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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Feb 24. 2018

완벽한 복권 당첨자






주의사 읽었다.

-복권 뒷면에 서명하라
-열에 민감하니 다리미로 다리지 말라
-외출 시 금고에 보관하라
-물에 젖지 않게 주의하라

'뒷면에 서명하라는 것 말고는 신경 쓸 필요 없겠네'

그리고 당첨자 행동 강령을 읽었다.

1. 당첨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2.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3. 3년간 금융 투자하지 말라
4. 인생 역전이라 착각하지 말라

 납득할 만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당첨금을 현명하게 쓰라는 말이다. 잘 알겠다.

호주 귀국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 1등 당첨 사실을 알게 됐다. 당첨 확인은 일요일 오전에 하는 게 좋다는 충고를 당첨 후에 보게 됐다. 토요일 저녁에 당첨 확인을 했다. 브로커에게 돈 받은 화요일까지 잠들지 못 했다.

3개의 다른 플랫폼을 통해 당첨 번호를 재확인했다. 모든 플랫폼이 이번 회차의 당첨자임을 알려줬다. 현명한 당첨자의 표본이 되기로 결정했다. 우선 신경 쓸 일을 없애야 했다. 호주행 리턴 티켓을 취소했다. 호주에 있는 스시집 사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한 달 정도 더 체류하게 됐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내다 복귀하겠습니다. 혹시나 일손이 모자라면 다른 알바 구하셔도 괜찮습니다.'

스시집 사장은 착한 사람이다. 내 자리는 공석으로 둘 테니 어머니 잘 보살피고 오란다. 거짓말을 해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스시집 사장에게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한 달하고 5일의 시간이 생겼다. 아버지가 계신 충주까지는 거리가 있다. 남은 시간을 누구 방해도 받지 않는 고시원에서 보내기로 정했다. 고시원 총무에게 한 달 더 머문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고시원 총무는 귀찮은 일을 덜었다.






고시원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세운 계획의 큰 뿌리는 이렇다.

1. 절대 비밀로 할 것
2.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불로소득을 만들 것
3.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것

 충주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물론,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 알려지면 귀찮아진다. 저마다 자신이 돈이 필요한 이유를 말할 것이다. 줘도 파국이다. 쟤는 주고 왜 나는 안 줘! 나 그렇게 큰 돈이 있으면서 이것도 못 줘? 나 우리 사이가 이 정도 밖에 안 돼? 정도의 말이 예상된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누구도 이 사실을 알면 안 된다.

2,3 번은 한 번에 설명 가능하다. 3번을 하기 위해서는 2번이 필요하다. 돈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산에서 파생되는 수입을 생활비로 한다. 적당히 돈을 쓰며 자산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로 좁혀진다.

1 부동산을 구매하고 월세를 받는 것

2. 주식을 구매하고 배당금을 받는 것

3. 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 것

4. 펀드에 가입하고 수익률을 노리는 것,

5. 엄마에게 맡기고 조금씩 타 쓰는 것.


3,4 번은 기대 수입이 낮다.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되려 자산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2번은 아무리 많아도 1년에 4번 밖에 받을 수 없고, 받는 돈도 얼마 안 된다. 5번은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계셔서 안 된다. 결국 1 번이 남는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수익은 커진다.

어떤 부동산이 안정적인 돈줄일까? 대박을 노리세요식 투자는 지양한다. 자산이 휴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믿을만한 부동산 업체 (업계 1,2 위에 신뢰할 수 있는 곳)을 통한다. 신축 아파트를 피한다. 신축 아파트에는 새것 프리미엄이 있다. 며칠 후에 그 거품이 꺼지면 내 손해다. 세입자의 수요가 꾸준해야 한다. 대학가는 피한다. 방학 시즌에 집을 뺄 위험이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리라. 공부하고 몇 군데 업체와 상담을 받아볼 계획이다.

그 돈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배우고 싶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이제 때가 됐다. 남은 인생에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취업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 볼품없는 현실과 작별이다.


내 스펙은 볼품없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알바를 전전했다. 마지막엔 교보 문고에서 4년간 일했다. 반복되는 생활이 신물나서, 반 도피식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따고 호주에 들어왔다. 현지 생활이 나쁘지 않아 공장에서 6개월 동안 돼지 목 따고 세컨드 비자를 받았다. 어떤 전문성도 없었다. 내세울 것이라곤 읽고 쓰는 능력 정도다. 고등학교 성적은 보잘 것 없다. 수능도 보지 않았다. 진학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했다. 대학 간 친구들과 비교하니 억울했다.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자해하기 시작했다. 정신적 자해였다. 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읽었다. 부대 도서관을 이용했다. 망한 서점에서 기부한 책 천 권이 구비되었다. 나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책을 골랐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집어 들었다. 이기적 어려움을 통해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함이었다.

첫 책을 읽는데 보름이 걸렸다. 고통을 더하기 위해 같은 책을 5번 읽을 것을 명했다. 2회 독은 일주일이 걸렸고, 3회는 이틀, 4회는 하루, 5회차는 2시간이 걸렸다. 생각보다 잘 읽혔다. 이러면 벌이 아니다. 제대로 벌을 주기 위해 다른 책을 골랐다. 저자- 다이아몬드, 제목- '총, 균, 쇠'였다. 두께부터 한숨이 나왔다. 효과는 상당했다. 1회차에 한 달이 걸렸다. 전 페이지가 기억이 안 나 멈추고 다시 읽었다. 고난의 한 달이 지났다. 2회차 열흘, 3회차 삼일, 4회차 이틀, 5회차 2시간이 걸렸다. 여러 번 읽으면서 들뜬 나를 보게 됐다. 좋다고 책을 읽는 모습이 보기 싫어 다른 고통을 주기로 했다. 글이라곤 써 본적 없는 내게 독후감을 쓰게 한 것이다. A4용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워 쓸 것을 명했다. 머리가 빠지는 고통이었다. 한 줄을 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5회독, 독후감 쓰기 패턴을 호주까지 가져오게 됐다. 웬만한 책을 2시간이면 완독이 가능했다. 활자 중독이 됐다. 이렇다 할교우관계없이 나름대로 즐겁게 살게 됐다. 하루 1,2 권을 읽었고, 하루 1,2 편의 독후감을 썼다. 쓴 것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거의 매일 독후감을 포스팅하는 기행으로 나름 유명해졌다. 학교 과제로 유용하게 썼다는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호주에 오기 전 나쁜 일을 하는 것 같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것은 그만뒀다. 어느 틈엔가 읽고 쓰는 행위가 내 삶에 큰 축을 차지하게 됐다.








내세울 게 없는 나였다. 복권 당첨 후엔 돈이라는 내세울 것이 생겼다. 복권은 농협 중앙회로 가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복권 브로커를 찾았다. 하루 만에 3명을 찾았다. 당첨금을 말하고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서로 경쟁을 붙여 더 괜찮은 오퍼를 이끌어냈다. 그중 한 명은 세금 하나 떼지 않고 당첨금 전부를 주겠다고 했다. 어떤 이에게 내 복권이 갈지 물었으나 상대는 철저히 함구했다. 자세가 된 브로커다. 사람이 많은 도심의 스타벅스에서 만나 복권을 건네고 나는 계좌로 당첨금 전액을 받게 됐다. 아마 조직의 돈세탁이나, 재벌의 상속세를 피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내 농협 계좌에 22억 3520만 4310원이 들어왔다. 남은 한 달 동안 돈의 사용처를 고민했다. 한국 부동산을 살지 호주에서 관리할지 고민했다. 부동산 중계업자가 수수료를 받아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부동산 세미나에 참여했고, 일주일 동안 부동산 투자 책 10권을 5번씩 반복해 읽었다.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굳이 10권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룰은 룰이니 억지로 5번씩 읽었다. 한국이나 호주나 부동산 투자, 관리의 기본 메카니즘은 같았다. 구글을 통해 호주 중심지의 집세 변동 추이와 렌트비로 받는 금액의 퍼센티지를 확인했다. 한국으로 골랐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이 조금 더 높았다. 그러나 집주인 보호법 등의 안전망과 감가상각에서 얻는 혜택을 종합해서 호주 부동산으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되도록 많은 호주 중계업체와 연락을 했다. 한인 업체와 대화를 할 경우, 내 신분이 노출되고 당첨 사실이 퍼질 수 있었다. 호주 땅덩어리가 아무리 넓어도 한국 사회는 좁다. 한 다리 건너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곳이다. 나의 기본 철칙, '복권 당첨 사실을 비밀로 해야 한다'에 거스르지 않으려면 현지 업체와 연락을 해야 한다. 전화로는 놓치는 부분이 많고, 전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온라인 상담을 지원하는 대형 부동사에 연락을 해 상담을 진행했다. 모든 정보를 얻었고, 후보군을 뽑았다. 안전성, 위험부담, 세금 혜택, 각종 세금, 입지, 투자금 대비 월세 모든 것을 엑셀로 정리했다. 가서 최종 인스펙션을 하고 계약하기로 정했다.


다소 위험 부담이 있긴 하지만, 각기 다른 10개의 국제 송금 업체를 통해 돈을 조금씩 나눠 호주 계좌로 보냈다. 모바일 앱으로 입금을 확인하면 다시 일정 부분을 보냈다. 대부분의 업체에서 설정한 송금 최대 금액은 5000불이었다. 결국 3달에 걸쳐 모든 돈을 보낼 수 있었다. 호주 부동산 계약은 일시불일 필요가 없었다. 말만 잘하면 일정 부분 선금을 주고 잔금을 몇 달 후에 치를 수 있었다. 결국 호주 입국 후 2달 동안 도시 외곽에 있는 아파트 유닛 4채를 현금으로 구매했다. 발품을 잘 팔고 리서치를 많이 한 덕분에 투자금 대비 월수입 비율이 높은 곳을 살 수 있었다.


세금, 수수료를 제외한 8,000불 (우리 돈으로 700만 원 정도)의 불로소득을 '매달' 얻게 됐다. 계획 2는 성공적이었다.






다달이 들어오는 8천 불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부동산 업체를 제외하곤 없었다. 전화는 들킬 가능성이 있어 모든 의사소통을 메일로 했다. 부동산 대화용 메일을 새로 만들고, 매번 용무가 끝나면 방문 이력을 지웠다. 시드니 시내에 쉐어 하우스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보안에 철저해야 했다. 방 2개 아파트인데, 5명이 살았다. 한 방에 2명씩, 거실에 한 명이었다. 중국인, 일본인, 콜롬비아인 국적이 다양했다. 한국인과는 살기 싫다고 같은 방을 쓰는 관리인에게 말했기 때문에 한국인은 받지 않았다. 그 조건으로 몇 년이고 렌트가 끝나는 시점까지 같이 살 것을 약속했다.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스시집을 그만두지 않았다. 사람들과 일 이외의 이야기를 안 하는 퉁명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일을 열심히 하기에 잘리진 않았다. 스시집은 3개월 정도 더 다녔다. 스시집에서 받는 2500불로 렌트비, 생활비, 영어 학원비를 냈다. 부동산에서 보내주는 8천 불은 꾸준히 통장에 쌓였다. 현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영어 점수가 필요했다. 4시에 스시집 일이 끝나면 5시부터 9시까지 영어 학원에서 공부했다. 3개월 후에는 스시집을 그만두고 호주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북으로 한국책 읽는 습관을 영어책 읽는 것으로 바꿨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고전했다. 한 달에 걸쳐 첫 책,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었다. 5번 읽고 독후감을 썼다. 3개월 동안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을 읽었다. 어휘가 비슷해서 한 권 읽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기본이 있어서 그런지 영어로 읽고 쓰는 능력이 빠르게 늘었다. 도서관을 이용해서 더 이상 이북을 구매하지 않아도 됐기에 주머니에도 보탬이 됐다.

아이엘츠란 시험 점수가 평균 7점이 되어야 괜찮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내신을 보는데, 형편없는 점수이므로 영어 시험 점수가 높아야 했다. 학원에 다니고, 영어 원서를 읽고 6개월 만에 reading과 writing에서 8점을 땄다. 스피킹과 리스닝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유학원을 통해 내신이 낮은 내가 갈 수 있는 지역에서 괜찮은 대학을 찾았다. 유학원의 도움으로 2학기부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영문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했다.

몇 명인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도 있었다. 인천에서 식당 하는 작은아버지가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학비를 지원해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예 인간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페를 그만두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과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의사소통에 장애가 없어지고, 카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일 년이 지나니 내가 가장 오래된 스텝이 되었다. 홀 서버로 포지션이 바뀌고, 홀 매니저 직함도 달게 됐다. 스탭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하기도 듣기도 많이 좋아졌다.

영문학과 수업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몇 달 영어가 문제였을 뿐이다. 교수가 언급한 대부분의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첫 학기부터 최우수 학생이 됐다. 특히 과제로 낸 에세이의 경우 약간의 문법 실수가 있었을 뿐, 학사 수업을 듣는 학생이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극찬을 받았다. 학기가 끝날 무렵 전임 교수는 나를 불렀다. 2학년이 되면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고사하고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 편입을 했다. 언어 장벽이 어느 정도 없어지자 커리큘럼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2 년 반이 지났다. 편입한 학교에서도 최우수 학생이었다. 모든 성적이 우수했는데, 특히 시험 대신 에세이를 쓰는 과목에서는 압도적이었다. 영어 원서를 한국어 책과 비슷한 속도로 읽었다. 하루에 한 권씩 5번 읽고, 독후감을 썼다. 시간이 남으면 독후감을 논문식으로 분석해서 썼다. 이즈음 호주 문학에 심취했다. 마지막 학년에는 루스 파크가 쓴 1948년 작 The harp In The South를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존재론으로 해석했다. 그 에세이는 호주 비평가 협회에서 나름대로 화제가 됐다. 그 후 교수님이 편집자로 일하는 유명 잡지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카페를 그만두고 신간 비평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리고 지금, 나는 프리랜서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부동산의 가치는 건축 붐과 더불어 35% 정도 올랐다. 물론 팔지 않았고 렌트비를 올려 더 큰 불로소득을 받고 있다. 최근에 다른 부동산을 하나 더 샀다. 잡지사 친구 소개로 만난 의사 여자친구와 내년에 식을 올릴 예정이다. 이만하면 완벽한 당첨자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스시집에 급하게 일주일 휴가를 받고 귀국했다. 구체적인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없는 돈을 털어 택시를 타고 재생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발인에 늦지 않았다. 뭔가 사는 게 허무해졌다. 어색한 표정으로 친척들과 인사를 했다. 오래전 이혼해서 따로 사는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성남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시켰다. 자신의 집에 머물라는 작은삼촌의 말을 뒤로하고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병원비는 자영업을 하는 삼촌이 다 내줬다. 1년 동안 수술비, 병원비를 포함해 1억 5천 정도 들었다고 한다. 면목이 없었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고시원 와이파이로 편하게 죽는 법을 검색했다. 책도 안 읽고 하루 종일 고시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SNS를 통해 간단히 청산가리를 구매할 수 있었다.  5그램 단위로 판매하고 있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 10그램을 22만 원을 주고 구매했다. 판매자는 입금 후에 당일 배송으로 청산가리를 보내줬다. 편의점에 소주를 사러 갔다. 평생 몇 번 마셔본 적 없는 소주였다.

세상엔 참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하필 소주를 사러 간 그날에 그 샐러리맨 아저씨를 만났다. 눈에 띄게 흥분한 걸음걸이로 편의점 앞 공원을 배회했다. 공원엔 아무도 없었다. 흥분을 숨기려 하는 것 같았는데, 불규칙한 호흡이 청개구리 같았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는 아저씨는 누가 봐도 이상했다. 소주 병이 든 봉투를 들고 먼 발치서 그를 지켜봤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슬쩍 보고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거기서 느낌이 왔다.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은 무슨 일도 할 수 있었다. 작은 종이를 들고 고시원 침대에 앉아 흥분을 주체하지 못 했다. 이 세상은 절망에 찬 누군가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 같다. 3개의 다른 플랫폼을 통해 1등 당첨 사실을 알게 됐다. 세상이 준 이 찬스를 허투루 쓸 순 없었다. 더 열심히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대포폰을 만들고, 대포 통장을 구매했다. 복권 브로커를 거쳐 대포 통장으로 돈을 받았다.

행운은 노력하는 이에게 오래 머문다. 나는 노력을 많이 했다. 당연한 결과다. 잘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어딘가 자랑하고 싶다. 옛날 생각을 하며 글을 적었다. 지명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살짝 바꿨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우러러봤으면 좋겠다. 누구한테 말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이 아닌 양 인터넷에 글을 올릴 예정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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