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피드백을 받는 방법
약속은 언제나 틀어진다.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든,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든 말이다. 변명은 아니지만 원래 글쓰기로 (3)과 (4)를 채우려 했었으나 중간에 이 잡상이 끼어들었는바 하나를 더 늘려 5개짜리 시리즈로 구성하면 한결 안정적인 (무슨 근거로-) 형태가 되지 않겠는가 자위해 본다. Ray Dalio의 'Principles'에서 그가 강조한 Radical Transparency에 대해 읽고서 우리나라 회사에서 실질적으로 이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떤 스킬이 필요할지 생각을 곱씹다가 떠오른 생각임을 밝힌다.
우선 1편과 2편은 아래와 같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4
https://brunch.co.kr/@crispwatch/43
피드백은 어렵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껄끄럽다. 하는 사람은 혹여 그것이 공격처럼 받아들여지면 어떨지 조심스럽고 받는 사람은 혹여 이것이 공격인지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① 두 명 이상의 업무 주체가 존재
② 서로 업무 호흡이 꽤나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음
③ 개인적인 친밀도가 높아지자 서로에게 업무 피드백을 요청함
④ 조심스럽게 진행하다가 갈수록 직설적이고 강도가 높아짐
⑤ 대놓고 다툰 것은 없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모르게 서먹해짐
그래서 시중에 나온 책들을 보면 몇 가지 큰 방법에 기댄 대안들이 제시돼 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심리적인 것으로, 피드백을 일종의 꾸중의 영역으로 넣어 '칭찬을 먼저 하고 피드백(꾸중)을 하라.'는 뉘앙스가 많다. 다음은 조직관리 차원에서 리더십도 길러야 하는 항목이며 피드백은 껄끄럽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라는 당위론을 내세우는 주장을 많이 봤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경우처럼 피드백은 필요하다. 다만 당위성만 언급하고 넘어가기엔 부족하다.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데 당신은 아직 못하고 있나요?'라는 식으로 독자에게 바통을 넘겨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타고난 센스가 있어 저 한 문장의 당위만으로도 스스로 방법을 깨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론 없는 당위론은 그저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우선 그 당위론의 근거부터 채워보자. 피드백이 필요한 이유는 화자와 청자 양측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청자는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모르거나 틀렸던 부분을 시정하고 부족한 역량을 보충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대부분 이 항목을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피드백은 주로 청자의 입장에서 효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청자만큼이나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화자의 입장이다. 화자는 피드백을 주는 과정을 통해 동일한 업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됨과 동시에, 자신의 피드백이 긍정적인 결과로 귀결될 수 있게끔 고민하며 스스로의 역량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피드백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서먹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대인(對人) 심리 파악 능력도 개선할 수 있다.
이렇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면 무엇보다 혜택을 받는 것은 바로 회사다. 이전보다 분명 나아진 직원이 두 명이나 생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면야 그 회사의 미래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밝으리라는 사실은 말해 무엇하랴!
아이고 형님, 평소부터 늘 한수 배우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동생이다 생각하고 언제든지 쓴소리, 단소리 구분 없이 편히 해주십시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자리에서 간간이 들을 수 있는 대화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것을 정답이라 말하긴 어렵다. 술기운에 내일부터 호형호제하자고 호언장담을 하고서 다음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어색하게 서로 존대하는 사이가 어디 한둘이던가. 이번에도 감정을 배제하고 봐야 한다.
피드백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보자면 곧, '나를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게 싫고 좋고를 떠나서 어쨌거나 핵심은 나, 내 업무, 내 역량, 내 글솜씨, 내 판단 등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이다. 평소에 몰래 부장님께만 바로 드리고 남들은 보이지 않게 빨간펜으로 수정받던 보고서를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이다. 노출이 바로 피드백의 핵심이다.
노출은 본능적으로 주체에게 거부감을 준다. 노출이 되는 순간 강점과 더불어 약점도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가 피드백을 요청하는 대상은 대부분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배우고픈 사람에게 나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만약 그 피드백들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눈에 나의 모자란 역량이 좋게만 보이기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시간의 힘이다. 하루만 참자. 남들이 내 의견과 판단, 글솜씨를 보고 무어라 말하든 일단 하루만 참자. 참을 인(忍)이 세 개면 살인도 면한댔다. 지금 우리 속을 끓이는 것은 철천지 원수도 아니고 고작 보고서 한편일 뿐이다.
때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말투가 냉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그의 말투 여부를 떠나서 그로부터 내가 얼마나 배울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하루만 참으면 그의 말투는 잊히고 그가 나에 대해 판단한 팩트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배척할지 역시 나만의 판단이다.
그가 나에게 준 지적(팩트)과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판단)의 골자만 남기기엔 하루면 충분하다. 그의 말투와 그의 성격,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은 하루면 지워진다. 지우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그 사람은 왜 나한테 그렇게 얘기했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이 나한테 그것을 이야기한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비웃었든 나를 무시했든 상관하지 말라. 하루면 그런 껍데기는 잊힌다. 대신 하루 뒤에 당신은 당신 판단력을 강화할 수 있는 팩트 하나를 더 얻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위의 방식으로 순화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상대로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이다. 인성도 괜찮고 일도 잘하는 선배는 분명 한 명은 있다. 그를 공략하라.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게 제일 쉽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누가 일을 잘하면서 성격도 좋은 선배인지 파악하기 힘든 신입사원이거나, 부장님처럼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직급이 피드백을 주는 경우거나, 회사에 인성과 역량이 모두 좋은 선배가 없는 경우 등이 그 예가 되겠다.
이런 경우 괜찮은 해결책은 그 사람이 나에게 준 피드백이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것인지 주변에 물어보는 것이다. 이때의 주변이란 꼭 같은 회사가 아니더라도 친구, 가족, 다른 선후배 (학교 선후배라든지) 등이 해당한다. 물론 업무 내용은 빼라. 회사 일이 힘들다고 해서 바깥에서 회사 욕을 할 때 그 업무 내용까지 말하면 안 된다. 그건 투정의 하수일뿐더러 때로는 범죄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에도 감정은 빼라. '결론을 앞에 쓰면 좋다고 해서 보고서에 두괄식으로 썼더니 부장님께서 이를 시점별로 재구성하라고 지침을 주셨어. 물론 그 안건이 여러 해에 걸쳐서 이뤄진 것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 당장 문제가 된 사안을 집어내고 싶었거든. 이런 경우에는 두괄식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네 생각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다.
* 사족 : '미쳤네. 보고서는 무조건 두괄식이야. 임원들은 바빠서 결론을 바로 내릴 수 있는 자료를 좋아하는데. 책에도 모두 그렇게 쓰여 있다고.'라고 말하는 사람은 걸러라. '대부분 보고서가 두괄식이 좋다고 얘길 하지. 하지만 네 말대로 원체 오랜 시점 동안 진행된 안건이라면 시점별로 구성하는 것도 필요할 거야. 일단 부장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수정을 해 보고, 대신 네 아이디어를 보태서 앞쪽에 지금 현안이 된 부분을 요약하는 챕터를 넣는다든지, 표지 페이지를 달면서 그 내용을 적는다든지, 메일로 공유를 하는 것이라면 메일 본문에는 그 현안 위주로 적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떨까?'라는 사람을 옆에 두어라.
* 참고로 후자는 (4) 편의 예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