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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03. 2017

자수성과와 타수성가

생각 단순화 연습 (1)

1. 발단


얼마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소위 '금수저 vs 흙수저' 얘기가 나왔다. 가볍게 술도 한잔 들어간 자리였지만 대화는 격하게 흐르지 않았다. 기분이 신선해 귀가 후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또하나의 요인은, 존경하는 페친이 링크해서 알게 된 레이 달리오에 관해서 찾아보다가 그가 쓴 Principles라는 책의 발췌본을 우연히 보고 받은 충격이었다. 


구글에 Ray Dalio Principles excerpt라고 치면 PDF 파일이 하나 나오는데, 그냥 목차만 요약해 둔 정도의 뼈대이지만 그것만 보아도 사고의 체계성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감탄 한번 하고 넘어가자. 세상에는 천재가 정말로 많다!!)


2. 개념의 중립화 혹은 부정적 요소의 제거


부정적 늬앙스를 띠는 흙수저, 금수저 논의를 조금 바꿔보자. 그들의 존재는 그대로 두되 각자가 가진 강점에만 집중해 보자는 말이다. 각각을 "혼자힘으로 성공해야 하는 사람(이하 자수성가)"과 "갖춰진 주변 여건으로도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하 타수성가)"이라 부르겠다.


물론 자수성가라고 무조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을 대입할 필요는 없고 타수성가라 하여 아무능력도 없이 빽으로 어깨펴고 다니는 사람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좀더 나은 입장을 타수성가라 부르겠노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3-1. 요소의 분석 (1)


타수성가가 갖는 이점은 두가지다. 첫째는 경제력에서 비롯되는 여유다. 부모가 집한채를 뚝딱 해줄 수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마음이 편하다.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충동적으로 한달치 월급을 다 털어 무언가를 사도 통장 잔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매월 받는 월급을 용도별로 쪼개어 살아야 하는 사람보다 당연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기타 가정의 불화는 없다고 가정한다.)


이때 핵심은 돈 그자체가 아니라 그에서 비롯되는 여유다. 타수성가는 자수성가의 옷보다 3배 비싼 옷을 입는다고 해서 3배 따뜻한건 아니다. (사실 안입어봐서 모르지만, 설마 3배가 따스할까 한다;) 하지만 3배 비싼 옷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30배는 더 여유로울 수 있다. 어떤것을 사도될지 말지, 그것을 사기위해 돈을 얼마나 아껴서 모을지 고민하는 것과, 상점(이라기 보다는 부띠끄라고 부르는 곳에 그들은 가겠지만-_-)에 들어가서 그냥 사고 남는 시간엔 여가를 즐기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로또가 되어 나도 부자가 되면 그런 여유가 생길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조심스럽다. 여유는 돈에서 오기도 하지만 삶에서 축적되는 태도, 가정 분위기에서 오는 부분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무슨일이든 잘 되어왔어." 하는 것과 "시발 이제 나도 당한 만큼 써지를테다!"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엔 여유가 없다.(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자동으로 5천원어치'라고 사치를 부려본다.)


3-2. 요소의 분석 (2)


두번째는 인맥이다. 타수성가 부모님의 지인들은 역시 타수성가 자녀를 둔 유사한 환경의 사람들이 많다. 괜찮은 직종의 괜찮은 등급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지척지간에 있으면 평소 듣는 대화도 다르고 (로렌스 서머스 교수를 떠올리는가.) 연관된 분야에 궁금증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모르는 수학 문제가 생겼는데 옆집에 수학과 교수가 산다거나, 직장인의 삶이 궁금한데 아빠친구중에 대기업 CEO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다시 말하지만 청탁이나 부정을 제외하고 그들이 가진 강점만 본다.)


4-1. 자수성가가 성공하려면 (1)


자 이제 타수성가 사이에서 자수성가가 잘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 볼 차례다. 자수성가는 돈도 인맥도 타수성가에 비해 부족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가.


우선 경제력은 해당 시점의 유량(flow)로 판단해야 한다. 부모님이 집한채는 못해줬는데 어쨌거나 내힘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같은 기간동안 같은 역량의 타수성가와 같은 수준이면 된다. 집한채 해주고 아니고의 여부를 위해 재산세니 양도세니 상속세니 하는 논의가 나오지만 이는 지금 다룰 꺼리가 아니다.


단지 자수성가가 사회생활 시작부터 타수성가에게 주눅들지 않고 그가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flow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flow가 나날이 증가하고 기간도 길게 이어진다면 자수성가의 자녀는 타수성가쪽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flow의 공정성이 열린 사회의 잣대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량stock이 아니라 유량flow에 집중을 해야 여유도 가질 수 있다.


4-2. 자수성가가 성공하려면 (2)


인맥은 자수성가를 노리는 사람들끼리 졸라게 노력해서 새로 구축해 가야 한다. 모르는 수학 문제가 나와 타수성가가 대학교수를 찾을 때 자수성가는 수학과 학생을 찾는다는지, 직장인 삶이 궁금할 때 대기업 CEO대신 인턴하는 친구를 찾는다든지 등등.


자수성가가 스스로 소득 flow의 규모를 키워 나갈 수 있다면, 수학과 학생은 훗날 수학교수가 되어있고 인턴은 CEO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5. 단순화된 결론


이렇게 보면 자수성가와 타수성가는 하나의 "세대 차이"로 요약된다. 어쩌면 이 단순화에서부터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의 세대를 지나는 동안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잘 발휘하는 것. 그리고 세대를 채울 동안 지치지 않는 것. 그리고 주변에 그런 역량을 지닌 사람을 옆에 많이 두는 것.


공부/일을 하고 (역량), 가족을 사랑하고 (여유의 전파), 건강을 챙기고 (지치지 않기), 주변을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인맥의 구축) 행위는 결국 우리가 익히 듣던 '흔한 잔소리'와 다르지 않다. 아아, 인간의 굴레여!




* 지극히 개인의 관점에 국한해서 썼다. 계급의식이라든지 사회적 제도라든지 복잡한 단계를 언급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 다만 여타의 감정을 떼어내고 좀더 객관적으로 단순하게 인수분해하면 뭐가 나올지를 다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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