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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3. 2017

포토샵의 마법

마법의 수혜자

포토샵은 마법이다. 요즘은 모두가 인터넷 얼짱이다. 포토샵엔 기능이 많다. 닭 가슴살 안 먹고, 헬스장 안 다녀도 나이스 바디를 얻는다. 체중뿐만 아니라 골격도 바꾼다. 각도 조절과 늘리기 효과를 통해 5등신이 10등신이 된다. 양심을 포기한다면,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눈은 시원, 코는 오똑, 턱은 뾰족, 광대는 늘씬, 어깨는 광활, 다리는 쭉쭉, 이목구비가 진화한다. 보정 후엔 국민 프로듀서들을 마음 속에 저장할 법한 101 출연자가 화면에서 인사한다. 포토샵 고수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부정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젊음을 되찾는다. 나는 마법의 수혜자다. 

사진 편집에 맛을 알게 된 시기는 대략 10대 후반이다. 싸이월드 기본 사진 편집기의 힘을 빌렸다. 어릴 때부터 잡티가 많아서 고민이었다. 여드름과의 백 년 전쟁이 발발한 시기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이다. 사진 보정의 제1 목표는 피부 보정이었다. 빨간 여드름 흉터가 크레오신만으론 지워지지 않았다. 색소침착을 없애려면 몇 년이 필요했다. 시간을 앞당길 방법이 없어서 대안으로 싸이월드 블러 효과를 선택했다. 반윤희 외 인터넷 얼짱들의 편집술을 참고했다. 볼에다 마우스 커서를 올리고 클릭하면 여드름 흉터가 흐릿해졌다. 누가 봐도 '여기 수정했어요'라고 광고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볼과 턱 앞에만 구름이 꼈다. 티는 날지언정 보기엔 나았다. 

얼마 안 가 포토샵을 설치했다. 인터넷 얼짱의 인기 비결이 포토샵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싸이월드 사진 편집기 보다 다양하고 티 안 나는 수정이 가능했다.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고 컴퓨터로 파일을 옮겼다. 포토샵을 켜고 사진을 불러왔다. U라인 얼굴을 V로 바꾸고, 아래턱을 없앴다. 키우기 기능을 통해 안검하수 수술했다. 깨끗한 피부를 원색으로 설정해서 여드름 난 부분에 붙여넣었다.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피부이식술이 1분이면 끝났다. 트렌드에 맞춰 다리를 젓가락처럼 얇게 수정했다. 포토샵 성형에 꼭 필요한 기능 몇 개만 배웠고 사용했다. 실력이 부족해서 티가 많이 났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어플을 통해 간단히 포토샵을 했다. 핸드폰 카메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통해 양호한 질의 원본 사진을 얻었다. 원본 사진의 퀄리티는 포토샵 완성도에 영향을 끼쳤다. 카메라 기술 발전이 사기 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좋은 세상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사진 찍고, 편집하고 인터넷에 올렸다. 중국에서 만든 사진 편집 어플은 모든 절차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원클릭뷰티 기능을 통해 미백, 눈 확대, 잡티제거, 갸름한 얼굴형 만들기가 가능했다. 이제 1초면 편집이 끝난다. 

여자친구는 포토샵으로 얼굴을 고치는 게 멋지지 않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사진을 수정하지 않았다. 이유1. 여자친구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이유2 여자친구 말에 일리가 있었고, 이유3 쿨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 포토샵 1급 자격증을 가진 동생이 고친 얼굴을 감상할 뿐이었다. 최근에 다시 포토샵 사용을 재개했다. 실물보다 나은 지인의 사진이 자극이 됐다.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굳이 안 쓰려 노력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님 말고라며 생각하고 부담을 버리게 됐다. 

어제 오랜만에 보정한 사진을 SNS에 올렸다. 원본과 비교하지 않으면 보정 사실을 알기 어렵다. 적당한 선에서 편집했다. 잘생김과 자연스러움 추구의 중간에서 타협했다. 극단적 잘생김 추구보다 낫다. 덜 창피하다. 

자기 편집의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유추해봤다. 우선 인간의 기본 매카니즘이 원인이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한다. 내적, 외적인 부분 모두 그렇다. 똑똑하고 깨어있는 척하는 것과 같이 잘생기고 예뻐 보이고자 한다. 대개 편집한 자신이 실재보다 뛰어나다. 두 번째, 사회 분위기다. 보이는 게 중요한 사회다. 매스미디어가 자기 PR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시대가 바뀌면 그와 더불어 새로운 문화가 생긴다. 다수 간의 동의가 행동의 인식을 바꾼다. 가까운 예로 이십 년 전에는 성형 사실을 수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공공연히 쌍꺼풀은 성형도 아니라 말한다. 자기 편집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비난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적극적 미의 추구에 당당하고 쿨하고 진보적인 이미지가 생겼다. 나도 여기에 영향받고 동조한다.

자기 편집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편집한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괴리가 커지면 박탈감과 우울증을 얻는다. 현실을 외면하고 화려한 아바타에 몰입하는 일이 일어난다. 내실 보다 보이는 부분을 가꾸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나쁜 면을 숨기고 좋은 점을 부각해야 한다며 자신을 압박한다. 극단적으로 갈 경우, 편집된 포스팅의 반응에 따라 자기 가치를 규정한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시선에 의존적으로 변한다. 언론은 자기 편집을 강요하는 SNS의 생태를 경고한다.

자기 편집의 상징인 포토샵. 부작용을 안다. 알면서 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21세기 기술문명의 노예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을 편집한다. 다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려 노력할 뿐이다. 포토샵은 자기에 자신 없는 루저가 하는 행동이라 말하는 이들은 그 정도가 높다. 나는 그렇게 높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이고.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어서 느슨한 기준을 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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