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Feb 05. 2018

회사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

영화 "달콤한 인생" 몇 장면을 빌린 생각.

0. 잡상의 발단


오랜만에 영화 "달콤한 인생"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원래 한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편이다. 볼 때마다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이나 의미를 되새기는 맛을 즐긴다. 스트레스를 받은 어느 날, 폭주족을 시원하게 혼내주고 그들이 탔던 차 키를 뽑아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영화를 틀었다가 문득 몇몇 대사에서 직장과 연관한 잡상이 들었다.




1. 회사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할까?


조직이란 게 뭡니까? 가족이란 게 뭡니까?
보스가 누구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되는 거죠.


극 중 이병헌은 사소한 잘못으로 보스의 눈밖에 난다. 보스가 원한 것은 이병헌의 진심, 그리고 잘못했다는 말이다. 사실 그 잘못은 일견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즉, 보스는 그 순간 나빴던 기분을 탓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회사일도 비슷하다. 모든 일이 잘 흘러가기만 할 수는 없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기업이라도 그 속에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일어난다. 누군가는 꾸지람을 듣는다. 물론 본인이 실수를 하거나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떤 때는 관련된 모두가 그저 자기의 일을 다 했을 뿐인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할까? 극 중 이병헌처럼 그저 보스의 나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한 꾸지람 대상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을 녹여 불빛을 유지하는 양초처럼 조직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가?





2. 책임소재에 따라 다르다 (1) - 명백한 잘못인 경우


정답은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가 명백하게 잘못을 한 경우라면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단순히 퇴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책임의 진정한 뜻은 그 일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14


물론 윗사람이 당사자를 다른 부서로 발령 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처벌인 셈이다. 감정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그 일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역시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다.


일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면 자리에서 빼는 게 맞다. 같은 업무를 진행하면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수로부터 배우기도 하지만, 일하는 방식과 같은 성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잘못으로 인해 회사가 입는 손해가 크거나 일을 그르친 정도가 심할 때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다가 올 일처리에서도 그 사람이 업무 하면서 발생할 사건들의 확률을 계산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소한 잘못이거나 손실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 나아가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에 개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본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맞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처럼 당사자도, 회사도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역량을 가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3. 책임소재에 따라 다르다 (2) - 누구의 잘못인지 애매한 경우


대부분 일은 팀 형식으로 진행한다. 하나의 안건에 다수의 관련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일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잘못한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팀 전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아마 현실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기대를 불러일으키던 조직이 어느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지 않다. 여기서도 책임의 정의는 동일하다. 그 일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아야 한다. 팀이 다시 구심점을 찾아 실수를 털어내고 재기하면 된다.


팀 전체를 비난하지 않는 대신 유야무야 잘못이 묻히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팀 전체를 향한 비난보다 좋지 않은 경우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팀은 의욕을 잃게 되고 추진하던 일도 동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기롭게 팀에 합류했던 사람들은 개인적인 역량을 쌓지도 못하고 고과에도 좋지 않은 영향만 가진 채 다시 흩어진다.


물론, 후자의 경우라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해야만 다시 동력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언가 잘 못된 행위가 생겼다는 뜻이고, 그러자면 어떤 단계가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그 판단이 현실에서는 주로 비난과 연결된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4. 현실에서 희생양을 만드는 논리


제가 사람을 잘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요.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속도가 붙어 뛰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일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이 생긴다. 위의 대사가 이를 잘 짚었다. 그쯤 되면 사람들은 초기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 순간의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일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냉철하게 분석하지 않고, 일단 그렇게 되었으니 네 탓이라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내리막 경사를 낮출 생각은 않고 뛰었다는 행위 자체를 혼내는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는 기저에는 책임에 대한 잘못된 정의 탓이 크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 비난을 안고 물러나야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누가 잘못을 저질러 물러난다고 해서 일은 저절로 본궤도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즉, 희생양은 재기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주변에서 희생양 만드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마녀사냥을 책에서만 봤다고 생각하는가? "응? xx부서 ooo 과장이 어쩌다가... 그 사람이 왜?"라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중 일부는 희생양으로 선정된 ooo과장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었을 것이다.




5. 어떻게 대응하는가?


1)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직무를 정의할 때 R&R이라고 쓴다. (콩글리쉬로 알고 있다.) 이는 Role & Responsibility의 두문자를 딴 것이다. 즉 역할과 책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업무 정의가 명확하면 누구의 잘못인지 판가름하기 쉽다. 새로운 팀을 꾸려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반드시 그 안에서 역할을 분명히 나눠야 한다. 명확한 업무 정의는 회사와의 적절한 관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회사와 개인의 관계가 적절해야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가 없어진다.

https://brunch.co.kr/@crispwatch/46


2) 상황 판단하기


명확하게 내가 담당하는 분야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해야 할 분석은 그 문제가 나로 인해 빚어졌는가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 솔직하게 보고를 하고 어떤 행위가 문제를 유발한 건지 분석한 뒤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 정도가 커서 해당 업무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저런 고민의 과정이 없으면 본인이 성장하지 못한다.


3) 정당하게 항변하거나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내가 거래선 담당인데 거래선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게 무조건 내 탓일 수는 없다. 외부의 상황 변화가 발생할 수 있고, 우연히 그것이 내 담당 업무와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도 담당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일의 진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난일 뿐만 아니라, 담당자에게 그저 화풀이만 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정당히 항변해야 한다. 여기서 항변이라 함은 싸우라는 말이 아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을 해결할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즉, 뒤로 물러설 이유가 전혀 없는 경우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일에 항변을 할 수는 없다. 만약 그 비난의 강도가 약하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판단이 든다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서 담담하게라는 것은 감정의 동요를 받지 말라는 말이다. '젠장!'과 같이 스트레스 속에 내뱉는 감탄사에 내 이름이 같이 언급됐을 뿐이라 생각하고 일을 해결하는 결과물로써 이를 만회하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그 사람과 다시 같이 일하고 싶어 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사소한 것으로 본인의 평판과 커리어까지 망치지는 않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략은 어떻게 짜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