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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r 03. 2018

습관의 힘

시간에 기대는 가장 좋은 방법.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날도 나는 묵묵히 헬스장으로 향했다. 등과 이두를 운동하는 날이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느끼고 호흡을 조절한다. 시계를 보며 세트 간 휴식시간을 채우고 다시 덤벨을 든다. 개수를 세고, 다시 한 세트를 마치면 시계 타이머를 맞추고 땀을 닦는다. 물을 마시며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내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 표정이 좀 더 굳었을 뿐이다.


책을 본다. 하루치로 정해둔 목표량이 있다. 하루에 최소 10페이지는 보자. 아무리 기분이 안 좋고 피곤하고 졸려도 10페이지는 보자고 다짐했다. 묵묵히 페이지를 넘긴다. 10페이지 넘기는 모습은 여느 때와 똑같다. 다만 좀 더 오래 소화를 시켜야 할 뿐이다.


영어 팟캐스트를 듣는다. 겸허하게 다시 듣는 기초영어다. 30분이라도 듣는다. 평소와 똑같은 이어폰을 끼고 똑같은 자세다. 다만 따라 하는 발음이 좀 더 더딜 뿐이다.


습관이라는 건 무섭다.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하나의 요소처럼 나에게 딱 붙어있다. 그래서 바꾸기 힘들다. 나쁜 습관이면 더더욱 그렇다. 나쁘다는 것은 하나의 일탈이고, 일탈은 나로 하여금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행히 습관을 운동에 붙였다. 책 읽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었다. 영어도 자투리로나마 공부한다. 그 무서운 습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힘든 날도, 좋은 날도, 기쁜 날도, 슬픈 날도 그날치 운동을 하고 그날치 책을 읽고 그날치 영어 발음을 내뱉는다.


등과 이두 운동하는 날을 십수 번 반복하고, 책 한 권을 끝내고, 영어 수강 목록이 늘어나면 지금 나를 괴롭혔던 일들, 나를 속상하게 했던 기억들이 조금은 옅어져 있을 것이다. 습관의 힘이란 곧 시간의 힘에 기대는 것과 동일하다.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습관은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준다.


꾸준함, 끈기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권토중래, 절치부심, 와신상담, 과하지욕 등 거창한 말을 붙이기고 싶지 않다. 그만큼 뜨겁지도 분하지도 않다. 다만, 예전만큼 많은 무게를 들지 못하고, 예전만큼 책을 빠르게도, 많이도 읽지 못하고, 퇴보해 가는 영어 실력을 가진 지금은, 일단 기대는 법을 아는 게 필요하다. 그게 나이 듦의 자세인 것 같다.


시간만큼 기대기 좋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간은 만인 앞에 공평하다. 내게도, 나를 괴롭혔던 이에게도, 나에게 힘듦을 주었던 이에게도 동일하게 빛의 속도로 흘러간다. 노자 사상에 취했던 과객들처럼 세상사에 초연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에게 중립적이 되려면 몇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도 시간에 기대는 것은 도움이 된다.


어쩌면 시간은 종으로도, 횡으로도 우리에게 기댈 공간을 제공해 주는 셈이다. '시공간'이라는 말이 담긴 의미는 상대성 이론의 그것을 떠나 감성적으로도 우리에게 와 닿는 면이 크다. 그리고 그 시공간에 기댈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습관이다. 습관의 힘을 믿어보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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