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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5. 2017

용서

한 시간 소설

나는 3남 1녀 중 장남이다. 순서대로 남남남녀다. 두 남동생들과 한 살, 두 살 터울이고, 막내와는 10살 터울이다. 어머님은 쉴 틈 없이 삼 형제를 낳으셨다. 막냇동생은 딸이 갖고 싶다는 부모님의 소망으로 태어났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며칠 전에 죽었다.



어제 성남에 있는 납골당에 동생을 안치시켰다. 삼 일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밤낮 구분 없이 오는 손님들 맞이하느라 눈 붙일 틈이 없었다. 동생의 중, 고등학교 동창, 대학 동기 및 선후배, 은사님들 등. 인사를 전하러 온 사람들로 식장은 북적였다. 그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동생과의 추억을 곱씹었다. 몇몇은 오열했다.



장례 문제로 삼 일 동안 회사를 쉬었다. 주말이 껴 있었다면 조금 쉴 수 있을 텐데, 오늘은 금요일이다. 전날 오후 2시에 집에 돌아왔다. 샤워하고 와인 한 잔 마셨다. 침대에 누웠는데 금방 잠이 들었다. 핸드폰에서 6시 기상 알람이 울렸다. 한 번도 깨지 않고 15시간을 잤다. 경미한 두통이 있었다.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내방 화장실에서 조용히 샤워했다. 평소처럼 흰 셔츠에 감색 타이를 매고 감색 정장을 입었다. 작년에 산 옷인데, 품이 좀 남았다.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벨트를 맸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해 거울을 봤다. 지난 3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눈에 띄게 핼쑥하다.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둘째 동생이 식사 중이었다. 둘째도 회사원이다. 직장이 가깝고 교통 편이 편리해 나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편이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숟갈을 움직였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줬다. 가정부는 8시에 출근한다. 장례식에서 남은 육개장을 국그릇에 담았다. 밥솥에 밥이 없어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넉넉한 티셔츠와 트렁크 팬티 차림의 동생 옆에 앉았다. 서로 눈 인사를 건넸다. 활기 넘치던 동생의 침묵이 무거웠다. 그의 광대 아래 홈이 패여 음영이 졌다. 지난 삼일, 그는 음식을 입에 넣었다가 게워내기를 반복했다.



동생은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나도 식사를 끝냈다. 화장실에서 구강청결제로 가글하고 집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리모컨 키로 차 문을 열었다. 몇 대의 차 뒤에서 삑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포르셰 911 GT와 애스턴마틴 DB11, 어머니의 벤츠 AMG45, 둘째의 아우디 R6을 지나 내 차에 탔다. 키링에 차키와 함께 달려 있는 주차장 입구 개폐 버튼을 눌렀다. 과천에서 회사가 있는 강북구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지금 출발하면 8시 30분에는 도착할 것이다.



중앙로에서 반포대교로 들어섰다. 주위 차들은 내 차와 간격을 벌렸다. 옆 차선 운전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멍하니 앞만 보고 운전했다. 노래가 듣고 싶었다. 블루투스를 켜자 자동으로 핸드폰에 있던 음악이 재생됐다. 아무로 나미에의 1997년 작인 Can you celebrate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재생한 곡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J pop 카테고리의 음악이 연달아 나왔다. 아마 마지막으로 일본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목록을 바꾸지 않았다.



내부순환로에 이르자 오다 카즈마사의 히트곡이 나왔다. 80년대 말에 나온, 당시 트렌디 드라마의 주제가로 인기를 구사했던 곡이다. 가사를 따라불렀다.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 가사를 외웠다. 처음에는 들릴 듯 말 듯 부르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 내서 불렀다. 마지막 후렴 부분에서는 소리를 질렀다.



내부순환로에서 빠져나와 회사에 거의 다다른 무렵에 사고가 났다. 앞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블랙박스가 상황을 녹화했. 내 부주의가 어느 정도 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갓길로 차를 옮기고 차에서 내렸다. 내 차 앞 범퍼가 살짝 찌그러져있었다. 에쿠스에서 양복을 입은 40대 남성이 내렸다. 그의 얼굴은 입관할 때 본 동생의 얼굴보다 사색이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면서 내게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구구절절이 자기 상황을 말했다. 요약하면, 보험사를 바꾸려고 일주일 전에 자동차 보험을 해지했다. 지금 여윳돈이 없어서 차 수리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새로운 보험사에 가입하면 그 후에 사고가 난 걸로 해주길 부탁했다.  범퍼보다 더 찌그러진 그의 얼굴이 불쾌했다. 나는 거절했다.



담당 딜러에게 전화를 해서 전후 상황을 설명했다. 앞 범퍼 파손 정도를 말했다. 그와 대화를 끝내고 에쿠스 차주에게 말했다. 과실 정도는 블랙박스를 본 보험사가 판단할 것이다. 범퍼 수리비는 대략 1억 정도며, 그 외에 비슷한 차량 한 달 렌트하면 3천만 원 정도 추가금이 나온다. 다친 곳은 없으나 병원 진단 후에 이 부분은 다시 말하겠다. 경찰을 불러 상황을 정리하겠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아 차를 보며 말했다. 그의 다리가 떨렸다.



액정에 112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에쿠스 차주가 핸드폰을 낚아챘다. 불쾌했다. 그는 계속 떨고 있었다.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멈춰 섰다. 일부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었다.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찰에 전화를 안 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을 힘껏 차고 싶다. 눈물 범벅이 된 살찐 얼굴을 뭉개는 상상을 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욕망은 열망이 됐다. 경찰에 전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나와 같이 어딘가 갈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응했고 꼼짝 않던 그의 무릎은 펴졌다. 그에게 내 차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가 길을 잃을 것을 염려해 주소도 줬다.



가는 길에 비서에게 출근이 늦을 것임을 통보했다. 대략적인 시간을 알려주자 비서는 알아서 스케줄을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평소 출퇴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기에 그는 놀란 눈치였다. 의정부에 있는 회사 물류창고로 액셀을 밟았다. 뒤에서 에쿠스가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왔다.



물류창고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담당자를 불렀다. 담당자는 사무실을 비워줬다. 에쿠스 차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빈 사무실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에쿠스 차주의 눈에 의아함이 보였다. 기분 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궁상맞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신음을 뱉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차기 좋은 자세였다. 있는 힘껏 그의 얼굴을 발로 찼다. 바닥에 피가 튀었다. 그가 소리를 질렀고, 나는 신이 났다. 바닥에 엎어진 그를 내려다봤다. 거리에서 안 때리고 참은 보람이 있었다.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리석으로 만든 담당자의 명패가 보였다. 명패로 에쿠스 차주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그의 머리에서 큰 북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가 아름다웠다. 이만하면 만족스러웠다. 명패는 한 번의 가격으로 부러졌다. 에쿠스의 머리에선 피가 쉼 없이 흘렀다. 그의 회색 양복의 1/3이 피에 젖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은 것 같아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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