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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an 05. 2018

부모라고 시야가 넓진 않다.

내 아이에게 미래를 정해 줄 수 있을까?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할 때 어떤 과를 선택할지 고민했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감성적인 내 성향을 고려하여 법학과 진학을 추천하셨다. 사람을 아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법관이 돼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되레 그 성향을 근거로 선생님의 말씀에 반박했다. 법을 판단하려면 중립성이 필요한데 나는 감성적이라 그것이 약할뿐더러 사람을 대상으로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 무섭다는 이유였다. 


결국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사실 결론만 경제학이 된 것이고, 실상은 수시, 특차, 정시 등의 수차례에서 경영과 경제를 오갔다. 경영과 경제가 대동소이한 것으로 막연하게 알았던 탓이다. 마치 꽃잎을 하나씩 따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되뇌듯 우연히 내가 합격한 순번에 경제학이 걸린 셈이다. 


다행히 학과 공부는 무척 재미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경영과 경제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저 내 수업을 듣고 학과 동기들과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경제학을 전공하면 무조건 고시를 보거나 국책은행에 가거나 유학을 가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인터넷도 활발하지 않던 시절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의 정보력이란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너무 이른 성공은 인생에 독이라고 했던가. 공부를 얼마 하지 않은 해에 1차에 덜컥 붙고, 심지어 그 해 2차에서도 괜찮은 점수로 낙방했다. 나는 자만에 빠졌고 총 4번의 2차에서 비슷한 점수로 떨어졌다. 나 혼자만의 늪에 빠졌던 탓이다. 


군대를 늦은 나이에 다녀오고, 늦은 나이에 입사하고 더 늦은 나이에 이직했다. 영업, 지원 업무를 나름 거치고 나자 몇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자 비로소 경영과 경제의 차이도 확연하게 다가왔다. 


1.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내가 제일 잘난 듯 하지만 세상엔 더 잘난 사람도 많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많고, 특정한 분야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더 많다. 자존감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만심에 빠지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세상은 정말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역할을 하며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성별을 떠나 주부라고 하는 것도 직업 중의 하나로 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그것이 모여 우리나라의 교육이 되고, 수출이 되고, 발명이 되고, 뉴스가 된다. 


3. 그런데 우리가 가진 시야는 좁다. 1과 2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그 결과 정말 다양한 사회에 많은 대단한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내 주위 일부에만 안테나를 올린 채 매일을 노심초사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은 3에서 큰 벽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뭐가 유행이다 뭐를 해야 한다는 소식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게 부모의 심정이라지만 사실 그 유행이나 소식 자체가 지극히 편협한 것이다. 


당장 과거의 내가 예상했을 미래의 나부터 생각해보자. 진작부터 고시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기업에 입사해 더 다양한 조직 문화나 업무 형태를 겪어봤으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내가 겪은 영업 이외의 다른 형태의 영업을 해봤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아니, 더 나아가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웠으면 어땠을지 고민해본다. 좀 더 회귀해서 2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처럼 법학을 전공했으면 삶이 어땠을지도 생각해 본다. 만약 문과가 아니라 이과였다면? 그전에 아예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다. 시의 제목과 같다. The Road not taken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가정과 상상에 의존해서만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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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그런 희망을 투영하고 있지는 않는지 늘 조심한다. 내가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 내가 겪어보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것만 fact다. 나머지는 희망이다.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어떤 일을 좋아할지, 미래에 어떤 직업이 생길지 나는 모른다. 아프지 않고, 올바른 사회성을 가지도록 보살펴 줘야 할 뿐이다.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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