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Jan 11. 2018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사람의 성정은 불변인가 가변인가.

0. 잡상의 발단


요즘 부쩍 글을 쓰는 게 무섭다. 그동안 싸이월드, 페이스북, 그리고 브런치까지 많은 곳에 글을 썼다. 나는 잡다하게 떠오르는 잡상들을 정리해 두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롯이 나 자신을 향한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글들도 공개로 두었다. 모순이었고, 무서움의 근거가 되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생활 연차도 늘어나면서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졌다. 물리적인 공간이 회사와 집으로 한정된 것이 가장 크지만 행위의 가짓수도 줄어들고 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 짧은 소견으로 뭔가 조언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페이스북은 어느새 완전히 멈췄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빈도도 줄었다. 몇 가지 시리즈물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보다 무섭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아닌,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예를 들어, 꼰대에 대한 비판글을 쓰면서 내가 꼰대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느 날 꼰대가 윗사람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았다. 정의 실현의 장면처럼 통쾌하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무거웠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평가할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다시 한번 글을 쓰기로 했다. 무서움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므로. 




1. 보수적 전제


나 역시 직장 내 썩은 사과라고 가정을 한다. 사이코든 꼰대든 뭐라 부르든 조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 말이다. 사회 초년생도 마찬가지다. 입사 조언을 구하는 학교 후배에게 '나는 훨씬 빡세게 준비했어.'라고 말한다면 신입이지만 당신도 꼰대다. 가정을 그리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신입이든 중견간부든 임원이든 내가 안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2. 내게 필요한 것은 객관화다.


나 혼자 행복한 미소를 띠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내 주변은 찌푸린 채로 퇴사나 부서이동을 걱정하고 있다면 그게 내 탓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객관화다. 내가 늘 주장하는 것들, 업무에서 감정(호오, 好惡)을 배제한 중립적인 시선 말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어떤지 나열하고, 타인 - 특히 업무와 인성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는 사람 - 들의 업무 방식이 어떤지 나열해서 비교를 해 보자.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칭송을 받고 어떤 부분에서는 호평이 덜한지 생각해보자. 굳이 하얀 문서에 빼곡히 적어나갈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이 일하는 층을 눈을 감고 떠올려 보라. A부서의 홍길순, B부서의 김길동, 이런 식으로 떠올려 나가자. 당신과 친한 상대가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얘기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 회사에서 상을 받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그다음 나를 생각하자. 내가 어떻게 행동할 때 혼이 나고, 어떤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치는지 생각해보자. 좋고 나쁘다는 생각은 버리자. 아직까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보는 시선이 필요한 단계다.




3. 개선안을 못 찾겠다면 해결책도 중립적으로 찾자.


홍길순, 김길동이 나보다 낫다고 한들 성향 자체가 나와 정반대라면 내가 그들의 장점을 따라 하기 어렵다. 업무 역량이 모자란 부분은 내가 공부하면 된다. 다만 일하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면 무턱대고 따라 하는 데서 빚어지는 단점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을 따라 하려고 어설프게 농담을 외우는 사태를 상상해 보라. 이럴 때 중립적인 해결책이 도움이 된다.


1) 농담은 하지 말자.


폭언, 성희롱, 꼰대 등등 대부분 농담에서 비롯된다. 이런 류의 일들이 공론화되었을 때 가해자 측에서 항상 하는 얘기는 똑같다. 웃자고 한 얘기인데 상대방이 기분 나쁠 줄 몰랐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농담을 하지 말자. 웃자고 얘기할 필요 없다. 당신이 항상 주변을 웃겨야 하는 의무 따위는 없다. 


농담이 없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당장 하루를 돌아보자. 농담은 당신이 입에서 뱉은 말 중 10%도 채 되지 않는다. 당신은 90%의 삶을 농담 없이 지내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은 그 시간에 문제가 덜 생긴다. 농담은 오래된 친구들과 하라. 그 친구들은 지금 그대로의 당신과 맞아서 여태까지 지내오고 있는 것이니.



2) 화를 내기 전에 질문을 하자.


후배든 동료든, 때론 선배든 일을 잘 못해서 내가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화가 난다. 내가 다시 허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들의 표정은 왜 그리 미안함도 없고 놀고 있는 것처럼만 보일까. 머피의 법칙인가. 꼭 그런 날 회식도 있다. 남들은 편하게 저녁을 먹는데 나는 참석을 못하거나, 늦게 가거나,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야 한다. 


화가 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내색은 말자. 아니 한 템포 늦추자. 그리고 상대에게 질문을 하자. 일을 그렇게 처리하게 된 경위를 물어보자. 현실은 항상 웃기게 흘러간다. 그 실수의 원인을 내가 제공했을 수도 있다. 나 때문에 상대가 실수를 하게 된 건데, 내가 화를 내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3) 조언을 하기보다는 의견을 묻자.


내가 조언을 할 만한 입장인지 되묻자. 상대가 대놓고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더라도 항상 조심하자. 그런 다음 설령 어떤 것에 대해 의견을 내게 되더라도 마침표보다는 물음표가 낫다. 어차피 상대방은 자신만의 판단을 어느 정도 가진 채로 남들의 의견을 찾는다. 때론 그냥 푸념처럼 털어놓고만 싶은 경우도 있다. 정말 조언이 필요한 경우더라도 단언은 금물이다. 내 한마디로 남에게 영향을 미치기에는 상대의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 크다. 


의견을 묻자. 첫 질문은 당연히 이것이어야 한다.

네가 갖고 있는 생각은 어때?

내 말의 마지막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네 생각에는 어떨 것 같아?





4. 피드백을 하자.


상대에게 피드백을 요청해도 되지만 스스로도 할 수 있다. 일기는 무척 훌륭한 수단이다. 학창 시절처럼 하루 일과를 써도 되고, 블로그나 페북에 글을 써도 된다. 꼭 오늘의 일을 오늘 적을 필요는 없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숙성되는 법이다. 


명상도 좋은 것 같다.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심신으로 좋은 일이다. 명상법은 인터넷에도 많다. 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어떤 것을 상상하는 행위. 뇌가 호흡한다고 상상하는 것. 내가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 단전에 기가 모인다고 상상하는 것. 상상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상상하기. 내 몸에 불수의근은 없다고 상상하기. 등 말이다.




5. 그리고 나는 세상에 바란다.


일벌백계가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쓴 적 있다. 그때는 사회 시스템을 빌어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접근을 해 보고 싶다.

https://brunch.co.kr/@crispwatch/52


내가 회사의 썩은 사과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선을 장단점을 분석하고, 피드백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응원을 받고 싶을 것 같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바뀌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예전 원님은 죄인을 앞에 놓고 외쳤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스스로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는 형식이다. 


사회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런 것을 기술한 책이 없듯이, 내가 잘 못 배웠고, 잘 못 행동한 것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정정해 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제라도 스스로 바른 길로 접어들려 한다면 한 번쯤은 응원을 해 줘도 되지 않을까.





* 직장생활 썩은 사과에 한정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범죄의 영역에 오른 일이라면 법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 나부터 잘하자. 언제쯤 자가당착에서 벗어날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와 완벽한 일처리는 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