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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Feb 14. 2018

나랑 싸우자







최근 우연한 기회로 한 작가를 알게 됐다. 그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이웃으로 추가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쓴 글을 읽는다. 시니컬한 문체로 가볍고 웃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문장 문장이 재밌어 집중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글은 끝이 난다. 마지막에 가면 단순히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 안에 통찰이 있고, 사색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글을 다시 읽으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평범한 20대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글에서 다른 시선을 보게 된다. 

요 며칠 그 작가의 존재가 신경 쓰인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보다 글을 잘 쓰는 걸, 주위를 더 깊게 바라보는 걸, 글로써 유명세 치르는 걸 참을 수가 없다. 나는 힙스터라는 말에 묘한 비웃음을 담고 있다. 미술품이 아닌 미술관에 가는 자신의 취향을 감상하는 사람이 내 세상 속 힙스터다. 다르기 위해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 다름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힙한 범주에서는 같음이다. 치명적인 척, 일반인과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척하는 그들의 내실 없음이, 가벼움이 나를 코웃음치게 만든다. 그 작가는 다르다. 다르기 위해 다르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서 다르게 산다. 그가 척을 안 해도 멋져서 화가 난다.

내가 서점에 가는 목적은 두 가지다. 좋은 책을 읽거나 나쁜 책을 비난하며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서다. 출판 서적 중 태반은 수준 미달이다. 내실이 없거나, 내실은 있는데 문장력이 딸린다. 프로(출판사를 통해 본인 책을 출판했다는 의미로)와 나 사이의 벽은 실체가 없어 보였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유명세를 치렀거나, 마케팅을 기가 막히게 해서 출판까지 다다른 이들로 보였다. 일부러 허접한 글을 찾거나, 외국 서적에 집중한 탓이었을까? 아무리 봐도 내 생각이 더 깊고, 정돈됐다. 생각이 변했다. 그가 블로그에 쓴 글은 대부분 문예지나 전시회 등 상업적인 목적으로 투고했던 것이다. 등단만 하지 않았을 뿐, 글을 써서 벌어먹는 프로 작가다. 제대로 글을 쓰는 사람과 나 사이에 벽의 존재가 뚜렷하다. 자꾸 그가 전에 쓴 글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내 글엔 통찰이 없다. 가볍게 현상을 훑고 빠르게 정리한다. 그의 나이가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리단 사실은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분함에 흥, 칫을 남발한다. 그러다가도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가? 그럼 어떤 책을 읽었을까? 전공이 글쓰기라는데 학부의 커리큘럼이 도움이 된 걸까? 문예지에 같이 글을 올린 유명 작가들과 비교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써낸 결과일까?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걸까? 등등. 나는 안 되고 쟤는 되는 이유를 집요하게 묻는다. 어쩌면 나의 열정과 집중력이 문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의 글 쓰는 방식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먹고 앉아서 쓴다고 해도 그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다. 잣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글에 우열을 나누는 게 우습다고 느끼면서도 우열을 가리게 된다. 내 글이 열등하고, 그의 글은 우등하다. 글을 읽다 보면 저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어?라고 대답을 바라지 않고 자신에 질문한다. 그는 내가 이만하면 됐어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한참 넘는다.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안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고 끝까지 자문하고 자신이 정의 내린 답이 여전히 유효한지 추궁한다. 그런 자학 끝에 새로운 답을 세상에 내놓은다. 답은 매끈하고 묵직하다. 후에 내 답의 투박한 질감을 눈으로 느끼며 고통받는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야. 너를 비참하게 만들고, 너의 삶을 고통받게 하거든. 누구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된 거야.라는 소년 만화, 자기개발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대사는 집어치우자. 인간의 기본 메커니즘은 비교다. 모든 감정은 상대적이다. 100억 연봉 스포츠 스타가 100만 원 연봉의 개도국 노동자보다 행복할 거라 단정할 수 있을까? 전자가 1000억 연봉의 팀원들과 비교하며 우울할 수 있고, 후자가 50만 원 연봉의 동료들과 비교해 행복할 수 있다. 나도 비교를 멈추지 않는다. 비교 대상이 생겼다면 이겨야 한다. 더 깊고, 더 웃기고, 더 기발한 글로 그를 찍어 눌러야 한다. 호승지심은 쉽게 치기로 단정 지어진다. 됐고, 나는 경쟁한다. 너의 발견과 통찰이 하찮은 것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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