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하는 사회
상업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많은 할인 정보를 얻는다. 다양한 채널에서 가격 할인 혜택을 누리라고 권유한다. 한국 길거리를 걸으면 핸드폰 대리점을 여럿 목격한다. 하나같이 핸드폰을 살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을 설명한다. '갤럭시 6가 공짜?' 핸드폰 처음 사 보는 노인네들에게나 먹힐 상술이다. 우리 세대의 누구도 대리점에서 핸드폰을 사는 게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오늘 딱 하루 있는 특별한 가격 파괴 이벤트는 그다지 메리트가 있지 않다.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일이다. 병원 근처엔 건강 음식점이 많다. 별별 가게를 다 보게 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던 곳은 라면집이다. 원기 회복에 최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라면과 원기 회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으로 건강 라면을 자부하는지 궁금했다. 문구 아래로 상품명이 등장한다. '산삼 라면' 산삼 한 뿌리가 통째로 들어간 초호화 라면이다. 원가는 12,000원인데 오픈 이벤트로 6,000원에 팔고 있었다. 소개가 거창할 뿐이지 인스턴트 라면에 몇 가지 야채 넣고 산삼을 넣은 음식이다. 피식 웃고 지나치려다 가게 현수막을 보게 됐다. 오픈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몇 달 전이었다. 기간 한정 세일 문구는 우리에게 오늘 놓치면 내일은 2배 비싸게 먹어야 한다 부담을 준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어디까지 한정된 건지 알려주지 않아 모호함을 낳는다.
나는 의류 아웃렛을 좋아한다. 유명 브랜드 의류를 리테일가의 반 혹은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몇 번인가 아웃렛 옷을 샀는데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 했다. 빨래 한두 번이면 수명을 다 했다. 10만 원짜리 상품 5만 원에 주고 산 줄 착각했다. 품질은 3만 원보다 못 한 것들이었다. 옷이 망가져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마음으로 크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 회사들도 이런 고객들의 심리를 노리고 마음껏 상품에 장난친 게 아닐까? 브랜드 이름값 때문에 저렴해 보이는 거지 그다지 싼 제품도 아니다. 그러려니 넘어가 주는 우리가 호구다. 나중에야 아웃렛 용으로 만든 제품이 따로 존재하고,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샌가 아웃렛이 매력적이지 않다.
아웃렛을 말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양복을 선물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렸을 때다. 중요한 이벤트를 위해 입을 옷이니 만큼 가격대가 있는 제품을 위주로 찾아봤다. 옷들은 예상보다 더 비쌌고, 확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직원들의 얼굴엔 대어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보였다. 동행한 고모에게 넌지시 아웃렛을 가볼까 권유했다.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기꺼이 자기 회사를 깎아내렸다. 아웃렛에 파는 제품은 퀄리티가 별로예요. 가격표 다 거짓이에요. 원래 그 가격으로 나오는 제품이에요. 우리 제품만 그런 게 아니고 아웃렛에 있는 모든 브랜드가 똑같아요. 혼자 죽을 수 없어 경쟁 회사들과 자폭했다. 이제 점원들도 공공연히 아웃렛의 허상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호주 거리를 걷다 보면 각종 리테일샵 쇼윈도에 원색의 세일 문구를 본다. 몇 가지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믿을 수 없는 곳도 있다. 대기업 식료품점에서 하는 세일은 진짜다. 확실한 소비자가가 있고, 할인 행사를 할 때는 이득을 보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전자제품, 의류는 다르다. 유명 전자제품 브랜드 매장에 가면 다양한 할인 혜택을 볼 수 있다. 10% 학생 할인, 어머니의 날 10% 할인, 12월 10% 할인, 심지어 풋볼 파이널 데이 10% 할인까지. 싸게 주고 싶어 환장한 가게 같다. 제발 10% 할인을 받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세일 문구가 없어도 점원 재량으로 상시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되려 말만 잘하면 비세일 기간에 세일 기간 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이 겹치다 보니 세일이라는 문구가 소비자 우롱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많이 버는 게 최고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소비자가 자신의 제품을 사게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 1 좋은 제품을 만든다. 2 좋은 마케팅을 펼친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쟁 업체와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좋은 마케팅을 펼쳐 판매를 독려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지속될지 의문이지만, 당장의 수익을 올리기엔 후자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 좋은 마케팅은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이고, 싸게 판다는 문구는 목적에 부합한다. 회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파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같은 제품을 팔아도 소비자가 싸게 샀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10원짜리 제품에 100원짜리 택을 달고 그 아래 특별 할인가 20원이라는 문구를 더하는 작업으로 소비자 우롱 메카니즘이 완성된다. 소비자는 80원이나 싸게 사서 좋고, 회사는 10원 비싸게 팔아서 좋아. 윈윈 시츄에이션일까? 눈속임에 소비자는 지치고 기업에 신뢰를 잃는다.
컴퓨터를 켠다. 포탈 사이트에 접속해 간밤에 온 메일을 확인한다. 알려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상업 사이트에서 메일을 한가득 보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스페셜 오퍼가 수십 개다. 영영 놓고 싶다고 스팸함에 넣어도, 차단해도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다시 메일을 보낸다. 거리엔 소비자 감사 행사가 넘친다. 우리가 좋은 기회를 놓칠까 걱정하는 그들이다. 게다가 생전 본 적 없는 곳에서 우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해야 할 대상은 이타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다. 감사할 줄 모르는 나는 청개구리처럼 아가페적 사랑에 짜증 섞인 한마디를 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