culture』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친구가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미안해. 나 지금 영어 단어 외워야 해. 조금 이따 놀자."
"어제는 밀린 공부 하느라 야구 못 봤어. 어땠어? OOO가 홈런 쳤다는 얘긴 들었는데."




1. 좋은 기업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좋은 기업을 다룬 책들을 읽었다. 하나는 Ray Dalio의 『Principles』, 다른 하나는 Robert Kegan과 Lisa Lahey가 쓴 『An Everyone Culture』다. 후자는 의도적으로 직원들의 성장을 이끄는 조직 (DDO, Deliberately Developmental Organization)을 다루는데 그 안에 Ray Dalio의 회사도 포함돼 있다.


이 책들은 많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지만 좋은 기업에 대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투명성을 중시한다. 나의 실수, 나의 약점을 같은 회사 누구나 알 수 있게 한다. 
   신입사원부터 CEO까지 이에 대한 예외를 두지 않는다.
2. 내가 약한 분야에서 강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내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Feedback을 준다.
   CEO가 약한 분야에 신입사원이 조언을 할 수도 있다.
3. 나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게 한다.
   한 업무에 적응을 하자마자 다른 업무를 부여한다. 이 때도 1~2를 적용한다.
4. 1~3의 결과, 회사의 누가 어떤 분야에 강하고 어디에 약한지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회사는 최적의 인적 포트폴리오로 일하게 되고, 직원은 늘 성장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Ray Dalio는 이를 본인의 경험을 통해 습득을 했다면 (그의 책 전반부는 그의 삶에 대한 것이고, 삶의 원칙이나 일의 원칙 중 특정한 어떤 것이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해준다.), 후자의 책에서는 학문적인 가정에서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에서 출판했으며 저자가 교수다.) 저술을 시작하는데 그 가정이 곱씹어 볼 만하다.


회사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쏟는 에너지를 업무에만 집중시키면 어떨까?


보이지 않는 곳에 쓰이는 에너지. 고등학교 시절 내 친구의 일화가 이에 해당하는 좋은 예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고 하지 않던가.




2.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한때 나는 마틴 셀리그만이 주장한 '긍정 심리학'에 심취했었다. 긍정 심리학이란 웃고 살자, 즐겁게 살자는 뜻이 아니다. '내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즉, 요약하자면 이렇다.

50점짜리 약점을 보완하려 애써봐야 80점이다.
하지만 100점짜리 강점을 보완해서 120점을 만든다면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50점을 80점으로 만들려 하기보다 100점을 120점으로 끌어올리는 게 더 낫다. 합리적인 발상이다. 이것이 왜 긍정 심리학인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좋다.


우리는 자신의 "단점"을 남의 "장점"과 비교하면서 불행해한다.


다른 것 같지만 곰곰 생각하면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 50점짜리와 남의 100점짜리를 비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비교는 잣대의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옳지 않다. 내 100점짜리와 남의 100점짜리를 비교해야 온당하며 내 100점이 120점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무언가를 정말 잘했다고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이 접근법을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 읽은 두 책에서는 이와 사뭇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약점을 공유해라. 그리고 그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라. 이 말들은 긍정 심리학과 배치된다.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가 되지 않을까? 둘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3. 하나씩 풀어보자 (1) : 개인의 관점


먼저 개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자신의 약점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과연 내 강점에 집중하는 것과 배척될까? 이를 두 가지로 쪼개 분석해 보자.


1) 약점을 공개하면 약점을 숨길 필요가 없다.


실수를 했을 때 누구나 앞이 막막해진다. 이때 가장 간편하고 속 쉬운 방법은 즉시 보고하는 것이다. 약점 공개도 마찬가지다. 약점을 공개하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잘하는 것처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쉽게 얘기하자면 더 이상 '연기'를 할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면 된다.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집중하라지만 사람의 심리란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내가 강점에 집중하고자 하더라도 누가 내 약점을 건들면 일단 방어부터 하는 게 사람 심리다. 이는 강점에 집중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는다. 약점을 공개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더 강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2) 피드백은 자동적인 약점 강화 기제다.


남들에게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어렵다. 피드백의 본질은 '타인에게 나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쓴 적도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51

위의 글에서 '하루만 참으면 감정적인 부분은 모두 걷어내지고 내게 필요한 골자만 남기기에 충분하다'라고 썼다. 만약 회사에 이런 피드백 기제가 정착돼 있다면, 남들도 나처럼 피드백을 여기저기서 받을 것이므로 나만 부끄러울 경우가 덜하다.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 50점짜리 약점이 80점까지 오르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의 관심과 조언 덕분에 30점으로 더 내려가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 즉 내 약점을 보호해주는 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4. 하나씩 풀어보자 (2) : 회사의 관점


회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두 책과 긍정 심리학이 갖는 공통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모든 직원의 강점과 약점이 투명하게 공유된 조직을 상상해 보자. 이런 회사라면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부서를 조직하려 할 때, 각 업무에 가장 적합한 (=그 업무에 강점을 가진) 사람을 뽑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약점을 공유함으로써, 회사는 되레 가장 효율적으로 직원들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직원들이 약점을 숨기기 위해 '연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나 시간을 오롯이 '강점'에 집중시키면서 회사 전체적으로 효율성도 높아진다.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둘의 맥락이 상통한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5. 핵심은 투명성이다.


두 책의 내용이든, 긍정 심리학에서 설파하는 것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다. 바로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영역에서 뛰어나고, 어떤 영역에서 약한지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개인도 회사도 이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자면 당연히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약점이 타인에게 공격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실수'의 예도 마찬가지다. 누가 실수를 제때 보고했는데, 이를 질타하기만 하는 문화라면 실수를 적시에 보고하는 문화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투명성과 연관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팀으로 전입한 신입사원들 교육을 예전에 몇 번 담당했다. 그때 즐겨 사용했던 말이 있다.


어쩌면 회사가 아는 당신의 모습이,
당신이 생각하던 당신의 모습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사회생활 경력이 짧아서 (이 책들도 읽지 못했고) 그저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부서에 배치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뉘앙스 정도로 활용했다. 물론 나의 부서 이동들이 놀랍게도 내 역량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경험들이 녹아있기도 했다.


만약 투명함이 전제된다면 저 말 역시 이번 글의 논지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당신이 생각했던 당신의 모습엔 '약점을 숨기려 연기했던' 부풀려진 자아가 있다.
투명하게 공유된 당신의 강점과 약점은 비로소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가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직장. 생각만 해도 개운하고 효율적이다. 아직은 책에서 다룰 정도로 지극히 소수의 기업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고, 전반적인 논의는 학문의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내 주변 소수의 인원들 간에서라도 이러한 개운함을 기대해 본다. (사생활까지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 직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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